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씨스타, 걸 그룹의 몸을 가진 소년만화 주인공

2015.01.19

아니, 보라는 무슨 죄란 말인가. 지난 1월 8일부터 시작한 MBC every1 [씨스타의 쇼타임] 첫 화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더 효린의 즉흥적인 요구에 따라 각각 10만 원씩 들고 강원도 횡성으로 소고기를 먹으러 간 그들은 배가 부를 만하자 음식값 내기로 서로의 예능감 순위를 매겼다. 전화 연결을 통해 심사위원 역할을 맡은 데프콘은 예쁘지만 입담이 부족하다며 보라를 예능감 최하로 지목했고, “내가 예능 제일 많이 한다”는 보라의 절규는 멤버들의 비웃음에 묻혔다. 실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MC를 맡았던 보라에게 부당한 평가가 내려졌다는 건 아니다. 이런 식의 순위 매기기는 본인들의 캐릭터를 최대한 대중에게 어필해야 하는 신인 그룹에게나 어울리는 형식이다. 데뷔 5년 차로서 현재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걸 그룹 중 하나이자 멤버 각각의 개인 활동도 활발한 씨스타가 굳이 횡성까지 내려와 소고기를 먹으며 예능감 테스트를 하고 있어야 할까. 그것도 맏언니 보라를 제물로 삼으면서까지.

하지만 그래서 씨스타다.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Mnet [No Mercy]에서 소속사 연습생을 심사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지만, 또한 여전히 뭐라도 하나 더 분량을 뽑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돌. 이것은 타고난 캐릭터보다는 경험으로 각인된 습성에 가깝다. 지금 보면 당혹스럽기까지 한 ‘가식걸’에서의 의상 콘셉트처럼, 초기의 그들은 본인들이 잘할 수 있는 것과 회사가 보여주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흔한 신인처럼 보였다. MBC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에서 보라가 보여준 불꽃같은 스프린트처럼, 그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해야 했다. 물론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miss A처럼 거대 기획사의 지원 안에서 완벽한 콘셉트를 만들고 데뷔 자체로 주목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거의 모든 신인 그룹에겐 생존과 성장이 가장 중요한 화두다. 씨스타가 독특한 건, 하나의 명확한 티핑포인트 없이 눈앞의 장애물을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씩 넘어서며 느릿하되 확실하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니까짓게’로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지만, 정작 그들을 이슈의 중심에 올려놓은 건 당시 유행하던 MR 제거 영상이었다. 이후 KBS [불후의 명곡]에서 효린이 보여준 가창력은 모든 아이돌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실력 논란의 여지를 잘라냈다.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로 ‘건강돌’의 반열에 오른 보라는 MBC [야구 읽어주는 남자]의 MC가 되어 자신의 건강미를 강화해나갔고, 보라와 다솜의 미모, 효린의 가창력처럼 장점이 뚜렷하지 않던 소유는 중독에 가까울 정도의 운동량으로 수많은 다이어터들의 워너비가 되었다.


그래서 씨스타는 걸 그룹임에도 마치 소년만화 주인공을 보는 듯하다. 선머슴 같다는 뜻이 아니다. 더 강한 적을 물리치며 서서히 더 강해지는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그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미션을 빠짐없이 완수해낸다. 음원 시장에선 ‘나 혼자’, ‘Give It To Me’ 같은 히트 싱글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선 멤버 개개인의 능력과 매력을 증명해나간다. 허명이든 거품이든 인지도를 쌓는 게 중요해진 아이돌 시장에서 유독 씨스타만큼은 단단한 실체를 갖는 건 그래서다. 노골적으로 건강미를 드러냈던 ‘Touch My Body’는 콘셉트에 팀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그동안 가꿔온 몸매와 누적된 캐릭터를 한 점으로 폭발시키는 것에 가까웠고, 가장 최근의 싱글이자 이단옆차기와 작업한 ‘I Swear’를 통해서는 어떤 작곡가를 만나도 씨스타는 안정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걸 증명했다. 걸 그룹 피라미드의 가장 위층에 올라섰음에도 그들에게선 정점에 선 자의 여유로움과 여전히 다음 단계로 성장하려는 역동성이 공존한다.

현재 방영 중인 [씨스타의 쇼타임]을 비롯해 그들이 유독 리얼리티 쇼에서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육사시미’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음식이든 먹음직스럽게 먹는 소유나, Y-STAR [씨스타의 미드나잇 in 홍콩]에서 말끝마다 “여자들이란…”을 붙이며 혀를 차던 효린의 털털한 성격 덕분만은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내숭을 떨지 않는 성격이지만, 또한 내숭이 필요 없는 팀이기도 하다. 소속사가 부여한 콘셉트를 충실히 수행하기보다는, 바닥에서부터 착실히 뛰고, 열창하고, 운동하며 자신들의 캐릭터를 뚜렷한 실체로 쌓은 그들은 리얼리티 쇼에서도 어색한 콘셉트를 유지하기보다는 각각의 개성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씨스타의 미드나잇 in 홍콩]에선 이국의 배경을 바탕으로 일상이 화보인 걸 그룹을 연기할 수도 있었지만, 정작 효린은 취두부를 먹고 개다리춤 포즈를 취하고, 다솜은 [씨스타의 쇼타임]에서 고기를 굽는 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씨스타가 싸우면 밴이 흔들린다는 루머에 대해 ‘우리 친해요’라는 가식적인 포즈를 취하기보다는 “우리 밴 없어요”(소유)라고 태연히 말하는 것이야말로 씨스타의 변함없는 태도이자 매력이다.

물론 지금까지 천천히 기반을 다지며 올라갔다는 것이, 멤버들 본연의 캐릭터와 매력을 통해 범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지금의 인기와 위치를 계속 보장해주진 않는다. 마케팅과 기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아이돌 시장에서 자기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매력적인 걸 그룹은 흔치 않지만, 독특함이 꼭 독보적인 것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언제 어디서든 여전히 씨스타일 수 있는 정체성은 어떤 콘셉트와 곡 안에서도 기획에 매몰되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다. 지금 씨스타가 여전히 기대된다면, 차곡차곡 올라온 현재의 정점 때문이 아니라, 그 기반을 밟고 다시 어디까지 오를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소년만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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