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감상해야 할 스탠드업 코미디 5편

2016.02.01
루이스 C.K., 크리스 록, 마가렛 조, 사라 실버만, 에이미 슈머…. 마이크 하나만 들고 홀로 무대에 선 코미디언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쓴 모놀로그 형식의 조크를 통해 관객들과 직접 소통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매우 대중적인 코미디쇼의 유형이지만, 한국에선 아직 조금 낯선 장르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 다양한 종류의 코미디에 갈증을 느끼는 상태라면, 어서 넷플릭스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검색해보자. 젠더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코미디언들의 공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젠 커크맨 [난 솔로로 죽을 거야 (그리고 그게 좋아)] 
홀로 나이를 먹고 죽음을 맞는 여자의 삶은 행복할까, 비참할까? 제목에서부터 당당하게 “나는 솔로로 죽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젠 커크맨은 이혼 후 싱글로 살아가는 40대 여성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억지로 아이를 좋아하는 척하지도 않고, 성욕이 없는 척하지도 않고, 멍청한 남자 앞에서 그보다 더 멍청한 척을 하지도 않는 젠 커크맨의 조크는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가부장적 패러다임의 허점들을 쉴 새 없이 찔러댄다. 이혼 후 싱글이 된 40대인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이나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레몬과 라임도 구분할 줄 모르지만 여자 앞에서는 어떻게든 아는 척을 하려 드는 멍청한 남자와,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도무지 참석할 마음이 들지 않는 고리타분한 결혼식 초대장들이다. 홀로 나이를 먹고 죽음을 맞는 여자의 비참함과 슬픔만을 이야기하는 사회 분위기를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로 비웃던 젠 커크맨은 검은 브래지어만 입고 부엌 바닥에 쓰러져 홀로 죽음을 맞은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못 이길 만큼 멋진” 할머니의 이야기로 쇼를 마무리하며 가부장제 사회를 향해 당당히 가운뎃손가락을 날린다.

아지즈 안사리 [생매장]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트위터 중독자 뺀질이 톰 하버포드, 페미니스트 스웩을 뽐내는 [마스터 오브 제로]의 헤테로 싱글남 데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지즈 안사리의 [생매장] 역시 꼭 체크해보아야 한다. 팝 컬처와 테크놀로지에 친숙한 이민 2세대 인도계 미국인인 안사리는 1세대 이민자인 부모님들과 달리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페미니스트이기까지 한 젊은 인도인 남자의 시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진중함이 부족한 젊은 세대를 Comic Sans 체에 비유하고, 자신의 넷플릭스 아이디로 몰래 [매드맨] 다음 시즌을 시청하는 현대식 귀신을 상상하고, 평생 입을 스웨터 고르기도 힘든데 결혼 상대자 고르기는 얼마나 힘들겠냐고 묻는 등 다방면에 걸쳐 쭉쭉 뻗어나가는 그의 관심은 종종 기묘하고 엉뚱한 사회실험으로도 이어지곤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연애와 결혼, 육아에 대한 그의 통찰은 매우 디테일하고 깊어서, 이 남자와 함께라면 여자인 나에게 별 대책이 없어도 연애나 결혼, 육아 문제가 알아서 다 해결되겠지 싶을 정도다. 펭귄 같은 귀여운 외모로 잔망을 떨어대는 그를 보면 분명 당장이라도 포획해 와서 주머니에 넣어 키우고 싶어질 것.

일라이자 슐라이싱어 [프리징 핫]
2008년 NBC의 코미디언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 [라스트 코믹 스탠딩]의 6번째 시즌에서 최초의 여성이자 최연소 우승자가 된 일라이자 슐라이싱어는, [프리징 핫]에서 평소엔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여자들의 모순적이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멍청한 본심을 음흉한 목소리로 털어놓는다. 실감 나는 연기로 좌중을 제압하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펀치라인을 던지면서 관객들의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통제하는 그녀의 눈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자신을 화나게 만든 남자들을 엿 먹이기 위한 복수극을 계획할 때다. 여자들 앞에서 예고도 없이 페니스를 흔들어대는 남자들에게 평등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도 “벨로시랩터 버자이나”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자는 복수극을 구상하고, 마치 결혼식 계획을 짜듯 정성 들여 구상한 궁극의 이별 판타지를 신이 나서 늘어놓는 슐라이싱어는 남자들에게 여자들의 어이없는 행동들을 합리적으로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은 이상하고 멍청한 짓을 해. 근데 괜찮아, 우린 귀여우니까. 하지만 남자들이 하는 ‘멍청한 짓’은 주로 강간이나 전쟁이라고!” 너무나 옳은 말이 아닌가?

가브리엘 이글레시아스 [더 플러피 무비]
가브리엘 이글레시아스, 일명 ‘플러피’는 라티노 관객층에게서 엄청난 사랑을 받는 멕시코계 미국인 배우이자 코미디언이다. 아마 [매직 마이크]와 [매직 마이크 XXL]에 MC 토비아스로 출연한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담긴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에서부터 시작되는 [더 플러피 무비]에서 그는 심각한 비만 때문에 시작된 다이어트 이야기, 술에 잔뜩 취해서 유혹에 능한 어느 게이에게 홀라당 넘어갈 뻔한 이야기, 그리고 인도의 정신없는 대중교통과 기이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 등 여러 가지 개인적인 일화들을 실감 나는 표정 연기와 훌륭한 성대모사로 맛깔나게 버무려낸다. 시종일관 유쾌하던 공연의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은 유복한 환경에 감사할 줄 모르는 양아들 프랭키의 철없음에 대해 한참 동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프랭키를 평소에 어떻게 곯려주는지를 짓궂게 자랑하던 이글레시아스가 3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만난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인데, 다소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털어놓으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펀치라인을 날리는 솜씨가 일품이다.

존 멀레이니 [더 컴백 키드]
[Saturday Night Live](이하 [SNL])의 엉뚱한 캐릭터 “스테판”을 탄생시킨 전직 [SNL] 작가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 자신의 이름을 딴 코미디쇼 [멀레이니]의 작가이자 주연 배우이기도 했던 존 멀레이니의 컴백 공연이다. [더 컴백 키드]는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의 별명에서 따온 표현이자, 저조한 시청률과 혹평 속에 막을 내린 [멀레이니]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하는 멀레이니의 상황을 암시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 [플레전트 빌]에서 방금 튀어나온 고전적인 백인 신사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선 멀레이니는 자신을 “성추행 사건 재연용 인형 같은 외모”라 묘사하며 소심하고 나약한, 그러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난 장난꾸러기 백인 소년의 얼굴로 실없는 농담과 여러 일화들을 늘어놓는다. 강아지에게 무시당하고 사는 이야기, 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난 이야기, 낯선 사람들 때문에 곤경을 겪은 이야기를 자조적으로 풀어낼 때에는 그저 우울하고 순진한 백인 남성 같지만, 성차별적인 격언이나 대마초 합법화, 빌 클린턴 이야기를 할 때는 뺀질거리며 사람들을 약 올리는 능청스러운 코미디언이 되는 멀레이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글. 김경은(‘페미니스트 코미디 클럽’ 운영자)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서 글로 써낸다. 농담 잘 하는 여자들을 좋아한다. 주체적인 여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코미디를 함께 감상하고 추천하는 페미니스트 코미디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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