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PD의 시간은 천천히 간다

2015.04.01

나영석 PD가 연출하는 tvN [꽃보다 할배]나 [삼시세끼]는 꼭 집중하며 볼 필요는 없다. 가족들과 먹을 야식 이야기를 고르거나 걸레로 방바닥을 닦아도 된다. 1~2분쯤 화면을 쳐다보지 않아도 차승원은 계속 요리를 할 것이고, 네 명의 노배우를 모신 이서진과 최지우는 아이스크림을 사는데 얼마를 썼는지를 두고 티격태격 할 것이다. 다만 나영석 PD는 느릿하게 진행되는 에피소드 사이에서 잔소리하는 차승원의 ‘차줌마’ 캐릭터를, 맛있게 완성되어가는 요리를 번갈아 보여줄 것이다. [꽃보다 할배]의 출연자들이 두바이에서 본 음악 분수 쇼는 이순재가 아쉬움을 표할 만큼 금방 끝났다. 하지만 음악분수에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가 나올 때, 영상은 ‘Thriller’ 뮤직비디오에 나오던 좀비를 분수에 대입시켜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며 더 긴 시간동안 분수를 보여준다.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때론 한 지역을 횡단해야 했던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시절과 달리, 나영석 PD는 출연자들이 촬영동안 하는 일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대신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으로 여러 번 반복한다. [꽃보다 할배]는 최지우와 이서진의 첫 만남을 보여주며 그 후 있을 그들의 갈등을 미리 보여준다. 시청자가 몸을 TV 앞으로 숙이고 볼 만큼 순간적으로 확 몰입 시키는 사건은 적다. 출연자들은 그저 밥을 먹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삼시세끼]에서 강아지 산체가 의도를 알기 어려운 행동을 해도 산체라는 이름과, 손호준이나 고양이 벌이와의 관계를 통해 점점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말은 지금 나영석 PD의 연출법이기도 하다. 언제 봐도 화면에는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것은 어느새 친숙해진 무엇이다.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분수마저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루하지는 않다. 그리고, 여유롭게 보다보면 가끔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tvN [꽃보다 청춘]의 세 뮤지션이 마추픽추를 볼 때, 차승원이 정말로 빵을 만들어낼 때 같은 것들.

차승원과 유해진의 [삼시세끼: 어촌편]은 나영석 PD의 이런 연출법이 시청자에게 어떤 경험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그저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를 할 뿐이다. 시청자도 그 호흡을 따라 가족과, 또는 SNS로 잡담을 하며 건성건성 TV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보면 차승원의 요리에 입맛이 돌고, 차승원과 유해진의 관계를 보며 즐거워한다. 자극은 없지만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의 분위기는 만드는 재미. 그러니까, 온갖 재료를 넣은 찌개에 MSG 약간 집어넣은 적당한 간. 


나영석 PD의 작품들이 때론 지나칠 만큼 캐릭터와 음악에 집착하는 것은 그의 단점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꽃보다 할배] 첫 회부터 이순재에게 ‘순재우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음악분수의 움직임을 굳이 마이클 잭슨의 춤과 비교하는 것은 억지스러워 보인다. 시청자가 친숙해지기 전부터, 나영석 PD는 영상 속의 모든 것에 애정과 흥미를 느끼라고 유도한다. 에피소드에 따라 쉴 새 없이 바뀌는 음악 역시 과잉이라는 반응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화면마다 음악이 흐르고, 출연자들에게 캐릭터가 생기면서 시청자는 화면 속 인물에 친숙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다. [삼시세끼]에서 이서진이나 차승원이 재료를 구하고 요리를 하는 것은 실제 사람들이 겪는 고생이 아니라 ‘서지니’나 ‘차줌마’가 보여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된다. [삼시세끼]에서 출연자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마음 편히 먹고 잘 수 있는 신세여서만은 아니다. 나영석 PD는 캐릭터와 음악을 강조하는 연출로 음식을 준비하고, 여행을 다닐 때 생길 수 있는 힘든 부분들을 즐거운 에피소드로 만든다.

그래서 나영석 PD가 tvN에서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웃음이나 감동 같은 명확한 재미를 주는 대신 어떤 기분 좋은 분위기가 깔린 체험을 선사한다. 여행이나 요리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에게 친숙함을 느끼게 하지만, 출연자들의 이름까지 각자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며 꾸며낸 캐릭터들은 화면 속 이야기가 완전한 현실처럼 느껴지게 하지는 않는다. 현실처럼 친숙하지만, 현실의 각박함은 날아갔다. 집중해서 봐야할 만큼 웃기거나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 많지는 않지만 재밌는 캐릭터들이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좋은 곳을 구경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 막장 드라마가, 큰 스케일의 리얼리티 쇼가, 또는 빠른 호흡의 토크쇼가 인기를 끄는 세상이다. 그러나 나영석 PD는 시청자에게 자신의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만큼은 여유를 즐기라고 하는 듯 하다. 맥주 한 캔, 치킨이나 다른 짭짤하거나 매콤한 음식. 그것과 함께 하는 느긋한 금요일 밤. 나영석 PD는 특정한 요일과 분위기에서 극대화 될 수 있는, 체험의 요소가 섞인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요즘에는 TV를 보며 경험하기 어려운, 누군가와 모여 느긋하게 TV를 볼 때의 그 기분. 그것이야말로 어떤 웃음이나 감동보다도 지금 대중이 느껴보고 싶은 감정 아닐까. 지금 가장 대중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조건이다. 굴곡 있는 기승전결도, 이렇다 할 클라이맥스도 없이,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보게 되는 어떤 예능. 나영석 PD가 만들어낸 예능의 새로운 경지다.

글.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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