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으로 가는 여름 피서

2015.07.22
서울 도심에 위치한 조선의 궁들은 심드렁히 건물 사이에 놓여 있어 무심코 지나갈 심산이 크다. 그러나 얼핏 다 비슷해 보이는 궁궐들도 자세히 보면 그 시대나 쓰임새에 따라 다른 형태와 미관을 갖추고 있고, 따라서 한 호흡 쉬러 가는 휴양지로서도 각기 다른 매력을 준다. 시원한 커피와 양산을 받쳐 들고 고궁의 아름다움과 함께 잘 가꾸어진 궁의 후원을 거닐다 보면, 이것이야말로 왕의 피서다! 또한 주변에는 오랜 명성의 냉면집들까지 있으니 하루의 피서 코스로 완벽하다. 마침 7월 한 달간 무료입장이다.
 


덕수궁 (월요일 휴궁)
: 석조전 예약. 석조전 내부는 가이드를 따라서 관람할 수 있으며 약 45분이 걸린다. 고종이 머물렀던 서양식 궁궐의 모습을 복원한 장면은 호화로우면서도 낯설어 관람보다는 탐험의 느낌에 가깝다. 특히, 석조전 2층 테라스에 나가 보는 덕수궁 일대는 일품이다. 무료. 

추천 코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덕수궁 하면 데이트 코스로 잘 알려진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지만, 궁 안쪽 역시 서양식 건물과 조선의 양식이 잘 어우러져 있어 한 바퀴 산책하기 좋다. 시청을 마주 보고 있는 대한문으로 들어가 처음 보이는 전각이 바로 함녕전이고, 그 뒤편으로 가서 잘 가꿔진 계단식 정원을 오르면 고종황제가 커피를 마시던 이국적 정자인 정관헌과 마주하게 된다. 현재 정관헌 내부로 들어갈 수 있으니 세 방향으로 펼쳐진 테라스 바깥의 경치를 즐겨보자. 그 후 서쪽으로 펼쳐진 산책로는 5분 내외의 짧은 거리에 모두 울창한 나무로 우거져 있어 산뜻한 느낌을 준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석조전의 뒤편으로 가게 되는데, 곧 석조전과 덕수궁 미술관, 중화전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때 세워진 신고전주의 건축물로 흡사 그리스의 신전을 연상시킨다. 조선의 전각들을 기대했다가 마주치는 석조전은 1900년대 초 급변했던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시 동쪽을 향해 걸으면 덕수궁의 법전인 중화전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걸으면 중화전을 중심으로 돌담을 따라 크게 한 바퀴를 도는 셈인데, 30분이면 충분하다.

쉴 땐 여기: 석조전 분수대 앞 벤치. 덕수궁에서 가장 평화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이곳은 서양식 근대건물인 석조전과 조선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중화전이 한눈에 담긴다. 앞에는 분수가 흐르고 뒤쪽에는 작은 녹지가 있어서 어느 방면으로도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면집: 대한문을 나와 시청역 12번 출구를 따라서 서울시립미술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첫 골목 안쪽에 유림면이 있다. 50년 전통의 메밀국수집이다. 점심시간에는 근처에서 몰려온 직장인들로 줄을 서니 점심시간대를 피해서 방문하도록 하자. 


경복궁 (화요일 휴궁)
: 경회루 특별관람 예약. 10시, 2시, 4시, 3차례 가이드와 함께 경회루 내부에 들어설 수 있으며 예약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주말의 경우 마감이 빠른 편이니 미리미리 예약하면 경회루의 전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무료.

추천 코스: 경복궁은 1395년 태조 4년에 지어진 조선에서 가장 오래된 궁궐로 부지가 넓어 서쪽으로는 국립고궁박물관과 동쪽으로는 국립민속박물관을 품고 있다. 시간이 된다면, 국립고궁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을 먼저 들른 후 경복궁을 거닐어보자. 보다 조선의 역사가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경복궁은 다 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리는 넓은 장소이기 때문에 짧게 핵심만 보고 싶다면 광화문에서 북악산을 바라보며 북쪽으로 걷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길에 처음 마주하는 곳은 경복궁의 법전인 근정전으로, 각종 의식 행사가 치러지던 장소이니만큼 높이 오른 근정전과 궁을 감싸고 있는 북악산과 인왕산의 조화를 볼 수 있다. 이 근정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면 왕이 연회를 베풀던 경회루를 볼 수 있으며, 경회루에서 다시 근정전을 지나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북쪽으로 올라가며 경복궁의 내전을 관람할 수 있다. 내전의 후원격인 향원정은 소박함과 정교함이 돋보이는 연못으로 주변이 고즈넉하고 그늘이 우거져 쉬기에 좋다. 특히 향원전 북쪽의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역사적 장소다. 마지막으로 건청궁 왼쪽에 위치한 집옥재 일원을 보고 북문인 신무문을 나서면 경복궁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

쉴 땐 여기: 향원정의 서쪽 상수리나무 아래 벤치. 경회루에 비해 인적이 드물고 연못 가득한 연꽃잎이나 탁 트인 시야에 펼쳐진 인왕산과 북악산의 경치는 일품이다. 상수리나무의 그늘 또한 벤치 전체를 드리우며 시원한 바람을 품고 있다.

냉면: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북쪽을 향해 5분 정도 걸으면 3대 평양냉면 맛집으로 손꼽히는 봉피양이 있다. 봉피양 냉면은 12,000원. 1인분에 24,000원인 돼지갈비 역시 비싼 편이지만 둘을 함께 먹으면 입 안에서 그 고기가 녹아 사라진다고 하니 도전할 만하다.  


창덕궁 (월요일 휴궁)
: 후원을 꼭 보고 싶다면 예약을 하자. 인원이 남는다면 예약하지 않고도 티켓을 구매할 수 있지만, 복불복에 운명을 걸 수 없다면 예약은 필수. 티켓값은 5,000원.

추천 코스: 창덕궁은 한때 비원으로 불렸을 만큼 궁 뒤편의 후원이 유명한 곳이다. 자연의 지리를 그대로 활용하여 물과 산, 정원이 어우러져 있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즐길 수 있고, 야간개장으로도 유명해 매년 봄과 가을 예매전쟁을 벌이는 곳이다. 창덕궁의 진미를 느끼고 싶다면 후원을 중심으로 코스를 짜보자. 돈화문에서 인정전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후원 입구가 보인다. 가이드와 함께 한 시간 반을 둘러보며,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 맛도 좋고, 자연과 조화가 이뤄진 부용정 동쪽의 영화당에 올라 왕이 누렸던 풍류를 느껴볼 수 있다. 그렇게 후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다시 돈화문이 보이게 되는데, 돈화문과 마주 보고 있는 궐내각사 일원과 구선원전의 미로 같은 구조를 따라 돌다 보면 인정전의 입구 진선문이 보인다. 진선문 앞으로 조금 높이 오른 길이 왕이 다니던 어도다. 어도를 걸으며 왕이 된 기분을 만끽하다 보면 드디어 법전인 인정전을 볼 수 있다. 비교적 작은 건물이었던 궐내각사 일원을 보다가 거대한 인정전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인정전의 동쪽으로 향하면 선정전을 지나 차례대로 희정전, 대조전 일원, 성정각까지 볼 수 있다.

쉴 땐 여기: 성정각 앞과 후원 입구에 벤치가 놓여 있으나 이 자리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선에 있고, 후원 입장을 대기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곳이다. 그럼에도 앉아서 쉬고 싶을 때는 언덕을 따라 낙선재 방향으로 내려가 보자. 낙선재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에 놓인 벤치는 그늘 아래 숨어 있으며, 궁궐 내에 위치한 사대부 양반집의 풍경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냉면: 북촌면옥. 창덕궁 매표소에서 돌담을 따라 3분 정도 올라가면 보인다. 냉면은 8,000원. 자극적이지 않은 냉면으로 입이 심심할 수 있으니, 녹두빈대떡을 같이 시키자. 빈대떡 가격은 7,000원. 창덕궁 후원까지 돌고 먹는다면 약 2시간에 걸친 여정을 달래줄 것이다.


창경궁 (월요일 휴궁)
: 창경궁은 8월 11일부터 27일까지(17일, 24일 휴무) 야간 특별 관람을 시행한다. 옥션 티켓과 인터파크 티켓을 통해 8월 5일(수) 오후 2시부터 신청할 수 있으며 인터넷 예매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다. 경복궁 예매도 함께 이뤄진다. 

추천 코스: 창경궁은 일제 이후 대중에게 개방하여 80년대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등으로 이용되며 한때 창경원으로 불렸다. 그 잔재가 남아 있어 다른 궁들에 비해 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궁의 중심인 명정전 북편인 춘당지 일대는 식물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홍화문에서 북쪽으로 천천히 거닐며 올라가면 쉽게 볼 수 없던 꽃과 나무들이 펼쳐지고, 식물들에 둘러싸인 춘당지와 조우하게 된다. 춘당지의 일부는 내농포라 하여 왕이 직접 농사를 지어 시범을 보이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물에 잠겨 과거보다 더 큰 규모의 연못이 되었다. 춘당지에서 북쪽으로 좀 더 오르면 하얀 외관의 식물원을 볼 수 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하얀색 외관이 특히 아름다워 사진 찍기 좋은 장소이니 인생 사진을 건져 가자. 식물원에서 다시 춘당지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왕실의 내전이 있던 환경전, 경춘전, 통면전 등을 볼 수 있다. 왕실 여성들이 주로 기거하던 곳으로, 실제 생활공간으로서 발달된 창경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나오면 창경궁의 법전인 명정전이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 궁궐 내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빛바랜 단청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눈에 담긴다. 명정전을 보고 동쪽으로 향하면 홍화문으로 나올 수 있다. 

쉴 땐 여기: 춘당지. 녹음이 우거져 있어 그늘이 많고 드넓은 연못 아래 한가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관망할 수 있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이국적인 식물원과도 가깝다. 

냉면: 창경궁 근처는 다소 외져 냉면집을 가기 위해 좀 더 걸어야 한다. 홍화문으로 나와서 창경궁로를 따라 종묘 방향으로 10분 정도 내려오면 종로 4가 사거리 세운스퀘어 4층에 함흥곰보냉면이 위치해 있다. 1960년에 개업한 종로의 오랜 맛집 중 하나다. 냉면은 8,000원, 왕만두 6,000원이다. 칼칼한 맛을 좋아한다면, 회냉면(8,000원)을 추천한다.

글. 심하림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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