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쇼트]의 라이언 고슬링, 비극의 근육을 빼고

2016.01.28
“코미디를 좀 하세요.” 2011년 라이언 고슬링은 의사가 처방전에 적어준 말을 보고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농담이었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약물 중독 문제를 가진 교사를 연기한 [하프 넬슨]부터 변해가는 사랑을 가슴 아프게 그려낸 [블루 발렌타인]까지 뭐 하나 쉬운 역이 없었다. 영화를 이끌어야 하는 주연 배우로서의 부담도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저도 제가 진절머리가 나는데 보는 사람은 오죽하겠어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피곤함은 진심이었다. 스스로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배우로 변하고 싶지 않았던 라이언 고슬링은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인 휴식을 택했다. 약물이나 알콜중독을 돌려 말하는 게 아닌 만큼 쉬쉬할 필요도, 방어적으로 거창한 선언을 할 필요 없었다. 너무 사고를 안 쳐서 도리어 별나다는 소리를 들어 온 사람답게, 라이언 고슬링은 법석도 드라마도 없이 조용히 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2014년 선 보인 첫 감독 데뷔작 [로스트 리버]에서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2년간의 공백 끝에 그가 고른 [빅쇼트]는 라이언 고슬링이 다시 한 번 도전에 임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서브 프라임 사태라는 어두운 소재를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이 영화는 출연한 배우들 모두에게 어려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세상이 망해야 이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코미디의 영역 안에서 설득력 있게 묘사할 것인가? 라이언 고슬링이 찾은 답은 혹독한 연기 다이어트였다. 오만하고 이기적인 대형 은행의 트레이더 자레드 베넷 역을 위해 그는 [온리 갓 포기브스]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와 같은 작품들을 반복하며 키워온 무거운 비극용 근육을 모두 빼 버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빅쇼트]를 통해 그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새로운 버전의 자신을 관객들에게 내놓았다. 처음으로 회개도, 후회도 없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밉상인 라이언 고슬링이 등장한 것이다. 함께 출연한 스티브 커렐을 깜짝 놀라게 했을 정도로 매력을 반감 시키는 검은 곱슬머리 가발과 못된 냉소로 무장한 라이언 고슬링은 오랜만에 낯설고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치 처음 봤을 때처럼. 권태기를 극복하는데 이만한 약이 있을까. [빅쇼트]는 ‘요즘 라이언 고슬링은 뭐 해?’라는 관객들의 질문에 그가 내놓은 시기적절하고 기발한 답이다. 헤이 걸, 아임 백.


Warning
원조 인터넷 남자친구는 나

인터넷은 라이언 고슬링을 사랑하고 라이언 고슬링도 그것을 안다. 다가가기 어려워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캐나다인 특유의 겸손한 유머 감각을 가진 가식 없고 느긋한 사람이다. 그런 성격 덕분일까. 그는 긴 세월 동안 인터넷 상의 팬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상호 존중하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트북]에서의 로맨틱한 이미지 때문에 시작되었다가 이제는 고전 인터넷 밈의 반열에 오른 ‘hey girl’이 대표적인 예다. 인터뷰 중 이 밈을 소리 내어 읽던 라이언 고슬링은 웃다 못해 눈물을 흘렸다. ‘hey girl’의 진화된 버전인 ‘라이언 고슬링 행주’가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 그런가하면 그는 ‘hey girl’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던 ‘라이언 고슬링은 시리얼을 먹지 않아’라는 재미있는 밈을 만든 팬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하자 직접 시리얼을 먹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면서 감사와 애도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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