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③ 마성의 유희열

2014.11.18

유희열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고, 정규 앨범 일곱 장을 발표했으며 수많은 가수에게 자신의 곡을 준 뮤지션이다. 그러나 음악을 만드는 일 외에도 그는 DJ와 MC로 오랜 시간 활동했고 예능에서 의외의 활약을 보였으며 뛰어난 ‘섹드립’과 비범한 외모로 사랑받았다. 이 마르고 퀭해 보이는 마성의 남자가 그동안 그려온 다양한 궤적들을 따라가 보자.


라디오에서 흐르는, 그렇게 우리 좋아했던 옛 노래 속에
1997년, MBC < FM 음악도시 > ‘별의별 게 내 가슴에’ 코너 게스트로 출발해 초대 시장 故 신해철의 뒤를 이은 2대 시장으로 등극한 유희열은 이후 MBC <올댓뮤직>과 KBS <라디오천국>까지 10년이 넘는 기간을 청취자들의 곁에서 보냈다. <라디오천국>을 함께했던 윤성현 PD가 유희열에 대해 “세상의 모든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DJ”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류이치 사카모토와 팻 매스니, 어떤 날과 델리스파이스를 비롯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뮤지션들의 음악에 마음을 담고 유머를 얹어 전하는 DJ였다. 때로는 장난스런 오빠이자 때로는 속 깊은 상담자로 밤을 지켜준 그를 흠모하는 이는 비단 여성 팬들만이 아니었는데, 한겨울에도 애틋한 감성을 지키고자 굳이 추운 동작대교 밑까지 가서 <라디오천국>을 듣곤 하던 한 남성 팬은 유희열과의 전화 연결 당시 “왜 남자는 ‘희열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냐”며 하소연하기도 했을 정도다. 또한 유희열은 <라디오천국>을 진행하던 당시, 같은 시간대 MBC <푸른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의 DJ 성시경이 부른 이 시대 최고의 댄스곡 ‘미소천사’를 선곡하며 이른바 ‘모다대첩’으로 불리는 전설적 디스전의 막을 연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후 < FM 음악도시 >의 4대 시장에 오른 성시경은 1주년 기념 방송에 유희열을 초대한 뒤, < FM 음악도시 > 마지막 방송 당시 흐느껴 울던 유희열의 음성을 재생함으로써 복수는 차게 식혀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도 같다는 진리를 증명했으니 언젠가 유희열이 다시 라디오로 돌아와 역습을 가할 날을 기대해보자.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과거 TV라는 매체에 대해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통로라는 데 마음이 움직였던 유희열은 2009년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 진행을 맡았고 올해로 6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라디오에서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밴드 음악을 많이 소개해줬던”(언니네 이발관 이석원) DJ이자 카라에 열광하는 삼촌이기도 했던 그는 TV로 옮겨와서도 변함없이 심성락 같은 대가부터 신인 아이돌까지 모든 출연자를 존중하며 그에게 맞는 대화를 이끌어간다. 특히 “음악은 좋게, 방송은 재밌게”를 모토로 하는 유희열이 내성적이거나 말주변이 부족한 뮤지션들을 어르고 달래며 그들이 자신의 음악과 스스로에 대해 어필할 수 있는 멘트를 끌어내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끈기 있고 성실해 감탄스러울 정도다. 라디오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유머러스하게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를 익힌 그는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SBS <일요일이 좋다> ‘K팝스타 3’에서도 예능과 음악의 접점을 찾아내며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예능계에 유재석이 있다면 음악계엔 또 다른 ‘MC 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라디오천국>에서 G선상의 아리아를 BGM 삼아 낭랑한 음성으로 청취자가 보낸 시 ‘안 생겨요’를 낭독하며 전국의 솔로들에게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했던 그는 2010년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 ‘솔로갱생 프로젝트’를 비롯해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외로움을 잊게 하는 버라이어티 쇼를 선사하기도 했는데, 요즘도 <스케치북>에 출연하는 뮤지션들에게 성시경이 했던 아바타 분장을 들먹이며 섭외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산타 혈아버지라 불러드릴 만한 열정이다.


방구석 날라리란 그런 말이 쏙 들어가게 여긴 이미 난리
지상에서 편히 몸 뉘일 곳 하나 찾지 못하는 예민한 예술가의 영혼과 툭 치면 부러질 듯 연약한 육체의 소유자처럼 보이지만, 유희열은 의외로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진면목을 보인다.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에서는 옷을 벗고 겨울바다에 입수하는 담대함마저 보여주었던 그는 비록 젖은 모습이 처참하기 그지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예능의 세계에 빠르게 적응했고, tvN <꽃보다 청춘>에서는 ‘유희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에스프레소와 바게트만 먹을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올갱이국 먹는다”는 윤종신의 증언대로, 유희열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수더분한 남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파리한 낯빛과 마른 이마에 불거진 핏줄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다. 낯선 여행지 페루에서 일행들이 잘 때 일정을 짜고 빠르게 동선을 계산하며 즉석에서 외운 스페인어로 현지인에게 길을 척척 묻기도 하는 추진력과 붙임성은 뮤지션이나 DJ로서의 그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능력이자 매력이다. 게다가 온 몸과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느라 주변 일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진짜로 예민하고 연약한 형 윤상을 위해 밤거리를 돌아다녀 커피를 사다 주고 깨워서 저녁을 챙겨 먹이는 다정한 면도 있으니 세상에 이런 남자 하나쯤은 더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하시죠? 기대하지 마세요. 없어서 안 생겨요.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7집 앨범 < Da Capo >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처음이라 발가벗은 기분일 것 같다”며 수줍어한 데 이어 “물론,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긴 한다”고 덧붙인 유희열은 신동엽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야한 농담을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고 불편하지 않게 던질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이는 아이유를 비롯해 걸 그룹 멤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매의 눈’이라 불림에도 불구하고 목이 길어 슬픈 짐승처럼 공격성이 느껴지지 않는 가녀린 외모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타가 공인하는 ‘감성변태’ 캐릭터의 연장선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여성 게스트의 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 주며 “저 이런 거 수집하는 사람 아니에요”라고 굳이 덧붙여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여름을 맞아 수영장 공연을 연다는 가수에게 “꼭 초대해달라”고 당부하는 <스케치북>은 라디오에 이어 유희열의 ‘섹드립’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하는 현장이다. 지난해 긴 드레스를 입고 출연했던 이효리는 다음 무대를 위해 원하는 만큼 치마 단을 잘라달라며 유희열에게 가위를 내밀기도 했는데, “정말 방송을 위해 하는 거예요!”라고 강조하던 그는 “좋은데 굉장히 변태처럼 보일까 봐 지금…”이라고 말을 잇지 못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스케치북>에 출연하는 뮤지션들조차 “감성변태로 유명하셔서 꼭 만나고 싶었다”(서태지)는 기대를 품을 정도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인가. 비록 Mnet <방송의 적>에서 하이힐을 산소마스크처럼 사용하고 후배 존 박을 결박한 채 채찍질하며 희열을 느끼던 그가 이 모든 행위가 자신의 “감성 주머니, 정서의 오브제”라고 고백하는 모습에서 잠시 등골이 서늘해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초라한 날 거울에 비춰 단장하곤 해
잉여 지방이라곤 한 점도 없을 것처럼 마른 몸에 깊게 팬 팔자주름, 퇴폐미를 더하는 다크 서클 등 어쩐지 딸깍발이, 아니 청록파 시인 같은 느낌을 주는 유희열의 외모는 그 스스로 “저는 뛰어난 외모 때문에 음악성이 가려진 비운의 뮤지션”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특히 태극기를 어깨에 두른 채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과거 사진은 ‘광염 소나타’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아우라를 띠고 있으며, 그의 외모에서 흐르는 냉기는 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잊게 할 정도다. 꾸준히 자신과 김연우, 김범수를 ‘가요계 3대 미남’으로 꼽고 “나는 구강구조 자체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던 유희열은 최근 건강함의 상징과도 같은 선홍빛 잇몸으로 치약 CF 단독 모델로 선정되는 경사를 맞았으니, 이는 과거 그와 외모 논쟁을 벌였던 진중권, 윤종신도 미처 이르지 못한 경지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비록 한 남성 팬이 쌍꺼풀 수술을 하러 갈 때 토이 5집 앨범 재킷에 담긴 유희열의 클로즈업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소박한) 이미지’가 되고 싶다고 하자 의사가 “가난한 이미지 말인가요?”라고 되물었다는 슬픈 라디오 사연을 보낸 적이 있지만, 이는 의사의 심미안 부족을 탓할 일이다. 토이(Toy)라는 이름은 사실 ‘인형 같은 외모의 소유자’에서 왔다는 확인 불가한 주장도 있으니 말이다.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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