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웹툰의 영상화

2014.09.18
직접 만났을 때 그 모호한 눈빛에 많이 놀랐다. 이미 백 교수 모드가 된듯한 몰입. 역시 배우.

내가 잠시 휴재하고 있는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드라마화가 가속화 되어, 드디어 방영일자도 확정되고 주연 배우도 캐스팅되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게 되어 원작자로서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민도 많아졌다. 몇 가지 질문이 마치 복사 붙여넣기처럼 날아오기 때문이다. 왜 수사물로 장르가 바뀌었나요? 주연 배우 캐스팅에는 관여하나요? 원작의 이야기가 얼마나 담기나요? 생각보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사실 작가마다 관여하는 방식과 정도는 너무나 다르다. 어떤 작가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많은 참여를 하며 ‘자기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노력을 한다. 그럴 경우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도 원작자로서 많은 의견을 내고 반복되는 회의에 함께 참여하면서 원작이 갖고 있는 매력이 사라지지 않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고 보통은 판권이 판매되는 지점에서부터 한걸음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인 스케줄상의 어려움도 큰 이유지만 무엇보다도 2차 창작에 있어서 존중감 때문이기도 하다. 내 손을 떠나 감독의, 프로듀서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작품은 완전히 그 사람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웹툰작가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상반되는 입장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재미있게도 몇 가지의 동일한 원인이 등장한다.

연재물인 웹툰을 영화로 만들 때 제일 먼저 만나는 문제는 러닝타임의 문제다. 두 시간 안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압축의 문제가 등장한다. 두 번째로 만나는 문제는 캐스팅의 문제다. 원작의 캐릭터가 갖고 있는 고유의 매력과 장단점, 혹은 그 이상을 잘 구현할 수 있는 배우는 이야기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위의 문제도 있고 예산의 문제도 있다. 미술도 중요한 지점이다. 사실 만나게 되는 문제는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원인이 되어 작가들은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내가 책임져야 한다. 혹은 문제들을 돌파하는 것이야말로 2차 창작자의 예술적 행위이기에 나는 물러서야 한다.

나 역시 한동안 고민을 했다. 드라마 팀으로부터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았고 의견과 자문을 묻는 연락도 여러 번 주고받으면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 왔다. 그리고 지금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다. 재미있게도 그 결론은 위의 두 가지 입장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흔히 작가는 자기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출산과 육아를 겪어보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조금 이해한다. 고통스러운 과정과 보람 넘치는 결과물.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커나가는 얄미움. 거기에 더해서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여전히 소중하며 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2차 창작, 즉 영상화는 그렇게 만들어진 자식이 내 품을 떠나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부모는 내 자식이 어떻게 컸으면 좋을지 희망할 권리밖에 없다. 그러나 희망까지가 최선일 뿐 그 이후의 일들은 부모의 몫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씨를 뿌렸다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애정과 믿음, 그리고 기다림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을 대할 때 그러한 ‘씨앗’은 테마와 작의라고 생각한다. 테마는 소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입장과 의견이고 작의는 그 작품을 만들게 된 핵심적인 이유다. 만약 작가가 명확한 목적을 갖고 테마를 심어가며 작품을 만들었다면 거기까지가 원작자의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후의 2차 창작은 나와 동등한 또 다른 예술가의 몫이며 나는 믿고 기다리며 응원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웹툰작가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직업을 갖고자 희망하며 드라마 작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은 완전 별개의 문제지만.) 따라서 원작의 작가로서 영상화를 맡은 스태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어쩌면 ‘내가 이 작품을 그린 이유는 이것입니다’ 라는 한 마디 뿐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자신이 만든 작품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얼마나 알고 그것을 믿느냐는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물론, 여자주인공 캐스팅에 있어서 강렬하고 깊은 염원을 내 비추는 것만은 차마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대 만족 상태.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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