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무도│① [무한도전]의 10년, 또다시 위기

2015.11.17


“오래전부터 앓아왔던 불안장애가 최근 심각해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왔고 결국 제작진과 소속사 및 방송 동료들과 상의 끝에 휴식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지난 12일, FNC 엔터테인먼트는 정형돈의 방송 중단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정형돈이 출연 중인 프로그램은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MBC 에브리원 [주간 아이돌], MBC [능력자들] 등이었지만, 사람들이 유독 우려를 표한 것은 MBC [무한도전]이었다. 프로그램 초창기부터 캐릭터의 한 축을 맡아왔던 멤버가 갑자기 빠지게 되었고, 김태호 PD는 [엑스포츠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형돈 하차 이후의 멤버 구성에 관해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답했다. 지난해 길과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이후, [무한도전]에 다시 한 번 찾아온 위기다.

사실 [무한도전]은 올 한 해 내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했다. 물론 시청률은 아주 높지도 낮지도 않은 14%대를 꾸준히 유지 중이다.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 특집이 불러온 90년대 돌풍이나, 입양 문제와 우토로 마을 문제 등 프로그램이 다룬 이슈들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울 뿐 그야말로 범국민적인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전과 같은 신선함이나 잦은 ‘빅 재미’는 없지만, 국내에서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언급되기에 여전히 부족함이 없다. 다만,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논란 역시 덩달아 커졌다. 2년에 한 번 정기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는 ‘무한도전 가요제’는 올해 들어 유난히 음악 산업을 해친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고, 박명수의 EDM 고집으로 인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바보전쟁-순수의 시대’(이하 ‘바보전쟁’)가 방송된 후 포털사이트에서는 ‘바보전쟁 노잼’이라는 자동완성 검색어가 만들어졌으며, 박명수가 중심이 되어 기획한 ‘웃음 사냥꾼’ 특집은 ‘좀비 특집’ 이후 [무한도전] 역대 최악의 에피소드로 지목됐다.

무엇을 해도 새로운 시도 자체로 환영받던 프로그램의 황금기는 지나갔다. [무한도전]이 첫 방송을 시작한 때는 무려 2006년이다.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쇼가 주를 이루던 예능계에서 매주 포맷을 바꿔가며 캐릭터의 서사를 쌓아가는 [무한도전]의 등장은 파격적이었고,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문을 열기도 했다. 겨울철을 맞아 김장하는 상황극만 가지고 한 회분의 방송을 만들거나, 봅슬레이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에 장기적으로 도전하며 웃음과 감동을 함께 주는 예능은 정말로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스물일곱으로 가장 어리던 하하가 삼십 대 후반이 되었고, 한창 활동적이던 삼십 대 초반의 유재석은 어느덧 사십 대 중반에 이르렀다. 더불어 MBC 입사 면접 당시의 패션이 화제에 오를 만큼 젊고 톡톡 튀는 이미지였던 김태호 PD 또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노련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동안 쉬지 않고 활동해온 정형돈이 방송 하차를 선언한 것처럼, 1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오며 멤버들과 제작진 모두가 지친 것은 당연한 결과다. 10주년을 맞아 진행한 ‘무인도 2015’ 특집에서 정준하는 “힘들어, 점점 더”라고 쓸쓸히 말했다. 똑같은 사람들이 10년 동안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어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한편, 그들의 몸과 마음이 그만큼 소진됐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올해 [무한도전]이 외부 게스트들을 중심으로 한 특집을 자주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송된 ‘토토가’와 ‘무한도전 가요제’를 포함해 ‘무도 큰 잔치’, ‘로맨스가 필요해’, ‘바보전쟁’, 그리고 ‘웃음 사냥꾼’까지 멤버들이 일종의 조력자로만 활약하는 에피소드가 많아졌다. 플레이어로서 새로운 모습이나 옛날만큼의 활기를 보여주기 어려운 멤버들은 뒤로 물러나 연출자 혹은 기획자의 위치에 서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유재석의 역할은 점점 더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가장 최근 방영된 ‘무도투어’ 특집은 최근 [무한도전]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멤버들은 각각의 테마에 맞춰 관광코스를 짜고, 유재석은 자리에 함께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적절한 멘트를 던지거나 함께 춤을 추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것은 지칠 대로 지친 [무한도전]이 강구해낸 나름의 생존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뒤로 물러나자 방송은 평범한 버라이어티쇼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한다. 시대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처럼 방송이 시청자들과 실시간 소통하고 그 맥락을 다시 콘텐츠로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도리어 [무한도전]은 과거로 회귀해버린 것이다. 역량 문제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저 제작진과 멤버들, 심지어 프로그램의 오랜 시청자들까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무한도전]을 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이전의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쇼에 익숙하고, 시대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따라갈 여력이 없는 [무한도전]의 선택지는 ‘토토가’ 열풍이 증명했듯 시청자들에게 과거의 추억이라도 상기시켜주는 것뿐이다.

“한 주 한 주가 무섭고 두렵고 어떨 때는 도망가고 싶은 중압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멤버, 스태프들이 있기에 믿고 목요일 녹화장에 나올 수 있다.” 지난 9월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 선 김태호 PD는 이런 수상소감을 남겼다. 방송은 가공된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그냥 ‘리얼’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으며, 흐름에 적응해야 하는 [무한도전]의 과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영광은 예전만 못하지만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 상황에서 이제는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정형돈마저 하차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사상 가장 큰 위기라고 할 수 있을 지금, [무한도전]은 어떤 돌파구를 모색할 수 있을까. 초심을 되새기라거나 예전의 그들로 돌아가 달라는 이야기는 프로그램에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도 공허할 것이다. 지금의 주춤거림은 다음 스텝을 위한 과도기, 혹은 숨 고르기라고 믿으며 [무한도전]이 찾아낼 답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글. 황효진
사진 제공. MBC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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