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전공 기자가 친구에게 <인터스텔라> 설명하기

2014.11.17
크리스토퍼 놀란(이하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의 국내 흥행에 대해 “한국 관객들의 과학적 소양이 높기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 일면식도 없는 감독에게 갑자기 미안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인터스텔라>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물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셉션> 때와 마찬가지로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직접 내용을 짜 맞추도록 나서게 하는 것은 놀란만의 능력이다. 그래서 <아이즈>에서는 물리학 전공자 기자가 실제로 친구와 동료 기자들에게 <인터스텔라>의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을 기사로 재구성했다. 그는 설명 도중 주위로부터 수없이 “더 쉽게!”라는 말을 들으며 한국 물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 <인터스텔라>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상대성 이론 설명하기
Q. 너 <인터스텔라> 봤냐? 
A. 당연하지. 끝내주지 않냐? 

Q. 나 막판에 울었잖아. 야, 근데…
A. 응?

Q. 왜 아빠는 그대로고 딸만 나이 드는 거야?
A. 아, 그건 중력이 시공간에 영향을 주는 건데…

Q.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못할까.
A. 그러니까 아빠인 매튜 매커너히한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잖아. 그러니까…

Q. 나 영화 보면서 자막 없이 보는 거 같았거든? 알아먹게 말 좀 해줘. 어떻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 시간은 그냥 똑같아야지.
A. 그럴 거 같지? 근데 아인슈타인이 그렇지 않다는 걸 밝혀낸 거야.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이동한 사람의 시계에 시간 차이가 생긴대. 수천억 분의 일 초 정도?

Q. 헐…
A.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이해가 안 되겠으면 일단 머릿속에 넣어두기만 해. 그리고 이것도. 빛의 속도는 30만km/s고, 이 값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Q. 그게 시간하고 무슨 상관인데?
A. 이렇게 생각해봐. 네가 빛을 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근데 달리면서 쏘는 빛하고 서 있을 때 쏘는 빛하고 빛의 속도를 측정한다고 생각해봐. 그럼 속도가 다를 거 같지? 달리면서 빛을 쏘면 달리는 속도까지 더해질 거 같으니까. 정지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보다 작동 중인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갈 때 시간이 덜 드는 것처럼. 그런데 실제로 측정해보니까 빛의 속도는 언제나 똑같다는 거야.

Q. 그러니까 그게 뭔 소리냐고!
A. 일단 시간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볼게. 우리가 북쪽으로 100m 이동하는데 그때 속도가 10m/s면 소요되는 시간은…

Q. 10…초?
A. 그럼 북쪽으로 200m 이동하는데 그때 속도가 10m/s라면 소요되는 시간은…

Q. 20…초?
A. 그렇지!! 드디어 말이 통하는구나!! 시간은 위치 변화를 속도로 나누면 구할 수 있는 거야. 이해했지? 그런데 속도가 항상 일정하면 얼마나 이동하느냐가 시간을 결정하게 되겠지? 만약 달리고 있는 기차가 있다고 생각해봐. 네가 기차 안에 타고 있는데 기차 맨 뒤에서 맨 앞으로 빛을 쐈어. 그럼 네 생각에 빛이 기차 맨 뒤에서 앞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기차 길이를 이동하는 만큼만 걸리겠지?

Q. 당연한 거잖아. 그 정도는 이해한다고. 
A. 근데 표정은 그게 아닌 거 같다? 조금만 더 들어봐. 아무튼 네가 타고 있는 기차를 누군가 바깥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봐. 네가 기차 안에서 쏜 빛이 이동하는 거리는 기차의 길이만큼이야. 그런데 바깥에서 기차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빛이 이동한 거리가 열차 길이에 열차가 이동한 만큼의 거리를 더한 게 되겠지? 그림으로 그리면 이런 거야. 

Q. 음, 어, 대충… 아무튼 그림은 알겠어. 
A. 그런데 아까 말한 대로 빛의 속도는 언제 어느 때나 똑같아. 달리는 열차 안에서 빛을 쏘든 바깥에서 빛을 쏘든 속도는 같아. 그리고 시간은 위치의 변화를 속도로 나누는 거지? 그러니까 열차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간 거야. 빛이 그만큼 더 긴 거리를 움직였으니까. 그럼 매튜 매커너히가 탄 우주선은 기차보다도 훨씬 훨씬 훨씬, 아무튼 훨씬 빠르게 움직여서 더 먼 거리를 가니까 시간이 더 천천히 가겠지? 

Q. ………… 다 그렇다 쳐. 근데 매튜 매커너히의 시간이 제일 천천히 간 건 우주선에 있어서가 아니잖아? 밀러 행성에서 일 조금 하는데 딸은 확 커버린 거잖아!
A. 기억해봐. <인터스텔라>에서 밀러 행성은 강한 중력 때문에 시간이 지구에서보다 느리게 간다고 했지? 밀러 행성에서 1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구에서는 7년이 흐른다.

Q.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중력하고 시간이 무슨 상관이야?
A. 이렇게 생각해봐. 휘어질 수 있는 고무판 위에 무거운 볼링공이 있어. 그럼 고무판이 움푹 파이겠지? 여기에 당구공 하나를 굴리면 방향이 휘어질 거야. 이 상황을, 중력의 영향권에 있는 물체들이 중력의 영향으로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봐. 잠깐 구글링 좀 할게. 찾았다. 이 사진을 좀 봐. 


2. 밀러 행성에서는 왜 시간이 천천히 가나.
Q. 어, 사진 보니까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어. 
A. 이 중력이 시간에도 영향을 미쳐서 흐름을 늦추는 거야.

Q. 야, 이… 뭐가 그렇게 얘기가 점프를 해?
A. 이걸 이해하려면 시공간이라는 개념이 필요하겠다. 우리가 만약 북동쪽 방향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봐.

Q. 어 그래. 드디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왔구나.
A. 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북쪽과 동쪽으로 동시에 위치 변화가 있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 있는 위치가 변하는 동시에 거기까지 가는 만큼의 시간도 변하는 거겠지? 그리고 아까 속도가 시간에 영향을 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움직임은 시간에 영향을 줘. 그렇지?

Q. ……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A. 움직임이 시간에 영향을 주니까 우리가 움직이는 공간은 사실 그냥 공간이 아니라 시공간인 거야. 움직이면서 공간의 변화도 있고 시간의 변화도 있는 거지. 그래서 시간과 공간을 합쳐 시공간인 거고. 그럼 밀러 행성에서 왜 시간이 느리게 갔는지 알 수 있어. 

Q. 아니 무슨 얘기가 웜홀이야. 왜 중간이 없어! 
A. 아냐, 네가 믿지 못하겠지만 이미 넌 모든 걸 알고 있어. 아까 중력 얘기했던 걸 기억해봐. 일단 중력이 뭐지?

Q. 사과 떨어지는 거? 그러니까 잡아끄는 거잖아.
A. 잡아끄는 게 맞기는 해. 중력은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 잡아당기는 힘이야. 두 물체의 질량이 커질수록 커지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작아지지.

Q. 그럼 너와 나 사이에도 작용하는 건가?
A. 응. 다만 우리의 질량이 너무 작아서 그 크기가 미미할 뿐이야. 신기하지? 사과가 땅에 떨어지게 만드는 중력은 물체 중 한쪽이 지구인 경우고, 지구의 질량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과가 땅에 떨어질 만큼 큰 힘이 작용하는 거지.

Q. 알았어. 이건 좀 쉽네. 근데 그게 시간하고 무슨 상관이야?
A. 밀러 행성은 블랙홀 주변에 있었지? 블랙홀은 거대한 항성이 아주 작은 단위로 붕괴되면서 형성된 거라 지구보다 수십억 배 센 중력이 작용하고 있어. 아까 고무판과 볼링공 얘기를 했지? 만약에 볼링공이 어마어마하게 무겁다면 어떻게 될까? 탁구공이든 테니스공이든 그냥 다 움푹 파인 면으로 빨려들어 가겠지? 그게 블랙홀이라고 생각하면 돼.

Q. 그런데?
A. 중력이 어마어마하게 세면 물체의 움직임에 엄청난 영향을 주겠지? 그런데 아까 시공간의 개념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움직임은 시간에 영향을 줘. 그래서 블랙홀의 엄청난 중력이 물체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시간에도 영향을 미쳐서 흐름을 늦출 수 있다는 거지.

Q. …………… 
A. 네가 지금 날 때리고 싶은 것도 이해해. 물리학 전공자들한테도 상대성 이론은 만만한 개념이 아냐. 이걸로 영화를 만든 놀란이 이상한 인간이지. 

3. 놀란은 블랙홀로 무슨 짓을 했나.
Q. 내 말이! 이게 뭐냐고!!! 그런데 왜 영화는 재밌고 난리야. 
A. 그래. 그러니까 너에게는 아직 시련이 필요한 거야. 영화는 재밌는데 내용을 이해 못 하면 밤에 잠이 오겠니? 

Q. 이…… 아우. 아무튼 하나만 더 물어볼게. 매튜 매커너히가 블랙홀 안에 들어갔을 때 왜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잖아? 영화가 막 판타지가 되던데?
A. 아까 블랙홀이 엄청난 중력으로 시공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지? 블랙홀이 어느 정도냐면, 중력이 너무 세서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빨아들여. 블랙홀 안에 들어간 건 밖으로 나올 수 없어서 관측도 못 해. 그래서 관측 가능한 부분과, 관측이 불가능한 부분의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해.

Q. 그런데 블랙홀 안에서 영화처럼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어떻게 장담해? 그냥 상상인 거야?
A.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는 어마어마한 중력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법칙들이 붕괴돼. 그래서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야. 시간도, 움직임도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로 들어가는 부분은 모두 가설이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황당한 이야기는 아닌 거지. 일반적인 물리 법칙이 완전히 무너지는 곳에서의 일이니까.

Q. 완전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구나. 판타진 줄 알았는데 그게 나름 이론이 있다니… 귀신같은 놀란. 
A. 놀란은 <인터스텔라>를 위해 블랙홀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논문으로 내도 될 만한 성과도 얻었대.

Q. 헐.
A. 옥수수밭도 직접 농사짓고 다시 태운 사람이니까 뭐. 

Q. 그럼 블랙홀 모양도 진짜야? 반지 2개가 수직으로 겹쳐 있는 모양이던데? 
A. 그건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고 실제로는 반지 하나야.

Q. …… 화내기도 귀찮으니까 그냥 설명이나 해봐.
A. 혹시 고등학교 다닐 때 신기루에 대해 배운 거 생각나?

Q. 그걸 기억하면 내가 지금 너 붙잡고 이러고 있겠냐?
A. 어떤 물체가 있다는 걸 식별하려면 우리 눈에 빛이 들어와야 해. 그런데 빛이 굴절해서 들어오면 실제로 그 위치에 존재하지 않는 게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 있지. 

Q. 그렇다 쳐. 아무튼 신기루는 기억난다.
A. 그게 영화 속에 나왔던 블랙홀이야. 네가 말한 것처럼 2개의 고리가 서로 수직으로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강한 중력 때문에 빨간 선을 따라 굴절해. 신기루는 온도 차이 때문에 빛이 굴절한 결과이고, 여기서는 중력 때문에 굴절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신기루처럼 실제 모습과 다르게 보이게 되는 거지.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제와 달리 마치 노란 고리에 수직으로 또 다른 고리가 있는 것처럼 눈으로 보게 돼. 그래서 왼쪽 사진처럼 마치 서로 수직인 원반 두 개가 겹쳐 있는 것처럼 영화에서 보였던 거야.   

영화 속 블랙혹(왼쪽)과 실제 블랙홀.

Q. 미안하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다. 그냥 놀란이 잘못했네.
A. 나도 졸업하고 이런 얘기 오랜만에 한 거야. 그래도 간만에 전공을 써먹어서 다행….

Q. 아이고 의미 없다.

참고서적
<물리열차를 타다> 조지 가모브 (승산)
<우주의 구조> 브라이언 그린 (승산)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2> 리처드 파인만 (승산)

글. 임수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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