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망각하지 않기 위한 망각

2015.03.27

사회적 비극을 겪은 뒤 담론 공간에는 ‘잊지 말자’는 말이 넘쳐난다. 그것은 비극이 나를 우연히 비켜갔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그 부조리를 견디게 하는 유일한 선택지다. 불가피하기에 쉽고 모두가 동의하기에 안전하며, 그만큼 무력하다. 힘을 키우는 방법은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냉정하게,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는가를 묻기.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이 책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슬픔과 교훈을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 관광이라는 길을 제시한다. 아즈마 히로키를 중심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 팀을 만들었고, 그 활동 중 하나로 기초 조사를 위해 ‘선례’를 찾아가 기록했다. 선례란 냉전 말기인 1986년, 20세기 인간이 핵에 품었던 희망을 비웃듯 폭발한 구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이다. 그간 체르노빌의 재현이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한 땅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책은 일상의 영위를 포착함으로써 특별한 위치에 선다. 물론 체르노빌은 여전히 유례없는 폐허이고, 필자들은 ‘예단하지 않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현장만이 갖는 박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취재 내용을 전하면서 필자들이 반복적으로 드러내는 우려 중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강렬한 사건도 잊히고 어떤 뜨거운 논점도 냉각되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박물관도 사고로부터 25년이 지나자 대중의 기억에서 점점 잊히다가 ‘체르노빌만 특화하지 말고 우크라이나의 다른 비극도 함께 전시하자’는 정부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관광지화 실현은 제염이 거의 완료된 후의 일이다. 다만 아카이브의 가치는 빠른 결정에 달려 있으므로 긴급히 역사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망각 앞의 공통 전선이 강조되면서, 여러 정치적 논쟁들, 특히 사고의 책임을 묻는 일은 더 이상 얽매이지 말아야 할 무엇으로 묘사된다. “정부, 전력회사, 원자력 마을을 적대시하고만 있어서는 사태가 호전되지 않는다. 싸워야 할 근원적 대상, 그 이름은 바로 망각이다.” 그러면서 칼끝의 폭은 ‘모두’에게로 확장된다. 취재진이 체르노빌 박물관 부관장인 콜레레브스카 씨에게 ‘이곳에서는 일본의 전쟁 관련 박물관과 달리 절대적인 악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을 때 질문이 겨냥하는 것(선악 이분법)과 기대하는 답은 명백하다. 그녀는 물론 “모두에게요”라고 말한다.

누구나 망각과 싸워야 함은 분명하며 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그 ‘모두’가 좀 더 추궁하기 편한 대상처럼 등장한다. 사고는 전 인류에 벌해지는 문명사적 재해이기 이전에 비민주적인 정책 결정이 누적돼 일어난 인재였으며, 일차적 책임 주체는 여전히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이다. 왜 이분법을 거둬주어야 할까. 망각 그 자체와의 싸움이 중요한 만큼 어떻게 기억할지가 중요하며, 그것은 사고의 객관적 규명과 그것을 둘러싼 정치를 일축하고서는 불가능하다.

기억의 계승은 책임을 묻는 정치 그 자체라는 사실이 일본만큼 잘 보이는 곳도 드물다. 2차 대전 당시 전범국인 동시에 원폭 피해지이기도 했던 일본의 전쟁 기억은 야스쿠니처럼 ‘전쟁을 낭만화’하거나 히로시마처럼 ‘평화를 낭만화’하는 양극의 기만으로 계승됐고, 이는 엉성한 전후 처리의 유산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와의 만남 속에서 야스쿠니와 히로시마는 엉뚱한 포인트에서 한 카테고리로 뭉뚱그려진다. ‘감상적 접근’과 ‘종교적 상징성’이 뛰어난 우크라이나 전시 방식의 반대항이다. 일본의 전쟁 전시가 객관성에 집착하고 책임 문제에 몰두하느라 경직돼 있다는 필자들의 평가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전시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 의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행동력과 기존 이미지를 박살내는 체르노빌의 모습엔 분명 감명이 있다. 그러나 잊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뭔가를 잊고 있다는 인상도 함께 남는다. ‘체르노빌’과 ‘가이드’에는 느낌표를, ‘다크 투어리즘’에는 물음표를 찍게 된다.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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