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한 걸 그룹의 전쟁

2014.11.19

걸 그룹 러블리즈의 데뷔 후 1주일. 한 멤버에 관한 악성 루머가 퍼지기 시작했다. 팬들은 루머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사진들이 인터넷에 이미 존재하던 가짜라는 것을 밝혔다. 루머를 유포하던 인물은 다시 장문의 글을 통해 결백을 호소했고,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밝혔다. 루머 유포자가 수사에서 확실한 증거를 내세우지 않는 한, 지금까지 루머가 사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여론은 유포자와 팬의 입장이 나올 때마다 바뀌었다. 루머나 반박 모두 다양한 이미지 파일을 모아 정리됐고, SNS와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를 통해 순식간에 퍼졌다. 직관적인 자료들은 주장하는 쪽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기 쉽게 만들고, 엄청난 속도는 판단한 틈을 주지 않는다. 러블리즈에 관한 루머가 이전과 다른 것은 루머의 내용이 자극적이어서만은 아니다. 퍼뜨리는 쪽이나 반박하는 쪽 모두, 게임의 룰을 알고 있다.

러블리즈의 소속사는 그들을 이른바 ‘취향저격’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었다. 앨범의 테마는 첫사랑이고, 노래 제목은 ‘Candy Jelly Love’이며, 멤버들은 뮤직비디오에서 교복을 입은 채 가위 바위 보를 하거나 색색의 별사탕을 먹는다. 앨범의 프로듀서 윤상은 인터뷰를 통해 “강수지를 처음 만났을 때 같은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복을 입은 첫사랑의 소녀들이란 노골적인 콘셉트. 누군가에게는 오글거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는 이미 취향이 확실해진 팬 층이다. 걸 그룹은 수 없이 많고, 전성기를 지난 시장은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어렵다. 소속사는 보다 기준이 높아진 소비자의 취향을 명확하게 건드려야 한다. 반면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은 대중을 향해야 한다. 일반 대중은 걸 그룹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어도 자극적인 이슈에는 시선을 보낸다. 시선만 가져오면, 루머는 팬들끼리 다투는 작은 이슈가 아니라 팀의 운명을 바꿀 사건이 된다. 소속사, 팬, 안티 모두 원하는 것이 명확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한꺼번에 모이면서 모두에게 낯선 상황이 벌어졌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이후 데뷔한 f(x), 2NE1, 포미닛, 미스 A는 당시 독특한 콘셉트로 앞서가는 두 팀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이 팀들도 모두 인기 있는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는 새로운 것이 인기를 끈다는 보장은 없다. 대신 확실한 시장을 공략한다. 러블리즈가 첫사랑 소녀의 모습으로 ‘취향저격’을 노리기 전, 이미 에이핑크가 데뷔부터 ‘Mr. Chu’까지 청순 발랄한 콘셉트로 점진적으로 성장했다. 반대로 많은 걸 그룹들은 섹시한 콘셉트로 단번에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청순함과 섹시함, 팬덤과 대중성의 관계. 걸스데이의 소속사 대표는 멤버 민아가 10대일 때는 “섹시함을 표현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거라 판단”해 “‘반짝반짝’처럼 귀여움과 발랄함이 극대화된 곡”을 주로 선보였고, 그 결과 “코어 팬을 확실히 잡았”다. 이후 ‘기대해’, ‘여자 대통령’, ‘Something’처럼 섹시 콘셉트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몇 년 간 쌓인 데이터는 걸 그룹의 인기에 몇 가지 공식이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최근의 걸 그룹들은 그 안에서 더 좋은 답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러블리즈는 윤상의 참여로 음악성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뮤직비디오에서는 뒤뚱거리는 소녀의 뒷모습, 다양한 색깔의 디저트, 그것을 먹는 멤버들의 표정 등으로 디테일하게 팬 층의 취향을 노린다. 규모는 줄어들고 경쟁자는 훨씬 많아지고, 소비자의 기준이 올라간 시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답이 아니라 답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최근 데뷔한 걸 그룹 중 레드벨벳이 ‘취향저격’ 대신 보다 복잡한 콘셉트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데뷔곡 ‘행복’은 밝고 상큼하기는 했지만 특정한 여성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고, ‘Be Natural’은 섹시하되 몸을 노출하는 대신 몸의 선만을 강조했다. 레드벨벳이 다른 걸 그룹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 정도의 회사여야 지금 시장에서 데뷔곡과 다음 곡을 직관적이지 않은 콘셉트로 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러블리즈의 첫 앨범 제목은 < Girls' Invasion >이다. 누구나 소녀시대의 영문명(Girls' Generation)을 연상할 이름이다. 소녀시대는 결국 ‘Gee’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소녀들의 시대를 열었다. 반면 지금은 ‘Gee’처럼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도 범대중적인 히트를 얻는 걸 그룹은 없다. 걸 그룹의 시대는 저물었고, 이제 신인 걸 그룹은 기존 시장에 ‘침공’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시장은 갈수록 전쟁터와 비슷해지고, 싸워야할 상대는 많으며 소속사와 가수는 물론 팬, 안티, 대중까지 모두 싸우는 법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는 어렵고, 정착하기는 더욱 어려우며,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기는 더욱 더 어렵다. 그리고, 성공에 대한 공식과 계산을 넘어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는 ‘러블리’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장 어렵다. 러블리즈 같은 신인 걸 그룹들 중 다시 거기까지 갈 수 있는 팀은 나올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이곳이 진짜 전쟁터는 아니라는 증명일 테니까.

글.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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