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달관하지 않는 사토리 세대

2015.03.06

[조선일보]의 ‘달관 세대’는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한 대로 구멍투성이이지만 그들이 그걸 몰라서 잘못 쓰거나 빠트린 건 아닐 것이다. 이 신문의 독자층에게 바칠 맘 편한 이야기를 위해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떠밀리는 비극은 자유로운 선택지의 하나인 양 포장됐고 달관하라는 메시지를 위해 팔다리가 잘린 듯한 사례가 수집됐다. 그리고 ‘계기’로서 일본에서 온 개념과 책 한 권이 동원됐다. ‘사토리 세대’와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다.

이 책을 보면 과연 끝이 안 보이는 불황과 그들을 바라보는 딱한 시선 속에서도 일본 젊은 세대의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2010년 조사 상 20대의 약 70%가 자신이 행복하다고 답했으며, ‘정말 단카이 세대처럼 입시 지옥을 거쳐도 좋은 거야? 그땐 Wii도 SNS도 없었는데?’라는 물음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황에 최적화된 브랜드들이 있고, 그것의 조합만으로도 당장은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기성세대를 향해 과거의 행복의 기준을 적용 말고 있는 그대로를 승인해달라는 얘기로 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의도적으로) 멈춘 것이 [조선일보]의 기사였다. 하지만 사실 이곳이 출발점이다.

책은 의외로 최근의 사회 운동을 묘사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안주하는’ 선택지가 있음에도 그것이 아니라 ‘불만족하는’ 부분을 조명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불만족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젊은이들은 불만이 있고 뭔가를 하고는 싶지만 그 열망이 사회나 ‘큰 세계’와 이어지는 구체적 회로를 몰라 맥락을 잃은 채 표류한다. 공통의 적이(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바라크’가) 없고 합의된 변화상도 없다. 문턱이 낮아지고 때론 축제처럼 보이기도 하는 시위는 “타자의 승인을 얻기 위한, 즉 ‘마음 둘 곳’을 찾으려는” 좁은 반경 내로 수렴한다.

일본에서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변화의 상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 경험이라면 60년의 ‘안보 투쟁’이 마지막일 것이다. 하지만 곧 일본 경제는 놀랍게 성장했고, 그 열매가 각자에게 돌아가면서 이른바 정치의 계절은 끝났다. 사회는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정사원이 되어 주택을 보유하고, 풍요로운 4인 가정을 갖추는 ‘좋은 인생 모델’의 에스컬레이터가 거의 모두에게 작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90년대 들어 그것이 작동을 멈췄다. 일본에서는 고용체제가 복지체제를 대체해 왔으므로, 이는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를 의미한다. 가족 인프라에 기댄 프리터 청년들에게 당장 눈에 보이는 빈곤은 없지만, 이들이 전부 노인이 되는 때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지난 세기 ‘젊은이 졸업’이 기업에 들어가 사축(私蓄)이 됨으로써 완료되었었고, 그래서 지금 그것이 불가능해진 일본인들은 ‘1억 모두가 젊은이’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계급론 소멸의 환상을 제공했던 ‘1억 모두가 중산층(一億總中流)’ 슬로건을 빗댄 것으로, 바꿔 말해 계급론의 현실성이 부활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주 비관적인 예상 하나를 내민다. “만약 일본이 격차가 고정된 계급 사회로 바뀐다면 혹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일본이 경제 성장을 누린 약 30여 년이 냉전 파트너(미국)의 비호와 우연한 행운들이 겹친 원본 없는 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은 전부터 널리 공유되어 왔다. 이 책에서도 ‘돌아가야 할 그때가 없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새로운 공통의 미래상을 그려나가야 하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추고 두 번 다시 작동하지 않는다. 뭔가 불안하지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기묘하게 행복하다…. 이 책은 무척 비관적이며 그래서 [조선일보]의 의도적 오독 혐의는 추가된다. 더욱 비관적이게도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말하려면 마지막 문장도 ‘그냥 지금도 죽을 것 같다’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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