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웹툰작가 데뷔백서 part.1

2013.11.14
ⓒ 이종범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웹툰작가 어떻게 돼요?” 이 질문은 작가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데뷔 방법’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재처가 작가로부터 회사처럼 입사 원서를 받는 것도 아니고 작가들이 공무원처럼 시험을 치르거나 하지도 않으니까. 구체적인 데뷔 방법은 지망생들에겐 막연하게 보일 테고 독자들에겐 호기심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웹툰작가로 데뷔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많이 알려진 길은 자신이 그린 만화를 아마추어작가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네이버 웹툰의 ‘도전만화’, 다음 만화 속 세상의 ‘웹툰리그’ 코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양쪽 모두 독자의 지지에 의해 점점 위로 올라가 정식 데뷔로 이어진다는 점은 같다. 공모전도 있다. 많은 연재처가 공모전을 열어 정식 연재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Mnet <슈퍼스타 K>를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한 네이버의 ‘대학만화 최강자전’이다. 세 번째로는 드물게도 개인 블로그에서 조용히 연재되던 작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웹툰 담당자들에게 발탁되는 경우도 있다. 박수봉 작가의 <수업시간 그녀> 같은 작품이 그 예이다. ‘천재 신인의 등장’ 같은 환상은 충족시켜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지 않다.

사실 이 모든 루트는 대형 포털로 바로 진입하기 위한 방식인 셈이지만, 이것들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보다 막막한 사람들에게 이런 루트는 여전히 높은 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나는 사실 위의 세 가지 방식이 아닌, 스스로는 야인 방식이라 부르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원고료를 받아가며 만화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한 것을 데뷔로 치자면 나의 정식 데뷔작은 2009년 <스포츠 투데이> 사이트에서 연재한 <투자의 여왕>이었다. 먼저 소재를 잡고 취재를 하면서 한 편씩 원고를 그리기 시작했다.

연재처도 없는 상황에서 원고를 하는 것은 일종의 참선과도 같다. 상당히 괴롭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웹툰을 연재할 법한 사이트 한 곳에 들어갔다. 하단에 전화번호가 나와 있다. 무작정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만화가(지망생) 이종범이라고 합니다. 혹시 웹툰 서비스 담당자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대형 포털의 경우 이런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고 주로 쇼핑몰 사이트나 개인 사이트, 신문사 사이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한약방 사이트도 있었고 보청기 쇼핑몰, 건강식품 쇼핑몰도 있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가 전화를 넘겨받는다. 어렵게 구한 메일 주소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완성된 원고를 압축해서 보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참 많은 사이트에 메일을 보냈었다. 이런 방식으로 담당자 메일 주소를 알아내어 거의 20~30군데, 웹툰을 연재할 법한 사이트에는 모조리 보냈다. 밤에는 만화를 그리고 낮에는 영업을 하는 게 일상적이었다.

이때의 웃지 못할 실수 하나. 당시에도 네이버 웹툰과 다음 만화 속 세상은 언젠가 꼭 연재하고 싶었던, 선망하던 사이트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두 사이트의 웹툰 담당자에게도 원고를 보냈다. 그러나 한참 후에 다음 담당자로부터 받았던 메일에는 달랑 한 줄. “저는 네이버 웹툰이 아니라 다음 만화 속 세상의 담당자입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진짜로 느껴본 사람이 있을까? 미친 듯이 보낸 메일함을 뒤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네이버 웹툰으로 보낸 메일에는 ‘다음 만화 속 세상 담당자님께’로 시작되는 메일이 전송되어 있었다. 두 경쟁 업체의 담당자에게 거꾸로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데뷔도 하기 전인 꼬꼬마 신인 작가로서 너무나 겁이 났다. 이런 실례를 하다니, 나는 앞으로 절대 두 사이트에 연재할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훗날 <닥터 프로스트>를 한창 연재하던 중 우연한 기회로 당시의 다음 만화 속 세상 담당자였던 분에게 이때의 일을 이야기하자 쿨하게 “그럴 수도 있죠”라고 해주셨다.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 담당자에겐 심지어 메일이 가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던 주소는 잘못된 주소였다나.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이다. 아무튼 그렇게 수많은 사이트에 원고를 보내며 외롭게 원고를 하던 어느 날, <스포츠 투데이>의 스투닷컴으로부터 연재 제안 연락이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 정식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투자의 여왕>을 연재하게 되었다. 야인처럼 뒹굴면서 데뷔를 했던 이 시기의 경험은 나중에, 현재의 연재처인 네이버 웹툰으로 옮겨와 <닥터 프로스트>를 연재하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마음가짐이나 자세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보다 실질적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어 돌아왔다.

<투자의 여왕>이 완결되고 더 많은 독자가 모이는 사이트로 옮기고 싶어졌다. 그래서 네이버 웹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걸 알게 되었다. 네이버 웹툰의 경우 정식 연재 경험이 전무한 사람은 ‘도전만화’나 ‘베스트 도전’을 통해서 독자의 검증을 거쳐야 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연재 경력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는 웹툰 담당자에게 직접 원고를 보여주고 코멘트를 들으며 조율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지만, 사실 담당자에게 직접 원고를 보여주고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연재처에서 원하는 작품, 웹툰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의 방향을 감안하여 만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직업 작가에겐 아주 큰 지도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들판에서 구르며 야인 연재 생활을 하는 동안 이미 그 기준을 충족시켜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원고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또 다른 고난의 나날은 다음 주에.

수많은 후배들이 데뷔를 위해 원고를 들고 도전하지만 아마도 그들 중 대다수는 대형 포털만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곳은 너무나 경쟁률이 심해서 가끔 벽으로 보일 때도 있다. 오늘도 그 벽 앞에서는 피가 튀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스스로의 선택이지만,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웹툰 연재의 길은 아주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곤 한다. 반드시 대형 포털만이 데뷔의 전부는 아니라고. 물론 모든 지망생에게 있어서 ‘천재 신인 탄생’이나 ‘혜성 같은 등장’은 아주 유혹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런 환상을 스스로 버릴 수만 있다면 수많은 가능성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오히려 작은 사이트들, 여러 연재처를 전전하며 경험과 내공을 쌓아가다가 많은 독자가 모이는 연재처로 조금씩 옮겨가는 길을 거치면,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보다 단단해진 상태로 작품을 선보일 수도 있다. 이건 ‘벽’보다는 ‘계단’에 가깝다. 나는 재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벽을 뚫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오래 걸리긴 하지만, 확실히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 주는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는 것 같다. 꼭 웹툰작가 데뷔에 국한된 말은 아니지만, 그래. 가끔은 계단도 좋은 것 같다.

만화가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리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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