<설국열차>가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2013.08.14

* 영화 <설국열차>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설국열차>는 자원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세계를 그린다. 담배 같은 소비재는 ‘멸종’ 위기에 놓였고, 물고기가 부족해 스시는 1년에 단 두 번, 한정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다. 계층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빈곤층이 사는 꼬리칸 대표자인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혁명을 통해 상황을 뒤집으려 하고, 상류층이 모인 일등석의 대표라 할 만한 총리 메이슨(틸다 스윈튼)은 계층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질서를 강조한다.

영화의 원작인 그래픽 노블은 지구에 불어닥친 생존 불가능한 추위를 피해 영원히 지구를 도는 열차에 탄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설정을 가져온 <설국열차>가 자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원작에서 인간들은 머리를 짜내 열차에서 어느 정도의 자급자족에 성공한다. 반면 영화에서 자원의 빈곤은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해결된다. 커티스가 혁명을 일으키기 17년 전, 길리엄(존 허트)은 꼬리칸 사람들이 배고픔에 서로를 잡아먹자 그들에게 자신의 팔을 내놓았다. 열차의 설계자 윌포드(애드 해리스)는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꼬리칸 사람들을 일정 비율로 죽여 적당한 인구를 유지한다. 전혀 다른 듯한 두 사람이 내통한 이유다. 두 계층의 지도자는 안다. 자원은 유한하고, 누군가는 희생해야 세계가 유지된다.


꼬리칸 사람들은 혁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그들은 자신의 희생이 다른 꼬리칸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사실이다. 다만 꼬리칸을 더 넓게 쓰고,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정도다. 그 외의 계층은 식물을 키우거나 아이들을 교육시킬 뿐 애초에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예외가 있기는 하다. 커티스가 혁명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자, 윌포드는 후계자의 자리를 권한다. 꼬리칸부터 일등석까지 모두 경험한 그는, 열차에 탄 사람들에게 알맞은 정책을 제시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꼬리칸 사람도 열차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신화의 탄생. 하지만 커티스가 지도자가 되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꼬리칸 사람들의 처우를 조금 개선하는 정도일 것이다.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일등석과 꼬리칸 사람들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자원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부족한 자원에 맞춰 희생을 요구할 계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계급 이동은 있어도 계급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열차의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는 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가장 과격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는 열차 앞의 문을 여는 대신 열차 옆의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가자고 말한다. 그는 바깥이 따뜻해졌다고 믿는다. 그의 믿음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궁민수의 딸 요나(고아성)는 열차의 또 다른 진실을 보여준다. 투시력을 가진 이 소녀는 엔진실 바닥에서 기계 대신 일하는 어린아이들을 본다. 그들은 ‘멸종’되는 열차의 부품을 대신한다. 열차 안에서는 그 어떤 혁명도 누군가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희생의 대상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아이들이다.

꼬리칸의 혁명에 대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사회를 보는 세 개의 세계다. 커티스는 길리엄의 희생을 보고 혁명을 꿈꾸기 시작했다. 반면 윌포드에게는 그 희생과 혁명도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남궁민수는 혁명이냐 유지냐가 아닌, 열차의 근본적인 문제를 주장한다. 무엇을 하든 열차는 서서히 멸종 위기로 치닫는다. <설국열차>는 한 가상 세계에서 벌어진 혁명을 세 개의 층위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그것은 관객에게 마치 <레미제라블>, <정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나눠주고서 그중 하나의 관점으로 이 영화를 읽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커티스가 주도한 혁명은 월스트리트 시위 같은 계층 갈등을 연상시킨다. 지구온난화나 엔진실의 아이들에게서 현재 지구 전체가 당면한 환경오염과 제3세계 아이들의 노동 착취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커티스는 열차 앞쪽을 바라보고 전진하고, 윌포드는 뒤를 돌아보라고 하며, 남궁민수는 옆을 본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면, 조금이라도 이 영화를 읽어내길 원하는 사람은 수많은 방식으로 혁명에 대한 자신만의 입장을 가질 수 있다. 각각의 층위가 만들어내는 담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차츰차츰 세계의 실체를 드러내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얻어낸 성과가 새로운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진술만으로 뒤집히는 것은 이 영화의 기이한 매력이다.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영화는 각각 다른 층위의 해석 틀을 제공한다.

봉준호 감독도 이 해석의 층위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열차가 영원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영화에서 이 설정은 마지막 쯤에 기차의 부품 일부가 멸종 돼 그것을 아이들이 대체하는 정도로 묘사된다. 다른 두 관점이 논리적으로 커티스의 혁명 뒤에 있는 사회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는데 반해, 이 부분은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 방식에 대한 고민의 시간 없이 열차의 폭파로 이어진다. 혁명은 모든 과정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고, 혁명에 대한 해석은 후반의 대사로 진행되며, 모든 것을 넘어서는 진실과 대안은 분노와 슬픔같은 감정으로부터 비롯된다. 호흡도, 설명 방식도 다른 영화의 전개는 다른 층위가 등장할 때마다 덜컹거리고,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매 칸마다 현실의 중산층이나 부유층을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다른 칸의 사람들은 전혀 다른 톤을 갖는다. 남궁민수와 독특한 복장을 한 일등칸 사람들의 대립이 어색한 이유다. 

하나의 열차 안에서 그 자체로 살아 있는 현실이, 그 현실로 읽어낼 수 있는 은유와 상징이 열차 칸마다 불균일하게 흩뿌려져 있다. 영화는 종종 덜컹거리고, 봉준호 감독의 전작처럼 매끈한 이음새를 갖지 못한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를 읽어야 그나마 이음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열차 폭발 직전 죽음을 각오한 커티스 일행을 보며 윌포드는 “눈물나네”(“nice”)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이들의 모습이 그저 감정적이고 촌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열차 안의 세계에서는, 또한 자원 고갈을 피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희생당하는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원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새로운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논리를 따지기 전에 감정에 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할 수도 있다는 것. <설국열차>의 운행은 이 메시지를 남기는 것에서 정확히 멈춘다. 누군가에게는 불만족스럽거나 무책임 할 수도, 누군가에게는 만족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국열차>가 멈춘 그 다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450억 원이다. 봉준호 감독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흥행하는 블록버스터를 만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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