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과 오혁은 슈프림을 입는다

2015.09.03

구글·네이버 검색창에서 ‘supreme’이란 줄기를 쭉 뽑아보라. 패션·음악계의 온갖 ‘핫’하고 ‘힙’하다는 고구마들이 딸려 나온다. 놈코어, 믹스매치, 스웨트셔츠, 그래픽 티셔츠부터 지금 한창 뜨는 캠프 캡, 코치 재킷, 봄버 재킷까지 스트리트 패션의 키워드란 키워드는 이미 싹쓸이했다. 평범함을 추구만 할 뿐 절대 평범해 보이면 안 되는 놈코어 바람을 제대로 탔다. 특히 언더그라운드 래퍼들부터 음원 강자들까지, 한국에서 ‘힙’한 느낌을 주는 뮤지션들은 모두 슈프림을 입는다.

대중화의 시작은 Mnet [쇼 미 더 머니 3]에서 바비와 기리보이였다. 스타가 되고픈 래퍼들과 래퍼가 되고픈 아이돌들은 주거니 받거니 슈프림을 입고, 썼다. ‘포텐’은 지드래곤(이하 GD)과 오혁이 터뜨렸다. 플랫폼은 MBC [무한도전]이었다. GD는 슈프림과 샤넬을 절묘하게 오갔다. 오혁은 슈프림의 사촌 격인 퍼킹 어썸, 트래셔까지 언더에서 오버로 확 치고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지난 8월 8일 오혁의 보라색 후드티와 태양의 초록색 야구모자가 한 화면에 잡힌 후, ‘슈프림x트래셔 후디드 스웨트셔츠 마젠타(Supreme x Thrasher Hooded Sweatshirt magenta)’와 ‘테리 니트 캠프 캡(terry knit camp cap)’은 레어템으로 부상했다.

지금은 옷부터 재떨이까지 파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지만 슈프림이 1994년 론칭했을 때는 스케이트보드 전문점이었다.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는 명민한 사업가이자 서브컬처 후원자였다. 스케이트보더들에게 슈프림 1호점인 미국 뉴욕점을 놀이터로 내어줬다. 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놀도록 내버려뒀다. 스케이트보더 지오바니 에스테베즈를 점원으로 채용, 그가 훗날 유명 그래피티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할 때까지 지원했다. 또한 혁신적인 아티스트들에게 슈프림의 데크(스케이트보드 판)를 캔버스로 내어줬다. 라멜지, 돈디 화이트 같은 언더그라운드 고수들과 창업 첫해 잇따라 협업했다. 라멜지는 뉴욕 지하철을 도화지 삼았던 그래피티 아트의 대부이자 1983년 앨범 [Beat Bop]을 발표했던 힙합 뮤지션이며 힙합계의 원조 패션 아이콘이다. 화이트는 같은 해 서브컬처 다큐멘터리의 고전 [Style Wars]에 등장했던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그래피티, 비보잉, 랩 등 뉴욕 하위문화란 하위문화는 총출동했던 이 영화는 이듬해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슈프림은 그래피티 작품이 된 데크를 매장에 전시하고,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교류하면서 미국 청년문화의 첨병이 됐다.

반항, 반체제, 힙합, 펑크록, 스케이트보드 등 젊음을 상징하는 다양한 키워드를 품은 괴물 브랜드는 그렇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데미언 허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제프 쿤스, 리한나, 레이디 가가 같은 거물들이 슈프림의 협업 제안을 군말 없이 수락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게다가 ‘사든 말든 알아서 하라’는 시건방진 태도에 마니아들의 몸은 더욱 달아올랐다. 미국·영국·일본·프랑스 4개국에만 있는 오프라인 매장 앞에 늘어선 긴 줄과 ‘완판’은 일상이었다. 슈프림은 고객들이 발을 구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쓰리 식스 마피아(Three 6 Mafia), 르자(RZA), 랙원(Raekwon) 등 힙합 아이콘들이 협업한 한정판 티셔츠를 출시했다. 이베이에서 웃돈을 받고 슈프림 신상을 되파는 ‘슈프림테크’와 중고시장이 활성화됐다. 

그러니 이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슈프림이 힙합 문화, 스트리트 패션, SNS 붐을 타고 국내에 안착한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패션계의 얼리어답터들이 열광하는 ‘스토리텔링’은 이미 미국에서 탄탄하게 다졌다. 슈프림의 붉은색 박스 로고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그 자체로 강력한 해시태그 역할을 했다. 슈프림 로고가 선명한 ‘인증샷’ 한 장이면 트렌드에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충분히 입증됐다. 공식 진출하지 않았지만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온라인몰만 탄탄하면 매출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동대문에서 태어난 스트리트 브랜드가 롯데백화점 본점에 입점하고, GD&TOP이 ‘쩔어’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헐렁한 트레이닝이 ‘간지 작살’ 소리를 듣는다. 스트리트 브랜드는 더 이상 싸구려 취급을 받지 않는다. 러시아 뒷골목 정서를 담은 고샤 루브친스키가 파리 패션위크에 입성하는 시대적 배경은 슈프림이란 공을 더욱 높은 곳으로 쏘아 올렸다. 길거리 출신이지만 디자인은 간결하고 원단은 탄탄하다. 뭔가 있어 보이고 희소성은 명품에 뒤지지 않는다. 뮤지션이든 일반인이든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이다. 꼼데가르송, 톰브라운도 슈프림과 협업, 미국 서브컬처를 이식받았다. 다 쓰러져 가던 겐조, 생로랑도 디자이너를 갈아치우고 젊은 감성으로 무장한 뒤에야 겨우 부활했다. 거리의 청년들이 하이패션의 심장부까지 진격한 지금, 슈프림은 양 진영의 교집합 한켠에서 느긋하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슈프림에게는 참 좋은 시절이다.

김선주(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입고, 바르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거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특히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다양한 소비재들이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파헤치는 게 즐겁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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