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송은이&김숙, 남자 없이 잘 살아

2015.06.22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이하 [비밀보장])의 시작은 미약했다. 송은이는 “이렇게 하는 거 맞아?”라고 허둥댔고 김숙은 “이거 누가 듣나?”라며 걱정했다. 유료 광고 대신 감자탕 집을 하는 송은이의 친구와 카페를 경영하는 황보 등이 직접 녹음해 보낸 ‘지인광고’를 무료로 틀었다. 3회를 맞아서야 로고송이 생겼다. 친한 윤민수가 홍진경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 만들었다가 사용되지 못한 곡을 얻어 와 홍진경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송은이!” “김숙!”을 다급히 외쳤다. 청취자 질문이 충분히 오지 않는 바람에 다른 인터넷 게시판에 묻혀 있던 사연을 빌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은 [비밀보장]은 방송 한 달 만에 코미디 부문 1위에 올랐다. 전통의 라디오 강자 SBS [두시탈출 컬투쇼]를 제친 것은 물론이다. 지난 17일 방송된 10회에는 8개의 유료 광고가 붙었다. 지금 [비밀보장]은 아이튠즈 팟캐스트 오디오 부문 전체 1위다. 

송은이와 김숙은 각각 데뷔 23년, 21년 차 예능인이다. 하지만 [비밀보장]에서 이들은 종종 ‘일이 없다’고 한탄한다. 현재 두 사람이 고정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은 없다. 2013년 MBC every1 [무한걸스]가 폐지된 이후 여성 예능인들을 중심으로 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맥이 끊겼다. 메이저 예능은 남자들의 세계다. 지난 3월, JTBC [썰전]에서 여러 예능 PD들은 “남자만의 의리가 팀워크, 케미스트리로 발산된다”, “주 시청 층이 여성이라 남성을 쓸 수밖에 없다” 등의 이유를 들었다. 중년의 여성 예능인을 위한 자리는 결혼 생활 속사정이나 살림 노하우를 털어놓는 토크쇼, 육아 리얼리티 정도다. ‘주부’나 ‘엄마’의 포지션 없이도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리 잡은 인물은 이영자뿐이다. 송은이는 지난해 tvN [택시]에서 “숙이와 나는 종종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농담을 한다”고 말했다.

마흔이 넘었지만 결혼하지 않는 여자는, 마흔이 넘었는데도 모든 사람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김숙과 송은이는 방송에서도 ‘머리를 길러봐라, 연애에 관심을 가져라’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듣는다. 좋아하는 여행 얘기를 해도 ‘같이 여행 가고 싶은 남자’에 대한 질문이 돌아온다. 그러나 여성에게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야지”만이 유일하고도 완벽한 덕담인 양 쏟아지는 세상에 지겹도록 단련된 이들의 대처는 노련하다. 송은이는 “환갑에 대학 가시는 어르신들처럼 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떨고, 김숙은 “목공은 배신하지 않지만 남자는 배신해!”라고 외치며 상대의 입을 막는다.


연애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가는 두 사람의 생활은 [비밀보장]에서도 종종 농담의 소재로 쓰인다. “요즘 너무 남자가 없어”라는 김숙에게 송은이는 “요즘이라는 뜻을 몰라요?”라며 정색해 묻고, 서로의 노화와 폐경에 대해 우스갯소리를 던지기도 한다. 스무 해 가까이 친하게 지내며 다져진 팀워크는 ‘엄마 잔소리를 안 들으면서 최대한 늦게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처럼 사소한 질문부터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의 혼전순결, 지켜야 할까’ 같은 논쟁적인 주제에서도 빛을 발한다. “유행어는 없지만 남의 얘기를 잘 듣고 서포트하는 데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던 송은이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숙의 호흡은 이 상담을 짤막하고 흥미진진한 토크쇼로 만든다.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해 시비를 가리거나 명확한 답을 내려주는 대신,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친근하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들의 경험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비밀보장]이 아니라면, 결혼한 흡연 여성들의 고충에 대한 온갖 에피소드를 신나게 주고받으며 폭소할 수 있는 자리가 또 어디 있겠나.

최근 [비밀보장]의 한 청취자는 프로그램의 줄임말 ‘비보(vivo)’가 이탈리아어로 “생존자, 살아 있다”는 의미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오랫동안 거친 예능의 세계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송은이와 김숙은 자신들이 갈고닦은 능력을 활용해주지 않는 플랫폼 밖으로 나와 코미디 실력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말 그대로, 언니들은 살아 있다. 남자 없이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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