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처럼 돈 벌고 싶습니까?

2015.09.09

‘힙합’이라는 장르를 지워내면 지난 4일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공개한 래퍼 도끼의 이야기는 한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같았다. 13세 때 가정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졌지만 힙합을 포기하지 않고 부를 이룬 것은 기업 CEO의 강연에 나올 법한 이야기고, 누구와도 손잡지 않고 자신이 번 돈을 모두 가져가는 것은 ‘스타트업’의 성공사례다. 술, 담배, 커피, 욕을 하지 않고 음악작업에 몰두하는 것 역시 자기계발서에서 모범사례로 꼽을 법한 자기 관리다. 

도끼가 자기계발서나 성공한 CEO의 자서전을 읽고 이렇게 사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의 20대가 큰 성공을 원한다면 대부분 도끼처럼 살아야 성공할 가능성이 생긴다. 부유한 부모가 있는, 이른바 ‘금수저’가 아니라면 [나 혼자 산다]에서도 거론된 “열정과 패기”로 힙합이든 공무원 시험이든 도전해야 한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해도 돈을 벌려면 제대로 된 ‘갑’과 계약을 맺거나, 아예 ‘갑’ 없이 일하는 것이 좋다. 도끼의 철저한 자기 관리는 타고난 성향이기도 하겠지만, “1년에 5장의 앨범”을 낼 만큼 끊임없이 일해야 “큰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지 않는 한, 뮤지션이 한 곡의 노래나 한 장의 앨범으로 사고 싶은 것을 다 살 만큼 돈을 벌기는 어렵다. 음반에 비해 수익이 적은 음원과 직접 뛰어야 하는 행사, 공연으로 수익을 내려면 꾸준하게 활동해야 한다.

도끼가 미국의 유명 래퍼들을 보며 “랩해서 저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많은 20대에게 열정과 패기가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금수저’가 아닌 이들이 성공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고, 열정과 패기는 힘들어도 노력하게 할 수 있는 동력이다. 도끼 특유의 ‘스웩’은 이 지점에서 한국의 20대가 즐겨 듣는 노래가 될 수 있다. 과거 ‘I'mma Shine’에서 “하락하는 삶의 주가”에도 “불가능하단 말을 뱉는 그 더러운 입을 꿰매”라며 의지를 다지던 래퍼는 결국 성공해 최근 발표한 ‘111%’에서 “우리 이모 내 / 롤스로이스 뒤에 탔네”라며 부를 과시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했으니 힘들었던 과거는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고, SNS에 부를 과시해도 당당하다. [나 혼자 산다]에 함께 출연한 래퍼 더 콰이엇이 말한, 힙합에 대한 한 가지 정의는 지금 한국의 많은 힙합 뮤지션과 그들의 음악을 듣는 20대가 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잘 살고자 하는 인생역정.” 


힙합 서바이벌 오디션 Mnet [쇼 미 더 머니]는 이 인생역정을 10주로 압축한다. 많은 래퍼는 예선에서 자신의 힘든 상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출연자 간의 배틀에서는 자신의 매력과 실력을 과시하곤 한다. 그 뒤에는 [쇼 미 더 머니 4]에서 송민호의 ‘겁’처럼 주목받는 무대에서 자신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랩으로 풀어낸다. 20대가 혼자의 힘으로 수십억 원을 벌면서, 힙합은 신 바깥에서도 주목받는 시장이 됐다. 그를 롤모델 삼아 힙합을 하겠다는 사람도, 들으려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리고 자본은 빠르게 시장의 매력을 파악해 그 일부를 극대화하며 더 많은 대중에게 선보인다. [쇼 미 더 머니]의 주 시청자층인 20대는 꾸준히 특정 래퍼의 음원과 공연을 따라가지 않아도 열정, 패기, 경쟁, 성공의 드라마를 볼 수 있다. 래퍼들에게는 더 빠르게, 더 확률 높은 성공의 가능성을 약속한다. 대신 제작진이 마이크를 잡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라는 것도 따라야 한다. 10주 동안 방송되는 프로그램이니 그 사이 자랑할 만큼 돈을 벌지도 못하고, 그마저 다 가져가지도 못한다. 시즌 3의 바비와 B.I, 시즌 4의 송민호처럼 대형 기획사 소속이 초반부터 주목받을 수 있던 이유다. 쇼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공의 크기가 작아지는 만큼, 바깥에서 이미 더 큰 성공의 기회를 확보한 좋은 ‘스펙’의 이들이 더 주목받는다. 아니면 자신이 가진 특이한 면모는 무엇이든 어필해야 한다. 

도끼가 [쇼 미 더 머니 3]에 출연한 것은 역설적인 드라마다. 그는 래퍼가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무명의 래퍼라면 도끼처럼 부자가 되든, [쇼 미 더 머니]에서 주목받는 것이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쇼 미 더 머니]가 혼자 힙합신 안으로 들어가 회사를 차리고 돈을 버는 것보다 성공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임은 분명하다. 여러 경쟁자들과 함께일지라도 음원 녹음의 기회까지만 얻으면 음원차트 멜론 TOP 10도 꿈이 아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에 도전할 것인가,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높은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쇼 미 더 머니] 우승부터 일반 기업 취직까지 엄청난 경쟁률을 이겨내야 한다. 몇 개월 동안 일한 인턴 중 단 한 명도 취업시키지 않는 회사들도 있다. 어느 쪽이든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당사자는 더 높은 확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열정과 패기 아래에는 자신에 대해 냉정한 판단이 필수다. 나는 도끼인가, 송민호인가,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외치는 블랙넛인가, 아니면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하는 무명의 래퍼인가. 자신의 ‘스펙’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찾으며, 적당한 ‘갑’과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자신이 할 것, 지켜야 할 것, 내줄 것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까, [쇼 미 더 머니]에 출연한 거의 모든 래퍼부터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까지 많은 20대는 이미 각자의 자기계발서를 쓰고 있다. 도끼처럼 큰돈을 벌지 못했을 뿐. ‘스웩’이 힙합의 전부는 아니지만, 도끼부터 [쇼 미 더 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 ‘스웩’을 하는 이유. 도끼처럼 살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도 ‘스웩’도 못할 인생이면 너무하잖아.

글. 강명석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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