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예능│① 여자 연예인은 왜 ‘진짜 사나이’가 되어야 할까

2015.10.06


9월 초, 팟캐스트 [송은이 & 김숙의 비밀보장]에 출연한 이영자를 소개하며 송은이와 김숙은 강조했다. “우리는 개그우먼으로서 방송 설 데도 없는데, 이분은 현재 고정만 다섯 개! 말이 안 되지. 이 시점에서!” ‘이 시점’이란 KBS [해피투게더 3]에서 박미선과 김신영이 하차하고 전현무, 김풍, 조세호로 대체되는 시절이다. 10년 차 MBC [무한도전]부터 올봄 시작된 tvN [집밥 백선생]까지, 평일 심야 시간대나 주말 저녁 시간대에 방영되는 주요 예능 가운데 MC와 고정 패널 전원이 남자인 프로그램이 십수 개를 넘는, 그래서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초기 보조 MC였던 정가은의 하차가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 추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지상파 3사 일요 예능의 주요 멤버인 성인 여성은 배우 송지효뿐이다. 아예 ‘사나이’, ‘남자’, ‘아빠’를 제목에 내건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현재 한국 예능의 기본값은 남자다.

“여자 연예인이 나갈 수 있는 예능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 정도다. [무한도전]이나 KBS [해피 선데이] ‘1박 2일’처럼 남자들 프로그램에 특집으로 한 번 불러주기라도 하면 고맙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잠시 출연했던 여성 연예인의 소속사 관계자 A씨의 말이다. 2013년 말 여성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MBC every1 [무한걸스] 종영 이후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른 성비 불균형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 PD와 작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무엇보다, 시청률 때문이다.”

지상파 예능국 PD B씨는 “남성 시청자들은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본방송을 보지 않는다. 예능의 주요 타깃은 여성들이고, 그중에서도 부동층은 30~40대 주부들”이라고 말했다. 방송사가 주 시청층을 성인 여성으로 상정한 이상,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이성을 중심으로 판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의 ‘쿡방’ 열풍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이 모두 남성 셰프인 것은 여성 시청자의 선호를 반영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여성 시청자만 남성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다수의 히트 프로그램을 만든 작가 C씨 역시 “예능에서는 20년 전에도 여자 A급보다 남자 B급을 쓰라는 말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여성 시청자들은 남자를 좋아한다. 남성 시청자들은 예쁜 여자가 아니면 무관심하고, 나이 든 여자나 똑똑한 여자는 싫어한다. 그래서 재능 있는 여성 연예인이 있어도 좀처럼 활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이 들고, 똑똑하고, 예쁘지 않은 여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기 힘들다. ‘망가지는’ 것을 감수하고 몸을 던지는 여성 예능인들도 인기 아이돌이나 ‘핫 바디’로 이슈가 된 여성들에게 시청률 면에서 밀려 출연 기회를 잡기 힘들다. B씨는 “여성 출연자가 몸 개그를 하면 나댄다거나 상스럽다고 욕하는데, 남성 출연자가 하면 ‘제대로 한다’고 칭찬한다. 게다가 남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그걸 아예 토크나 코미디 소재로 써먹으면서 치고 나가는 반면, 여자는 뭘 해도 남자보다 훨씬 욕을 많이 먹기 때문에 나쁜 경험이 쌓이면서 위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은 웃음을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마다 엄격하고 복잡한 잣대와 부딪힌다. 야외 버라이어티를 연출했던 PD D씨는 “남성 출연자가 세수 못 하고 부스스한 머리로 나오면 귀엽다고 하지만 여성 출연자가 화장 안 하면 못생겼다고, 화장을 하고 나오면 작위적이라고 한다. 여자 연예인에게 외모는 자신의 상품성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인데, 무조건 1 대 1로 비교하며 남자처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리얼 버라이어티뿐 아니라 사적 공간과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MBC [나 혼자 산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JTBC [비정상회담], 부모자식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등 예능은 점점 개인의 삶과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발언할 수 있는 폭과 수위는 눈에 보이지 않게 제한되어 있다. 여러 예능 제작진들은 ‘솔직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던 여성 방송인들이 계속 비호감이라고 욕을 먹다 보니 몸을 사리게 되고 재미가 없어지는 바람에 결국 예능에서 밀려나게 되는’ 코스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 연예인들에게 안전하게 허락되는 영역은 결혼생활 등 개인사에 대한 토크쇼나 생활정보, 패션 뷰티 프로그램 정도다. 주류 예능에서 여성 연예인들이 배제되는 구조는 이미 탄탄히 굳어졌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만큼 누군가 주목받거나 성장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 방송인들에 대한 평가는 박해진다. 종합편성채널 토크쇼 PD E씨는 “괜찮은 캐릭터와 롤을 소화할 만한 여성 예능인이 거의 없다. 올드한 이미지가 아니면서 어느 정도 믿고 맡길 만한 인물은 박지윤 정도다. 짝짓기나 가족 콘셉트를 제외하고, 메인 MC가 남자라면 그와 호흡을 맞출 또 다른 남자 예능인을 찾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다수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작가 F씨는 “남자는 조금 험한 상황에 던져놓아도 별문제가 없는데 아무래도 여자는 그렇게 대하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여성 출연자의 경우 위생이나 안전 등 현장에서의 신변 관리가 더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는데, 그만큼 더 투입된 자원을 보상할 만큼 눈에 띄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굳이 ‘안전빵’인 남성 집단 예능 대신 리스크를 짊어지고 여성을 출연시키거나 여성 중심의 예능을 시도할 필요가 있냐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것이다. 제작진의 입장에서 당장 프로그램을 끌고 나갈 수 있는 예능인을 선호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젊고, 예쁘고, 똑똑하지 않으면서 웃기거나 똑똑함을 적당히 숨긴 여자여야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지금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틀에서 여성이 남성들처럼 웃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MBC [일밤] ‘진짜 사나이 – 여군 특집’ 같은 경우는 다들 자리가 없어서 못 나갈 정도”라는 A씨의 말은 한국 예능의 현재이기도 하다. 여성이 예능에 출연해 가장 큰 화제를 모으는 것은 ‘진짜’ 남자처럼 훈련을 받으며 뭐든 잘 먹고, 동시에 걸스데이의 혜리처럼 ‘작위적이지 않은’ 애교까지 보여줄 때다.

이 사회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가 방송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주문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여성 연예인 개인이 더 ‘노력’해서 성취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에 방송이, 대중이 여성에게 제대로 말하고 웃길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해왔는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지 않고서 지금과 같은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이 모든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여성 스타가 나타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며 C씨가 언급한 성공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지금 예능계에서 여성이 멸종 위기에 처한 이유를 확인시켜 준다. “일단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가 막히게 웃겨야 하는데 그래도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보는 눈이 많으니 실생활은 유재석처럼 흠 없는 수준이어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거나 공백기를 가지면 안 된다. 만약 개성 있는 외모라면, 예뻐지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예능 속의 여성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글. 최지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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