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015│① 백종원이 바꾼 세상

2015.12.01
지금도 여전히 백종원은 설탕을 쓴다. 지난 2월 방영된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 파일럿 방송분에서 닭볶음탕의 비결로 설탕 세 스푼을 넣던 그는, 최근 11월 24일 tvN [집밥 백선생] ‘닭볽음탕’ 편에서도 다시 한 번 요리 초반에 설탕을 넣어 단맛을 스미게 하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9개월여가 흐르는 동안 설탕으로 상징되는 백종원식 레시피는 그에게 ‘슈가보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을 주기도 했지만, 그가 방송에서 승승장구할수록 설탕을 들이부어 맛을 내는 건 진짜 집밥이 아니라는 비평가와 언론의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설탕을 이용한 레시피로 식당 밥맛에 길들인다는 음모론까지 있었다. 소위 ‘쿡방’의 득세 속에서 여러 셰프들이 전문가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동안에도 백종원만큼은 딱히 음식 전문가가 아닌 이들조차 시비를 거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백종원은 설탕을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종원이, 승리했다.

그는 이미 시장에서 매우 크게 성공한 외식 사업가였지만, 시장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담론 경쟁에서의 승리까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2004년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우삼겹을 만든 장본인이자 고깃집 본가의 사장으로 소개된 뒤 2012년 배우 소유진과의 결혼 발표로 연예 매체에 이름을 올리기 전까지 백종원이 언론을 통해 언급된 횟수는 8년 동안 50번이 채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소유진과의 결혼 발표가 난 당일에만 100개가 넘는 기사가 반복 재생산됐다는 걸 떠올리면 그의 성공은 너무나 조용히 이뤄졌다. 방송은 다르다. 레시피만 공개했다 하면 다음 날 ‘백종원 김치볶음밥’이 포털 자동완성 검색어가 되고 요리 후기가 블로그에 올라오는 게 방송의 세계다. 대중과 언론의 관심과 훈수 앞에 노출되는 건 성공한 요식업자인 백종원도 처음 맞이하는 일이다. 이제 단순히 맛있고 없고를 넘어 왜 저 레시피가 아닌 이 레시피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답해야 하며, 특히 조리의 효율성과 대중적인 맛을 강조해 시장에서 승리한 그의 레시피는 이타적인 정성이 강조되는 기존의 집밥 담론 앞에서 오히려 의심 어린 시선을 받았다. 그가 진출한 건 예능이었지만 그가 마주한 건 재미의 문제 이전에 설득의 문제다.

백종원이 [마리텔]과 [집밥 백선생]에서 보여준 구체적인 화법과 교수법이 중요한 건 그래서다. [마리텔]에서의 그는 “하프를 먹을 거면 왜 마요네즈를 먹느냐”고, “설탕을 안 넣어서 맛없는 것보다 설탕 많이 넣어서 맛있는 게 낫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하프 마요네즈로 마요네즈 같은 맛을 낼 수 있는가. 설탕 없이 설탕의 단맛과 감칠맛을 대체할 수 있는가. 적어도 이 질문 앞에서 지방과 설탕을 줄이되 그래도 정성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유니콘 같은 이야기는 그 허구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엄마의 손맛이고 음식점 꼼수고 간에 맛은 결국 있는 재료와 양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로 결정된다.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여기서 이러이러한 맛을 내려면 어떡해야겠느냐고 질문하는 [집밥 백선생]도 마찬가지다. 답이란 저 멀리 있는 어떤 이상이 아니라, 가용한 재료 안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요리를 만들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닿는 최종적인 결과물이다. 백종원의 가정식 레시피는 종종 재밌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특별한 수준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담론 영역에서의 ‘집밥 백선생’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라는 오래된 낭만 혹은 도그마를 무너뜨리고 요리를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재구성하는 혁신을 이뤄냈다. 집밥에 대한 식당밥의 승리가 아니다. 실체 있는 결과물과 체계적인 논법으로 이루어진 실증적 태도가, 흐릿한 관념을 이긴 것이다.

그가 올해의 예능이라 해도 무방할 [마리텔] 최고의 수혜자이자 일등공신인 건 우연이 아니다. 앞서 백종원에게 방송이란 재미 이전에 설득의 문제라고 했지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마리텔]은 지금 이걸 왜 봐야 하는지를 시청자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 초기, 이를 온전히 이해한 건 백종원뿐이었다. 2011년 KBS 아침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백종원은 “일반 사람들이 항상 먹으면서 이렇게 하면 더 맛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감히 못해봤던 걸 만들었을 때 그게 가장 좋은 레시피”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레시피에서 중요한 건 예술적 상상력이나 절대 미각 같은 게 아닌 시장에서의 명백한 비교우위다. 그는 [마리텔]에서도 어설픈 이름값이나 자기만 아는 기획의도에 의지하기보단, 사람들이 자기 방송을 봐야 할 이유를 자신만의 초간단 레시피로 설명해냈다. 즉 비교우위를 만들어냈다. [마리텔]에서의 공정한 경쟁은 백종원의 우승으로 이어졌고, 출연자의 인지도와 방송 인기가 비례할 거라는 오랜 통설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여기서도 실증이 관념을 이겼다.

그래서 백종원은 올해의 룰 브레이커다. 특유의 점잖은 태도와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앙팡테리블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시장 경쟁에서 갈고 닦은 자신의 구체적인 콘텐츠로 집밥에 대한 낭만 섞인 신화와 방송계의 시대착오적인 안일한 통념에 유의미한 균열을 냈다. 흥미롭게도 그가 [마리텔] 첫 우승 당시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자신과 아내 소유진에 대한 세간의 추측과 선입견이 오해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의외로 수많은 근거 없는 추측과 선입견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들은 보기보다 힘이 세다. 그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을 무너뜨리는 건 명백한 개선이다. 그것이 백종원이 올 한 해 해낸 일이다. [마리텔]의 닭볶음탕과 [집밥 백선생]의 닭볶음탕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아니,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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