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부터 손호준까지, 나영석이 새롭게 발굴한 캐릭터

2015.04.10
나영석 PD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새로운 별명을 얻어 간다. 이승기는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이하 ‘1박 2일’) 초창기부터 허당 승기라 불리었고, 이서진은 tvN [꽃보다 할배] 이후 투덜이가 호처럼 쓰인다. 그만큼 나영석 PD는 출연자들에게 명확한 캐릭터를 부여하고, 그것은 각본이 아닌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한 작품의 특징과 맞물려 실제 출연자들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 이승기부터 최근의 차승원이나 최지우까지, 나영석 PD의 작품에 출연한 스타들은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를 얻으며 호감도가 올라갔고, 그중에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영석 PD의 방송에 나오기 전과 후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인물들을 골라봤다. 이것은 나영석 PD가 사람을 바라보고 활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승기, 신곡 홍보의 기회가 필요했던 유망주에서 시청률 70%의 사나이로
삼국지 줄거리를 1분 만에 요약하고 사법고시 문제도 맞추는 엄친아 이미지야 원래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나영석 PD는 여기에 ‘허당’이라는 특징을 잡아주며 건실하지만 옆집 청년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게다가 몇 년 동안 프로그램을 한 결과 이승기는 나영석 PD가 말버릇처럼 하는 “안 됩니다!”나 “땡!”을 잡아낼 만큼 예능감도 갖추게 됐고, 이것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MC로 활약하는 데 자산이 됐다. ‘1박 2일’ 첫 등장 때만 해도 호시탐탐 신곡 홍보의 기회를 노리던 유망주는 그렇게 시청률 30~40% 프로그램의 주역이 됐고, SBS [찬란한 유산]이 방영되던 시절 매주 일요일 이승기가 나오는 방송의 시청률은 도합 70%가 넘었다. 2008년 테스트 촬영까지 마쳤던 MBC [돌아온 일지매] 대신 ‘1박 2일’에 잔류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이서진, 좋은 집안의 배우에서 투덜이 일꾼 서지니로
MBC [다모]나 [이산] 같은 드라마로 알려진 배우였지만, “전 제일은행장 고(故) 이보형 씨의 손자”, “원래 집이 부자”라는 정보가 드러나면서 왠지 깐깐한 도련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웃을 때 움푹 파이는 보조개가 귀엽다고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나영석 PD는 [꽃보다 할배]에서 그를 선배들을 모시는 짐꾼으로 캐스팅했고, 그가 “노예처럼 부림당할 때 가장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강원도 정선에서 농사짓는 tvN [삼시세끼]를 기획했다. 이서진이 원래 갖고 있던 부유한 이미지는 여유롭고 능력 있고 예의도 바른 성격으로 치환됐고, 사람들은 그에게 부담 없는 호감을 갖게 됐다. 여기에 선배들이 없을 땐 끊임없이 불평하는 모습에 ‘투덜이’라는 웃긴 캐릭터까지 잡아주니, 10년 전 종사관 나리였던 사람이 B급 정서 물씬 풍기는 위메프 CF를 찍는 데 이르렀다. 이제 누구도 그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영석 PD가 만들어준 애칭도 퍽 깜찍하다. 올해 45살인데, ‘서지니’라니!


신구, 4주 후에 뵙자던 할아버지에서 귀여운 구야 형으로
신구의 대표적인 명대사는 “4주 후에 뵙겠습니다” 혹은 “니들이 게 맛을 알아?”였다. 그러나 [꽃보다 할배]는 이 노배우에게서 또 다른 캐릭터를 꺼냈다. 그는 [물랑루즈] 티켓값을 지원해달라며 나영석 PD에게 ‘간절한 애교 눈빛’도 보낼 줄 알고, 다리가 불편한 백일섭을 누구보다도 잘 챙기고, 술도 잘 마신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에게 ‘구 형’이라 불리다가 버릇없게 보인다며 수정된 별명은 ‘구야 형’. 다른 출연진도 직진 할배, 떼쟁이, 로맨틱가이 같은 별명을 얻었다. [꽃보다 할배]의 네 노배우들은 대중이 가진 노인에 대한 편견을 깼고, 박근형은 9일 개봉한 영화 [장수상회]에서 주연을 하기도 했다. 나영석 PD는 “이미 캐릭터가 완성된 분들이라 내가 딱히 한 일은 없고 그냥 찍기만 했다”고 말하지만, 그가 주조한 공간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연석, [응답하라 1994]의 유망주에서 MBC 새 드라마 주인공으로
tvN [응답하라 1994]로 인기를 얻었지만 여주인공과 이어지는 캐릭터는 아니었고, 다른 배우들도 그러하듯 드라마로 쌓은 좋은 이미지는 종방과 동시에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나 tvN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은 오랜만에 드라마 속 캐릭터를 상기시킨 것은 물론, 허구의 캐릭터가 현실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었음을 보여줬다. 그는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손호준을 위해 망고를 직접 깎아줄 정도로 배려 있고, 하루 3만 원의 예산으로도 배낭여행이 처음인 친구들을 위해 밤에 핸드폰 플래시까지 켜가며 여행 책을 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청춘 그 자체를 체화시킨 체형을 가졌다. 그는 속옷만 입은 모습이 공개된 것에 대해 “왜 내가 벗은 모습은 자막으로도 안 가려주고 다 나가냐”며 하소연했지만, 연관 검색어가 ‘드로우즈’인 것을 보면 라오스가 굉장히 덥고 습한 지역인 것은 그에게 호재였다. 유연석은 그렇게 1년 간격으로 연타 홈런을 날렸고, MBC [맨도롱 또똣](각본 홍자매)의 주연 배우가 됐다.


차승원, 안팎으로 다사다난하던 배우에서 이 시대의 ‘사기 캐릭터’로
영화 [하이힐]은 관객수 34만을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여기에 가족사가 알려지며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삼시세끼: 어촌편](이하 [삼시세끼 2])은 그에게 엄청난 반전의 계기가 됐다. 차승원만큼 요리를 하는 사람은 많을 수 있지만,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모델이자 뛰어난 배우이면서 헬스를 주제로 한 예능을 할 정도로 운동도 잘하는 남자가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나영석 PD는 차승원에게 홍합짬뽕이나 어묵탕, 심지어 식빵과 오렌지 마멀레이드 같은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던져주며 그의 캐릭터를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삼시세끼 2] 이후 ‘차줌마’가 된 그는 최근 각종 식품 CF를 섭렵 중이고, 그가 출연할 예정인 MBC [화정]은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손호준, 시청률 1.9% 드라마의 조연에서 새로 찍은 광고만 5편인 CF 스타로
배우 인생의 분기점이 됐던 [응답하라 1994]로 얼굴을 알렸지만 일찌감치 결정한 차기작 KBS [태양은 가득히]는 시청률 1.9%(TNmS 수도권 기준)라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능글맞기까지 하던 [응답하라 1994]의 해태와 달리,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과 [삼시세끼 2]의 손호준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 먹어보는 기내식을 신기해하고, [삼시세끼]에서 옥택연의 빈자리를 채우던 순간에도 묵묵히 일만 하다 갔다. 심지어 [삼시세끼 2]에서는 게스트로 출연했지만 열심히 일만 하다 간 까닭에 제작진의 호감을 얻어 고정 출연자까지 됐다. 강아지 산체와도 대화하듯 잘 노는 이 귀여운 청년은 특유의 매력으로 [꽃보다 청춘] 라오스 편 출연진들과 삼성카드, 올리브영 광고에 출연했고, [삼시세끼 2] 이후 CJ 알래스카연어, SK텔레콤 band LTE, 기발한 치킨의 모델도 됐다. 손호준의 진정한 한 방은 [응답하라 1994]가 아닌 [삼시세끼 2]였던 것이다.


최지우, ‘지우히메’에서 뭐든 잘하는 유능한 짐꾼으로
일본에서는 ‘지우히메’였지만 한국에서는 SBS [천국의 계단] 이후 그만큼의 히트작이 없었다. 한류 스타 캐스팅을 강조한 SBS [스타의 연인]은 한 자릿수 시청률로 고전했고, [수상한 가정부]나 [유혹]도 10% 초반이었다. 하지만 [삼시세끼]에서 야무지게 김장을 담그며 신선함을 줬고, 이서진은 정선에 왔던 사람 중 최지우가 가장 일을 잘한다며 추켜세웠다. 그리고 “짐꾼을 시키면 정말 짐꾼만 할 것 같다”([꽃보다 할배] 그리스 편 제작발표회)는 이유로 나영석 PD가 [꽃보다 할배]의 짐꾼으로 캐스팅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최지우의 성격은 신경 쓸 일이 많은 노배우들과 만나면서 꽃을 피웠고, 미리 영어를 공부하고 숙소를 안내하며 선배들에게 거리낌 없이 팔짱 끼며 싹싹하게 대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 그가 출연한 KBS [첫사랑] 이후 딱 20년 만에, 현실의 최지우에게 구체적인 캐릭터가 생겼다. 나영석 PD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말이다.

글. 임수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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