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들, 야구 안 가르쳐줘도 돼요

2015.04.15

사실 아무럴 것도 없는 취미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보던 것이 스포츠였고, 그 중 하나가 국내 프로야구였을 뿐이다. 나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어린이 회원에서 연고지를 두 번이나 옮긴 프로팀의 팬이었다. 프로야구의 침체기라 불렸던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중반이 되는 사이 내가 좋아하던 팀은 악재의 반복 끝에 결국 해체 후 가까스로 재창단 되었으나,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때 부턴가 야구팬을 자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있었다. 내가 자각한 건 주황색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부쩍 늘었을 때였다. 승리의 짜릿한 감동은 짧고, 패배와 트레이드의 아픔이 훨씬 많은 이 스포츠를 왜 좋아하는 건지,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런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의 ‘얼빠’니?” 무례함에 화를 낼 새도 없이, 무시하는 듯한 질문들이 계속됐다. “넥센의 4번 타자가 누군지는 알아?”부터 “병살타가 뭔지는 알고 야구 보냐?” 등, 선수는 물론 야구의 기본적인 룰 등 범위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여성이라는 것과 야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으나, 내가 오랫동안 야구를 보아왔다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야구에 대해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야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룰이 조금 까다롭다 보니, 남성이 ‘야구를 잘 모르는’ 여성에게 ‘가르쳐 주기’ 좋은 스포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야구 광팬이라는 어떤 남자와 야구장에 갔을 때는 궁금해 하지도 않았는데 “특별히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학창 시절 자신이 야구부”였음을 어필했다. 한창 경기를 보고 있던 중 인필드 플라이가 선언 됐고, 나는 ‘볼이었는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인필드 플라이란 말이지”로 시작되는 그의 긴 해설이 시작됐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1도’ 몰랐으나, 그가 너무 즐거워 보여 몇 번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 9회 말 아웃카운트 3개를 잡아내며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는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 경기는 수많은 직관패의 추억을 제치고 가장 괴로웠던 직관의 역사로 남았다. 이런 답답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에는 아예 ‘오빠가’ 알려주는 야구 이야기가 기사로 등장했다.

그래도 나는 야구장에 간다. 종종 함께 직관을 가던 타 팀 팬들이 민망해할 정도로 팀이 자주 지던 시절에도, 팀의 대표 타자가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기에서 홈런이라도 치면 이적 걱정에 홈런 친 선수를 욕하던 시절에도 갔다. 그 와중에도 우리 구단주는 잊을만하면 선수를 팔았고, 사정 모르는 남자들은 ‘야구 보는 여자가 다 똑같지 뭐’ 라는 조롱 섞인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한 편에서는 걱정 아닌 걱정도 이어졌다. 그만 하면 됐으니 적당히 다른 팀으로 ‘갈아타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과 만날 지는 야구는 도대체 왜 보냐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메이저 리그 우승 반지를 낀 남자 김병현과 25억 원에 LG로 이적했던 ‘택근브이’ 이택근이 영입된 2012년, 이번에는 나조차도 ‘떨지’ 않는 ‘혀레발’을 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던 팬은 어느새 분홍색 물결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늘었다. 성적이 오르고 팬이 늘자, 또 다른 질문이 쏟아졌다. “이제 선수 안 팔아?”, “넥센이 잘 해서 좋아하는 거지?”. 팀이 잘 안 풀릴 땐 안 풀려서, 팀이 잘 나갈 땐 잘 나가서 고통 받는, 말 그대로 영원히 고통 받으며 야구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듯이 나에게 야구는 아무럴 것 없는 취미 중 하나이자 관성 같은 것이라서, 어쩔 수 없다. 이미 망한 인생, 그깟 공놀이 조금 더 본다고 더 망할쏘냐. 다만 나도 말 좀 하자.

글. 한송이(방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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