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 위해 여자를 팔지 마세요

2015.10.15

이번엔 KFC다. “자기야~ 나 기분전환 겸 빽 하나만 사줘^^” 열 받은 남자들을 타깃으로 한 카피였지만 정작 열 받은 건 다수의 SNS 사용자들이었다.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면서 여자는 틈만 나면 잠재적 ‘빨대’ 취급인가? 항의가 거세지자 KFC측은 공식사과를 하고 해당 광고물을 철거했다. 개그맨 유세윤이 제작한 ‘후쿠오카 함바그’ 바이럴이 ‘여성비하’란 비난 끝에 삭제된 지 불과 몇 주다. 광고주와 광고회사가 합심해서 소비자를 약 올리려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이렇게 젠더감수성이 없는 광고가 계속해서 나올까.

신제품이 출시되거나 새로운 캠페인이 필요할 때 기업, 즉 광고주는 대행관계에 있는 광고회사에 의뢰한다. 여러 회사를 불러 경쟁 PT를 붙이기도 한다. 광고주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광고회사 기획팀은 방향과 콘셉트를 추출, 제작팀에게 전달한다. 본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건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제작팀. 테마를 잡고 그림과 카피를 붙이는 과정 중간 중간 기획팀에게 리뷰를 받는다. 아이디어가 광고주의 요구를 잘 반영하는지, 콘셉트를 명쾌하게 전달하는지 등을 서로 조율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몇 개의 시안을 들고 들어가면 광고주가 최종안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광고주와 광고회사는 대표적인 갑을 관계. 한방에 결정될 확률은 낮다. 앞의 과정을 두 번 세 번, 회장님 맘에 들 때까지 반복하는 게 보통이다. 계속해서 광고주로부터 퇴짜를 맞다 보면 광고회사 측은 서서히 조급해진다. 정말 미는 안이 좋은 안이 아니라 팔리는 안이 좋은 안이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모 자동차 CF를 만드는데 11차까지 보고를 한 적이 있다. 말이 11차지, 하루걸러 한 번씩 새로운 아이디어를 뇌에서 뽑아내다 보면 성차별, 정치적 올바름 등에 촉을 세우기는커녕 눈을 뜨고 있기도 어렵다. 일단 팔아야 한다. 결국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광고는 이것저것 덧붙여지고 짜깁기된 프랑켄슈타인 같았다. 애초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당시 팀장인 나도 여자였고, 팀원 중에도 여자가 있었다. 하지만 결정권을 가진 윗사람들은 거의 남자였다. 똑같은 환경에서 내가 KFC 광고를 맡았다면? 그래서 열 번 퇴짜를 맞았다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것과 유사한 안을 내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정권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안을 팔기 위해.


이것이 광고업계가 작동해온 방식이다. ‘젊은 여성(beauty)’은 ‘아기(baby)’, ‘동물(beast)’과 더불어 파는 기술이었지 주의사항은 아니었다. 안을 쉽게 팔기 위해 괜히 옷을 벗긴다거나 질투의 화신처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까지 별 문제 없었고 남성중심적인 구조에선 잘 먹히기까지 했다. 최근 가장 많은 물량을 쓰는 모바일게임 쪽은 광고주 연령대가 파격적으로 낮아지고 마케팅 경험도 적어서인지 막무가내로 ‘더 센 거’, ‘빵 터지는 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새롭게(?) 힘들단 얘기도 들린다. 여자친구를 총으로 난사하는 슈팅게임광고의 제작배경이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SNS를 중심으로 사람들의 젠더감수성은 전에 없이 예민해지고 있다. 눈치 없이 전과 같은 방식을 고수하다간 불매운동 당하기 십상이다.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려면 광고는 이제 다른 식의 접근을 해야 한다. 어떤 콘셉트, 어떤 메시지여야 통할까? 무엇보다 어떤 메시지를 피해야 할까? 이 문제를 잘 푸는 광고주, 광고회사가 먼저 웃게 될 것이다.

김진아(광고플래너)
이노션 월드와이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프로덕션 ‘골목아이디어앤필름’을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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