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중쇄를 찍자], 소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5.09.11

음악을 쓰고 글을 쓰는 나는 직업 분류상 ‘예술가’에 들어갈 것이다. 단어에 무슨 힘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조금 불편하다. 출입국 때 직업란에 뮤지션이라고 쓰는 것도 왜인지 한참 걸렸다. 또한 상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기도 하다. CD도 책도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내 노력을 재화로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균형이 어렵다. 나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남이 나를 보는 균형을 가늠하는 것이 어렵다. 누군가는 예술가는 상품임을 완전히 잊어야 하는 사람이라 하고, 누군가는 예술은 개뿔, 다 장사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는 둘 다 극단적이다. 의사의 마음속에는 환자를 구하겠다는 사명감과 대출금을 갚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있을 것이고, 농부에게는 건강한 작물을 키워서 팔고 싶다는 사명감과 대출금을 갚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있을 것이고, 음악인에게는 아름답고 멋진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과 그걸로 많이 사랑 받아서 대출금을 갚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있을 것이다. 끝판왕은 대출금이네. 여하튼. 그 균형을 같이 잡아주는 사람이 스태프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중간 어디쯤. 마치 좋은 대화처럼.

[중쇄를 찍자]의 주인공은 유도를 하던 여자아이다. 만화를 사랑해서 만화잡지 편집부에 들어온다. 차분한 톤의 출판만화일 줄 알았는데 열혈물이어서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거리감마저 느꼈다. 저런 사람 없어. 저런 분위기 아니야. 반짝이던 눈의 인턴들은 3개월 만에 그만두던지 1년 뒤에는 다른 사람이 된다구. 그렇게 실눈을 뜨고 팔락팔락 책장을 넘기다가 1권 당 두 번씩 정확히 4번을 울었다. 그래 저런 거 있어. 완전히 저렇진 않아도 저런 마음 있어. 흑흑.

이 만화 속에 [민들레 철도]라는 작품이 나온다.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작품, 흔한 일이다. 좋은 결과물이 모두 큰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운, 시대 등등 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조금만 더 멀리 퍼지면 좋을 텐데, 스태프들은 고민하고 발로 뛴다. 열혈물답게 [민들레 철도]는 잘 된다. 시큰둥하던 스태프도 마음을 돌리고 아주 해피엔딩이다. 현실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에 나는 입을 삐죽였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났다. 왜냐면 스태프가 작품을 위해 발로 뛰는 일은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일어났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많이.

창작의 어려움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이제 보니 진짜 어려운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고통보다 내가 만들어 낸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장담하는데 모든 창작자는 길을 잃는다. 한 점을 계속 들여다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 방향이 맞는지, 내가 감을 잃은 것은 아닌지, 이게 세상에 필요한지, 점점 알 수 없게 된다. 그때 누군가가 ‘이건 세상에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가장 힘이 된다.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스태프는 나를 사랑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단독공연 날, 공연을 끝내고 무대 뒤에서 스태프의 뿌듯한 표정을 볼 때, 사실은 그때가 가장 기뻤다. 이 땅의 모든 문화 생산자, 그리고 판매자에게 사랑과 감사를 보낸다. 물론 제일 고마운 존재는 소비자님이십니다. 연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지은 씨의 ‘그와 그녀의 책장’은 [중쇄를 찍자]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종료됩니다. 새로운 필자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오지은
음악 하고 글 쓰는 한국의 30대. 만화를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처음 산 단행본은 이은혜의 [점프트리 A+].

디자인. 전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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