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부르지 않으면 노래가 없는 것처럼

2015.02.13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토요일 밤, 친구와 노트북으로 옛날 사진을 구경했다. 마구 슬라이드를 넘기다 이(2)와 오(5) 모양을 한 초가 월병 위에 꽂혀 있는 사진이 나왔다. 손이 멈췄다. 기분이 묘했다. 슬픔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났구나.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생일은 왜 축하받는 거지? 죽을 날에 가까워졌다는 의미인데.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문학동네)에 따르면 내가 다다른 나이 혹은 나잇대는 이렇다. 매년 키가 0.16센티미터쯤 줄어들기 시작하고, 1일 열량 소모량은 12칼로리씩 줄어든다. 지구력과 골밀도는 최고가 되는데, 이는 곧 내리막길에 접어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졌다. “30세가 넘은 뒤 죽는 날까지는 대여섯 번쯤 예외가 있을 뿐 거의 매일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슬프다.”(에머슨) “모색과 번민과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한탄 같은 젊음의 특징들은 이제 적절하지 않고 소용도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31세의 톨스토이) 그리고, “사람은 30세가 되기 전에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결코 현실로 느끼지 못한다.”(찰스 램)

괜한 오버가 아니다. 이 나이는 유전자의 임시 보관소로 부여받은 우리의 육체가 이제 번식에 효율적인 상태가 아님을 판단 받고 자연의 관심 밖에 놓이기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어디에나 있다고 믿었던 ‘제3의 선택지’가 생물계의 일원으로서는 없다는 사실을 악의에 찬 선물처럼 배달 받는다. 예컨대 출산을 하면 빠른 속도로 허약해진다. 그런데 ‘아예 출산하지 않는 경우’는 유방암의 3대 위험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때가 됐을 때 무대에 오르고, 주어진 대사를 읊고, 신호가 주어지면 퇴장하라.” 그리고 나면 유전자 입장에서 우리는 “폐기해도 좋은 껍데기”고, 이제 잉여의 수명을 이어갈 뿐이다. 존 업다이크는 28세에 쓴 소설에서 말했다. “우리가 자연에게 몸값을 지불할 때, 우리가 자연을 위해 아이를 낳아줄 때, 우리의 풍만함은 끝이 난다. 자연은 이제 우리에게 용무가 없다.” 물론, 노년과 죽음을 다룬 마지막 장에는 더 잔인한 말들이 이어진다.

실즈는 죽음에 관한 자료를 팝콘을 집어먹듯이 심드렁하게 훑다가도 이것이 너의 일임을 아직도 모르겠냐고 허를 찔러 공포에 못 박히게 만든다. 그러다가 90세까지도 섹스에 집착한 ‘생존 기계’인 아버지를 신나게 까발리며 웃게 만들더니, 다시 어설픈 신의 시점 흉내를 거두고 대머리와 요통을 가진 자신의 몸으로 돌아온다. 과학적 사실과 통계, 문학적 냉소와 스스로의(그리고 그놈의 아버지의!) 징그러운 추억을 교차시키는 이 책의 결론은 어쩌면 제목에 다 나와 있다. 그러나 그것과 책을 경험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삶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질 것이다. 그 운명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삶이라 하지 않는다. 필멸의 두려움 앞에서 취하는 크고 작은 조치들과, 언젠가 자연에게 할퀴어 없어질 육체에게 그래도 더 나은 순간을 누리게 하려고 애썼던 기억들과, 절대 그 육체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음에도 다른 육체의 주인에 닿으려고 하는 착각과 불가능에의 희구가,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삶의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실즈처럼 이 어리석음을 가엾게 바라보는 구경꾼이자,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한 당사자다. 더 짧게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종종 그 아무 것도 아님이 처음 보는 방식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만나거나, 아무 것도 아닌 이들끼리 처음 듣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광경을 본다. 그때 잠깐 인간이 신기하게 설계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다르게 존재하고,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도 삶의 중요한 내용이다. 내게 그런 것 중 하나였던 어느 노랫말로 마지막을 갈음한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도 아닌지 몰라, 해파리보다 일찍 사라지니까. 그렇다고 죽어있을 수만은 없잖아.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니까. 걷지 않으면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부르지 않으면 노래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내일을 기다리는 것처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이랑, 삐이삐이)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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