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PD님,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요

2014.12.17

지금 MBC [무한도전]은 마치 메이저리그의 전설 칼 립켄이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을 늘려가던 당시 같다. 9년, 408회. 하지만 올해에도 작은 옥탑방에서의 MT부터 몇십만 명이 참여하는 선거 이벤트까지 치러냈다. 시청률은 평일 미니시리즈가 대부분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는 시대에 최소 10% 이상, 최근 한 달간 13~14%를 기록 중이다. 충분히 오래 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 10주년과 500회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9년째, 일곱이던 멤버가 다섯으로 줄어들었다. 하차한 멤버를 영상에서 자르고, 지우고, 어떤 기획들은 폐기해야 했다. [무한도전]이 하하와 정형돈의 어색한 사이를 공개하고 패션쇼를 하고 봅슬레이를 탈 때, 그들은 거칠 것 없는 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면서도 늘 3할 타율은 유지하는 베테랑 타자다. 유재석과 정형돈은 400회 특집 ‘비긴 어게인’에서 그들의 쇼가 황혼기라고도 했다. 당장 다음 회에 끝난다 해도 기립박수를 받아야 할 만큼 충분히 했다. 반면 [무한도전]은 지금도 MBC에서 언제나 광고 완판을 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 1년에 수백억대의 매출을 올린다는 의미다. 9년째, 출연자가 일곱이 아닌 다섯이 된 지금도 시청자와 방송사는 모두 [무한도전]을 원한다.

2009년, 인터뷰에서 김태호 PD는 늘어나는 방송 시간과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무한도전]은 현재 회당 80분 내외의 러닝타임을 채워야 한다. 수익 활동 중에는 화면에 눈에 띌 만큼 크게 보이는 PPL이 추가됐다. 차승원이 MBC [무모한 도전]에서 연탄을 나를 때, 김태호 PD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9년 후 차승원이 [무한도전]에 돌아와 ‘극한 알바’에서 탄광 아르바이트를 할 때, [무한도전]은 모든 것을 다 했다. 패션쇼, 레슬링, 봅슬레이, 조정, 선거, 레이싱, 월드컵 응원, 하다못해 그 모든 세월에 대한 회고까지. 그런데도 김태호 PD는 지금도 계속 하고 있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영석 PD가 떠나도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은 계속될 수 있다. 연출자마다 재미의 차이는 있지만, 출연자가 여행을 떠나 게임을 한다는 틀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이적한 CJ E&M은 [꽃보다 할배] 같은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그에게 휴지기를 줬다. 반면 갈수록 러닝타임을 늘리는 MBC 경영진이 [무한도전]을 시즌제로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김태호 PD를 잠시나마 대체할 PD는 아예 없다. 이 형식 없는 쇼에서 시류에 맞춰 선거를 하고, 멤버들의 역사를 꿰뚫는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무한도전]의 제작 시스템은 김태호 PD의 두뇌를 CPU처럼 사용한다. 그것은 그가 [무한도전]으로 예능 PD의 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다. 반대로, 누구든 이 연결고리를 떼는 순간 [무한도전]은 정지한다.


멤버들은 나이 들었고, 사고도 쳤다. 멤버가 한 명 빠질 때마다 프로그램의 방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해야 하니 프로그램의 새로운 리더를 뽑으며 포맷에 가깝게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400회를 기점으로 멤버들끼리 지난 9년을 추억하며 끈끈함을 되새기기도 했다. ‘비긴 어게인’부터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쩐의 전쟁 2’, ‘극한 알바’는 모두 환기와 회귀의 정서를 가졌다. 나이 들었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말 다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도 거리에서, 63빌딩에서, 탄광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그러니 다시 힘내야 한다. ‘유혹의 거인’처럼 녹화 전날에는 술 마시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하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힘내지 않아도 다 됐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정준하와 박명수가 ‘비긴 어게인’에서 젊은 시절 즐겨 하던 노래들을 노래방에서 부른 것은 1990년대 가수를 무대에 올리는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확장됐다. 열심히 해보자고 애쓰지만, 좋았던 그때를 추억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편집은 점점 더 친절해지고, 시니컬하게 멤버들을 놀리던 자막은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가장 쿨하고, 가장 악동 같던 쇼는 웃음만큼이나 짠한 순간이 많은 중년 남성들의 쇼가 됐다. 체력이 달려도 안간힘을 써서 타석에 선다. 그럼에도 관중은 박수를 보내고, 그 누구도 은퇴 시점을 결정할 수 없다. 충분히 멋지게 뛰어왔는데, 여전히 언제까지 더 해야 할지 모를 만큼 남은 날들이 많다. 그의 JTBC 이적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 유무와 상관없이, 이것은 [무한도전]의 현재를 알려주는 신호다. 김태호 PD가 떠나면 [무한도전]은 사실상 끝이다. 이적 자체가 자신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 지금 끝난다 해도 이미 역사상 최고를 거론할 수 있는 위치의 쇼가 주는 부담과 책임이 한 사람의 PD에게 얹어져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편한 대로 하라고 하지는 못한다. 그 자신은 좋아도 싫어도 편해도 힘들어도 [무한도전]을 계속했고, 하고 있고,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고맙다고, 잘 보고 있다고, 그래도 건강은 챙기라고 할 수밖에.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날이 오면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를.

글. 강명석
교정. 김영진
사진제공. MBC




목록

SPECIAL

image 박미선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