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윤 씨, 얼른 천만 원 받으세요

2015.08.31

“무조건 빵 터지게 해주세요.” 최근 1~2년 새 광고주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대개 따라오는 말은 “예산이 별로 없어요. TV 말고 온라인에서 바이럴로 틀 거예요.” 전략도, 콘셉트도, 예산도 없이 무조건 웃겨달라니. 그게 싫어서 바이럴은 찍지 않는 특A급 CF 감독도 있다. 특A급이 아닌 나는 그럴 때마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웃으며 말하곤 했다. “SNL을 섭외하셔야겠네요! 하하하!”

더 이상 이 농담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개그맨 유세윤이 광고를 만들기 시작했으니까. 얼마 전엔 그가 제작한 프랜차이즈 음식점 ‘후쿠오카 함바그’ 바이럴이 이슈가 됐다. 돌판 위에서 춤추고 있는 핑크색 의상의 여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2개의 젓가락. 젓가락을 잡고 춤추던 여자가 갈색의 고기로 잘 구워지면 그걸 입으로 가져가는 남자. 남자가 마주 앉은 여자에게 손짓으로 고기를 더 구우라고 시킬 때 카피가 뜬다. “즐겁게 굽고 맛있게 먹자.” 여자를 익어가는 고기에 비유한 이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타임라인은 ‘극혐’과 ‘안 본 눈’을 찾는 외침으로 뒤덮였다. 해당 영상은 당일 삭제됐다.

이 해프닝이 있고서야 유세윤이 광고회사를 차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구든 백만 원만 내면 광고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회사 이름이 ‘광고백’이란 것도. 그러니까 뭇매를 맞은 후쿠오카 함바그 바이럴은 유세윤이 광고회사 대표로서 정식으로 의뢰를 받고 만든 결과물이다. 이 외에도 모텔, 청첩장 회사, 부동산 같은 개인사업자용에서 롯데, 처음처럼 같은 기업용까지 다수의 바이럴을 제작한 것을 확인했다.

물론 유세윤도 광고를 만들 수 있다. 당신도 만들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 아닌가.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 적은 비용으로 입소문(바이럴)을 노려볼 수 있는 ‘바이럴’의 시대. 반대편엔 TV의 침몰이 있다. 사람들은 피리 부는 스마트폰을 따라 빠르게 TV 앞을 떠나가고 있다. 웬만한 팬심이 아니고서야 ‘본방사수’는 드문 이야기. TV가 냉장고보다도 덜 팔리는 통계수치를 보면서 회당 천만 원 가까이 하는 TV 광고를 고집하는 광고주는 많지 않다. 돼지바, 남자라면, 비락식혜 등 큰 제작비 들이지 않고도 반향을 일으킨 바이럴 성공 사례들이 나오면서, 어느덧 광고주들 사이에 ‘바이럴=저예산’, ‘바이럴=유머’의 공식이 굳어져 버렸다. 편강한의원 병맛 광고를 통해 그걸 만든 ‘미쓰윤’이라는 작은 광고회사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일까지 생겼다.

‘저거라면 내가 잘하겠는데?’ 누가 더 저렴하게 웃기냐의 싸움이 돼버린 바이럴 광고판을 보면서 유세윤은 기회를 봤을지 모른다. 콘셉트의 차별화는 어렵지만 여성을 차별해서 노이즈를 일으키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이럴 때 ‘저예산’은 좋은 구실이 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려면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방어논리를 만들어준다. 직업의식, 윤리의식도 함께 디스카운트된다.

하지만 광고백도, 최저가에 모신다는 다른 바이럴 제작사들도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들이 만드는 건 ‘광고’라는 기본적인 사실. 광고의 핵심 역할은 단순히 이슈메이킹에 있지 않다. 클라이언트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나는 되묻고 싶다. 화장실유머 같은 바이럴이 짧은 ‘어그로’ 외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그 브랜드가, 제품이, 개인사업자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입히는 건 아닌지. 사람들의 리트윗이 꼭 동의를 의미하지 않고 ‘ㅋㅋㅋㅋㅋㅋㅋ’가 구매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제작비에는 촬영료라는 실비 외에 크리에이티브 비용은 물론 문제해결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다행히 유세윤이 대표로 있는 광고백은 2016년 1월 1일부터 백만 원이 아닌 천만 원에 광고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지금보다 나은 품질의 결과물을 기대해본다.

김진아(광고플래너)
이노션 월드와이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프로덕션 ‘골목아이디어앤필름’을 꾸려가고 있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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