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사회적 뇌], 우리는 모두 ‘관종’이다

2015.05.01

지난해 12월 10일 전라북도 익산. 보수언론이 ‘종북 콘서트’라고 불렀던 황선·신은미 토크콘서트 현장. 객석에 있던 열여덟살 소년 오 아무개 군이 불타는 냄비를 던졌다. 가방에는 황산도 준비했었다. 200명이 대피했고 두 명이 화상을 입었다. 종북에 분개한 18세 남자의 백색테러라니 이보다 징후적인 사건이 있을까. 한국형 극우 테러의 서막을 상상하며 후배 기자를 익산으로 보냈다. 사흘 후 취재 메모를 받았다. “뭐야 이거? 그냥 관종이잖아.”

내가 상상했던 확신형 청년 극우 같은 건 거기 없었다. 오군은 보수를 지지하지만 사람 됨됨이는 진보가 낫다는 둥, 보수는 호남을 혐오해 싫다는 둥 정치성향이 들쭉날쭉했다. 반면 관심을 갈구하는 성향만큼은 지독히 꾸준했다. 그는 웃긴대학, 일베 등등 가는 커뮤니티마다 무플에 시달렸고, 자폭에 가까운 ‘어그로’로 대응하다가, 어김없이 강퇴를 당했다. 범행 직후에 그는 친구의 계정을 빌려서까지 일베에 수갑 인증샷을 올렸다. 테러는 신념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프라인판 어그로였다.

한동안 잊었던 이 친구를 다시 떠올린 것은, 신경과학자 매튜 리버먼이 쓴 [사회적 뇌]를 읽으면서다. 이 책은 우리가 인간을 생각하는 방식을 뒤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현생인류의 근본 특징이 이성과 지성이라고 믿는다. 현생인류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부터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회성은 이성을 가진 인류가 다른 인간과 교류하면서 나오는 부차적인 특성이라는 게 통념이다. 리버먼은 바로 이 순서가 거꾸로라고 본다. 사회성, 그러니까 연결의 욕구야말로 인간의 가장 밑바닥 본성이다.

인간은 뇌가 커서 머리도 크다. 출산이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신체가 발달하기 한참 전에 태어나야 한다. 물과 음식과 보금자리를 제 힘으로 구할 수 없는 신생아가 필사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것은 부모의 보살핌, 즉 사회 연결망이다. 우리는 연결을 갈구해야만 살아남는 종이다. 리버먼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마저도 뒤집는다. 생리적 욕구보다 더 밑바탕에 사회적 욕구(매슬로 피라미드에서는 세 번째다)가 들어가야 한단다. 뇌 영상 연구를 보면, 특별한 과제를 받지 않은 ‘디폴트 모드’에서 뇌는 이성이 아니라 사회성 영역이 켜진 상태다. 우리는 비용·편익 계산기가 아니다. 연결망 탐색 레이더다.

취재 메모를 받아든 나는 오군이 확신형 극우가 아니라 “그냥 관종”이었다고 결론을 바꿨었다. 이제 한 번 더 결론을 바꿀 차례다. “그냥 관종”은 지나치게 폭이 넓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범죄로까지 나아가지야 않지만, 관심의 결핍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이를테면 나는 거의 매번 무플인 기사로 괴로워한다). 리버먼의 세계에서, 관심 추구는 먹고 살만한 다음에야 떠오르는 사치 같은 게 아니다. 관심 결핍은 부모와 떨어진 신생아처럼 생존과 직결되는 공포다. 이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관종이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썼다. 2014년 11월부터 사회 기사를 쓴다. 농땡이를 보다 못한 조직이 발로 뛰는 부서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확하다.

디자인. 전유림




목록

SPECIAL

image 박미선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