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풀8]의 제니퍼 제이슨 리, 다시 사냥에 나선 맹수

2016.01.14
제니퍼 제이슨 리는 순순히 어두운 밤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을 시작으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역을 맡을 수 있었으니 충분히 운이 좋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인디 영화계를 휩쓸며 오스카를 거머쥘 재목으로 늘 지목되던 전성기에도 연기 외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커리어를 연장할 수 있을 만한 전략은 알지도 못했고, 안다고 한들 나이 든 여배우에게 돌아올 자리가 결국 몇 개나 있을까. 제니퍼 제이슨 리는 담담하게 아이러니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어느덧 모두가 연기력을 인정하지만 정작 좋은 역할은 받을 수 없게 된 베테랑 배우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코엔 형제부터 제인 캠피온까지 수많은 감독이 찬사를 보냈던 카멜레온 제니퍼 제이슨 리는 그렇게 서서히 사라져 가는 듯했다.

다행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세상이 짜 준 일정대로 움직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찍은 세 작품만을 보고 배우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당신이 정말로 어떤 배우인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죠.” [헤이트풀8]의 캐스팅 배경을 묻자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렇게 답했다. 20년도 전에 찍은 자신의 작품들을 마치 어제 개봉한 영화처럼 읊어내는 타란티노 감독을 만난 후, 그는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던 배우로서의 자신을 다시 기억해냈다. [헤이트풀8]은 관객들에게 일깨워주기 전에 그에게 먼저 외친 것이다. “당신 제니퍼 제이슨 리가 누군지 몰라?” 타란티노 감독의 직감은 옳았다. 제니퍼 제이슨 리는 여전히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폭력과 위협 앞에서도 기가 꺾이지 않는 거친 악역이 벅차지 않았냐는 질문은 세상이 그가 어떤 배우인지를 잊었음을 드러낼 뿐이다. 평생 좋은 역을 위해서는 두려운 것도, 못할 것도 없었던 제니퍼 제이슨 리가 아니던가. [헤이트풀8]에서 데이지 도머그로 돌아온 그는 감상적인 박수를 기대하며 옛 기교를 재연하는 은퇴한 프로 선수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날카로운 발톱을 간직한 채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다시 사냥에 나선 맹수다.


Warning
오스카, 이제 상 좀 주세요

“제니퍼가 여기 있어야 하는데!” 1995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메릴 스트립이 외친 말이다. [조지아]와 [돌로레스 클레이븐] 두 영화에서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제니퍼 제이슨 리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자 아쉬움을 표현한 것. 메릴 스트립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많다. 그는 유달리 상복 없는 배우로 유명하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부터 [마고 앳 더 웨딩]까지 늘 복잡하고 어려운 역들을 훌륭하게 소화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주목받기 어려운 인디영화였던 탓일까. 늘 평단의 호평으로 만족해야 했던 제니퍼 제이슨 리는 현재 [헤이트풀8]으로 최초로 오스카 후보에 지목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훌륭한 연기들이 쏟아진 한 해인 만큼 수상은 예측이 어려워도 후보 지명만큼은 확신하는 분위기. 이번에야말로 ‘오스카에서 어이없게 무시당한 배우들’ 목록에서 제니퍼 제이슨 리가 빠질 때임을 모두가 느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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