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킨포크>, 그리고 이효리라는 트렌드

2014.06.18
사진: 이효리 블로그

얼마 후면 인터넷 쇼핑몰에 ‘이효리 바늘’이나 ‘이효리 앞치마’로 명명된 것들이 팔리지 않을까. 핑클 시절 소녀들이 ‘이효리 머리핀’을 하게 만들고, ‘10 Minutes’을 부를 때는 수많은 20대 여성들이 본더치 모자를 쓰게 만들었던 이효리는, 요즘 잡지 <킨포크>의 한 페이지에 실릴 법한 일을 살아간다. 직접 낚시를 해서 요리를 하고, 스마트폰을 끈 채 아침 명상을 하며, 집에서 친구들끼리 식사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그 잡지처럼 말이다. 이효리는 이제 서울에 집이 없고, 제주도에서 일상을 보낸다. 직접 자수를 해서 주변을 꾸미고, 채소를 캐고, 장필순 같은 선배 뮤지션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이효리는 5월 말부터 이런 모습들을 블로그에 올렸고, 현재 그의 이웃은 12만 명을 넘어섰다. <킨포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효리의 블로그는 일관된 라이프 스타일을 전달하는 매체나 다름없는 영향력을 가졌다.

이효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명품 백을 내다 팔았고, 채식을 시작했으며, 유기견 순심이를 길렀다. 월간지 <싱글즈>에서 제인 구달을 인터뷰했을 때는 동물보호나 “여자로서 자신을 꾸미고 남들에게 돋보이고 싶은 욕망”과 삶의 목표 사이에 대한 지혜를 구하기도 했다. 그가 제주도에서 자연, 여유 같은 단어들이 어울리는 삶을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다. 다만 지금 서점에는 <킨포크>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고, 이 책 주변으로 자수, 친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한 요리, ‘내추럴 인테리어’라는 단어를 쓴 책 등이 팔리고 있다. 이효리처럼 잘 먹고 잘 쉬는 것, 여기에 더해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트렌드의 한복판에 있다. 이효리가 이런 트렌드를 감지하고 의도적으로 행동했다기보다는, 이효리 또래의 여성이 이런 삶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이효리는 1979년생, 서른다섯이다. 이 또래의 여성 중 많은 수는 10대 시절 아이돌이나 순정만화 등 대중문화에 빠졌고, 20대에는 한창 국내에 들어오던 해외 패션과 외식 체인 브랜드를 경험했다. 지금은 대부분 일을 하며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어떻게 기를지 고민한다. 연예인을 좋아하거나, 비싸고 멋진 옷을 입고 좋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편안한 공간에서 사는 것. 또한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좋은 것을 보고 듣고 읽으면서 내면을 채우는 것. 그래서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삶. 이효리가 제주도로 가기 전에도 많은 유명인들이 제주도에 집을 지었고, 그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올레길을 찾아 굳이 걷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성들에게 닮고 싶은 외모, 닮고 싶은 스타일이었던 그는 이제 닮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준다. SBS <매직아이>에서 이효리는 자신이 “(남자들에게) 인기있‘었’던” 사람이라 말했고, 이 프로그램에서 다른 여성 MC들과 세상의 이슈에 대해 토론한다.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지 않는다는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을 쳐다보는 남성들이 아니라, 동세대 여성들에게 어필한다.

제주도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식사를 직접 준비하고, 그 과정을 남편이 멋진 톤의 사진으로 찍는 것을 누구나 쉽게 할 수는 없다. 장필순이 <아이즈>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듯, 제주도에서 직접 먹을 것을 일구고 준비하는 것은 “땀 흘리고 고생해야만 얻어지는 것들”이다. 이효리처럼 식사를 준비하다 실패해도 즐겁게 웃을 수 있고, 때로는 유럽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효리가 블로그를 통해 보여주는 삶에는 그 삶을 얻기 위한 일상의 고단함이 배제돼 있다. 그러나, 이효리는 얼마 전 블로그에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싶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죠.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네요”라고 썼다. 그는 자신을 지혜로운 여성처럼 포장하는 대신, 욕망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이효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또래 여성들의 시선을 붙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이 벌고, 잘 입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소박하고 품격 있게 살고도 싶지만, 그러기엔 살면서 얻은 것들을 다 놓을 수도 없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은 늘 따라붙는다. 이효리는 여성들의 이런 고민에 대해 함께 공감하는 동시에, 대다수 여성들이 쉽게 이룰 수 없는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미디어에서는 그의 사회 참여 소식이 전파되고, 블로그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이 올라온다. 잡지 인터뷰에서는 멋진 그의 외모를 담은 사진과 함께 <녹색평론>을 구독하고, 지혜롭게 살고 싶은 이상과 세속적인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효리의 생각들이 드러난다.

예전부터 <킨포크>를, 또는 타샤 튜더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효리의 모습이 새롭지는 않을 것이다. 이효리의 역할은 또다른 <킨포크>가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 보다 광범위한 대중에게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알리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이효리의 ‘10 Minutes’이 히트했을 때, 클럽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여성들도 힙합을 기반으로 한 클럽 패션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과 본질적으로 비슷한 일이다. 방향이 정반대에 가까울 뿐, 이효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어떤 사람에게는 익숙하지만, 광범위한 대중에게는 아직 새로운 어떤 트렌드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효리가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는 모습 그 자체보다 그의 삶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나타나는 세상의 변화다. 스타는 노래나 연기로 사랑받는다. 하지만 이효리처럼 유명해질 만큼 유명해진 스타는, 사는 모습 그 자체, 또는 그 삶 속에 담긴 이미지와 지식으로 주목받는 또 다른 유형의 유명인이 될 수 있다. 이효리는 앞으로도 노래를 부르고 MC를 하겠지만, 자신의 삶에 관한 책을 쓰거나 가구를 만들어도 화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그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어 토크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명인, 엔터테인먼트, 라이프 스타일의 모든 정의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효리는 지금도 ‘효리처럼’ 산다. 이제는 무대 밖에서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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