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대란│② 마리오 해피밀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014.06.17

마리오란 마리오
① 이 마리오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② 마리오 해피밀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③ 당신을 위한 마리오 인증샷 레시피 8
 

예상치 못한 대란이었다. 5월 30일부터 시작된 슈퍼마리오 해피밀 증정은 수많은 사람들을 흥분하게 만들었고, 결국 해피밀은 대부분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개시 당일 혹은 이튿날 품절되고 말았다. 이러한 사태 속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은 곳곳의 매장을 유랑하다시피 돌아다니며 해피밀을 모으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그까짓 장난감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슈퍼마리오와 해피밀을 애정하는 사람들에겐 즐겁고도 간절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즈>는 지난 5월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슈퍼마리오 해피밀을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구하기 위해 고된 시간을 보낸 한 인물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보았다. 다음은 실제 경험담에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진 팩션(사실을 의미하는 영어 ‘fact’와 허구를 의미하는 ‘fiction’의 합성어)임을 미리 밝혀둔다.



5월 30일
시계는 새벽 1시 20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둬도 더운 공기만이 훅 들어올 뿐, 주위는 고요했다. 이따금 술 취한 무리들이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고 있었다. 따분한 소식뿐이군. 고개를 저으며 폰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해피밀. 물론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부터 맥도날드에서 슈퍼마리오 해피밀을 증정한다는 사실을. 매 끼니를 햄버거로 때우리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트위터에서 ‘해피밀’을 검색했다. ‘마리오 해피밀 득템!’ 해피밀을 찍은 사진과 함께 남긴 트윗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문득,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재빨리 노트북을 켜서 맥딜리버리 사이트에 접속했다. 마우스를 쥔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햄버거는 불고기버거, 음료와 디저트는 일단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게 팩 우유와 파인애플 후룻컵,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장난감 선택. 정말로 마리오가 있었다. 집까지 배달을 오는 망원점에는 비록, 펭귄 탈을 뒤집어쓴 마리오 모양의 4번뿐이지만. 그래.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가서 사지 뭐. 주문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잠에서 깬 고양이가 기지개를 켜며 야옹, 울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합정 메세나폴리스 맥도날드는 아침 7시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들르면 나머지 해피밀을 너끈히 사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다. 맥도날드 매장의 유리창은 유난히 쨍쨍한 햇빛을 번쩍, 반사시키고 있었다.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자,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내부가 보였다. 밖에서는 한 남자가 휴대폰 너머의 누군가에게 푸념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아니, 아예 들어갈 수가 없다니까?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나는 휴대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출근까지는 대략 15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해피밀을 구해서 회사에 무사히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포기하고 돌아섰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점심시간에 맞춰 외부 미팅까지 있는 날이었고, 해피밀을 사러 다니려면 꼼짝없이 저녁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뭔가에 홀린 듯 틈틈이 확인한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해피밀 인증 글과 사진이 끝없이 올라왔다. 직장 동료들끼리 구매한 1번 마리오로 탑을 쌓은 사람들, 이미 네 종류를 모두 모은 사람들, 마리오와 함께 행복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은 사람들…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다.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당산점과 대림점, 영등포점, 신도림 디큐브점을 모두 돌았다. 그러나 나를 맞이하는 건 한결같은 안내문이었다.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인기로 인하여 본 매장은 현재 해피밀 슈퍼마리오가 품절되었습니다.’ 해피밀을 사지 못한 인간들이 좀비처럼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마리오, 마리오’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결단을 내릴 시간이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약 10개월 만에 부산에 있는 남동생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공짜 햄버거 먹을래?” ‘1’ 표시는 빨리 없어지지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뒷말을 이어갔다. “맥도날드 해피밀 세트. 거기 딸려오는 장난감은 내 주고. 4번은 있으니까 1, 2, 3번만 주면 됨.” 그의 답은 한참 후에 도착했다. “마리오 나도 갖고 싶은데.” 시큰둥한 표정이 쉽게 상상되는, 건조한 말투였다. “그럼 내가 돈 더 줄 테니까 니 것까지 사라.”
 
남동생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카톡이 울렸다. 2번, 3번 마리오의 사진과 함께.
“네 군데나 돌아다니다 동래 메가마트점에서 구했음.”

5월 31일
1번 마리오를 구하기 위해 일찍부터 집을 나서 강남 쪽으로 이동했다. 왠지 그곳에는 해피밀이 남아돌 것 같았다. 물론, 압구정 CGV 맥도날드에 도착하자마자 선입견이었음을 깨달았지만. 더욱이 오늘은 7세 이하 어린이 선착순 100명에게 해피밀 세트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해피밀 데이’였다.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서 있는 어른들의 얼굴에서는 수상한 설렘이 감지됐다. 그중에는 아직 젖도 채 떼지 못했을 갓난아기와 함께 온 사람들도 있었다. 저이는 정말로 아이를 위해서 해피밀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나는 무료 줄과 분리된 일반 계산대 대열에 섰다. 앞에서 누군가 해피밀을 몇 세트씩 사갈 때마다 대열 사이에서는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점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마리오 해피밀 품절입니다.” 그 순간, 찌는 듯 더운 날이었음에도 매장 안에는 이상할 정도의 냉기가 흘렀다. 줄 서 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탈하여 맥도날드를 떠났다. 나는 짐짓 침착한 척, 천 원짜리 아이스커피 한 잔을 주문한 다음 조용히 매장을 나왔다.

신사역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전화를 해서 해피밀의 유무를 물어볼까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희망을 스스로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몇 분만이라도 행복한 상상 속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신사역점 문 앞에는 역시나 마리오가 모두 소진돼 대체 토이가 제공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피식,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해피밀을 시켰다. 대체 토이라도 주세요. 속에서는 ‘전시 상품이라도 꺼내주세요’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점원은 한동안 카운터 아래를 뒤적이더니 비닐에 싸인 장난감 세 개를 내놓았다. 전부 <천재강아지 미스터 피바디> 해피밀이었다. 조립식 비행기와 피바디가 붙어 있는 미로 게임, 구슬을 이용한 미로게임이 있었다. 뭘 고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구슬 미로게임을 골라 들고 테이블에 우두커니 앉아 햄버거를 먹은 후 거리로 나왔다. 천천히 먹었는데도 목이 메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다음의 일들은 자세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돌며 역삼점과 선릉점, 삼성역점, 잠실역점까지 가봤지만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공허한 기분만 남아 있을 뿐.

다들 잘도 구했군. 돌아가는 지하철에 앉아 초점 없는 눈으로 트위터를 구경했다. 정확히는 마리오 해피밀 4종을 모두 구한 이들의 기쁨 어린 인증샷을. 그러다 누군가의 트윗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량진점 저녁때 해피밀 추가 입고된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량진, 노량진으로 가자. 운동화 끈을 괜히 고쳐 매고,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어 손에 들었다. 노량진점 매장엔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안내문이 붙어 있지 않았다. 이제야 이 고된 여정을 끝낼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줄을 섰고, 기다렸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주문 멘트는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입을 통해 술술 흘러나왔다. 해피밀 세트 하나 주시는데요, 불고기버거랑 콜라, 후렌치후라이요. 그리고 장난감은 1번으로 주세요.



이후는 여러분이 예상한대로다. 1번 해피밀까지 무사히 구한 나는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으며, 오랜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듯 보였다. 그러나 새벽녘 갑작스레 도착한 카톡은, 작은 성취에 도취되어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해피밀 2차 풀릴 때도 필요하면 연락해라. 조건은 이번이랑 똑같이.”

나는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의 자판을 신중하게 한 자 한 자 두들겼다. “콜.” 창밖에는 6월의 첫날이 어슴푸레 밝고 있었다. 책상 위에 놓아둔 마리오 해피밀 네 개가 반짝 빛났다. 아직, 네 개가 모자랐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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