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① 나의 소녀를 구해줘

2016.02.23
세정이냐 소미냐, 그것이 고민이다. 물론 두 소녀를 동시에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센터는 한 자리, 누군가는 2위를 해야 한다. 총 연습 기간 270년 7개월, 열네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모두 ‘소녀’로 통칭되는 Mnet [프로듀스 101]의 아이돌 연습생들은 4.13 총선보다 치열한 대국민 면접에 뛰어든 구직자들이다. 데뷔에 도달할 수 있는 11명의 운명은 시청자인 ‘나의’ 한 표에 달려 있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거창한 호칭이나 ‘국가대표 걸 그룹’이라는 호들갑을 믿지 않더라도,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는 마법의 주문이다. 비슷비슷하게 절박한 소녀들 가운데 누구를, 왜 ‘pick’할 것인가. 울고 웃고 함께 땀 흘리고 서로 토닥이며 경쟁자에서 친구가 되는 소녀들의 애틋한 드라마를 즐기는 동안, 40명(3명은 방영 전 출연 포기)이 사라지고 61명만 살아남았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인기를 모으던 시절부터, 젊고 예쁜 여자를 모아 놓고 그들에 대해 품평하고 투표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해 온 엔터테인먼트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에서 출연자들의 위치는 달라졌다. 최근 [일간 스포츠]가 입수해 공개한 계약서에 따르면 ‘병(출연자)’은 방송 후 어떠한 사유로도 ‘갑(CJ E&M)’에게 이의나 민·형사상 법적 청구를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한 해 수십 개의 걸 그룹이 데뷔하는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 안착하는 팀은 손에 꼽힐 정도다. ‘실시간 검색어 1위’나 ‘반 지하 숙소 탈출’을 꿈으로 말하는 수많은 팀, 게다가 이들의 발밑에는 몇 년씩 기약 없이 데뷔만 바라보는 연습생들이 있다. 그러니 SM엔터테인먼트처럼 충분한 자본과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기획사의 연습생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뛰어든다. 투표에서 1위에 오른 연습생이 반장처럼 구령을 붙이자 수십 명의 소녀가 영업을 시작한 백화점 직원들처럼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치는 진풍경은 상징적이다. 방송사와 소비자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지금, [프로듀스 101]의 소녀들은 기존의 아이돌에 비해서도 훨씬 분명하게 ‘을’의 위치에 놓인다. 

[프로듀스 101]의 시청자 투표와 그에 따라 변하는 순위는 지금 대중과 방송사가 가진 힘과 걸 그룹 연습생의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대중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순위는 곧바로 하락한다. 강제로 체중을 공개당한 연습생은 “겨울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라는 애교를 부려야 하고 가창력, 댄스 실력, 외모, 소속사, 태도, 성형수술 여부, 학창시절 일화까지 평가 리스트는 끝없이 늘어난다. 소녀들을 낱낱이 품평하는 국민 프로듀서는 투표를 통한 징벌과 보상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할 수 있다. 소녀들의 눈물은 이런 권력관계를 보여주기 쉬운 장치다. 울면서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의지를 보이거나 “여기서 안 울기로 엄마랑 약속했다”고 고백하는 연습생들은 그 과정을 통해 캐릭터를 얻고, 제작진이 선별한 대상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서사는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작은 가능성도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불안요소가 된다. 다른 연습생들에 대해 “다 떨어지라”는 농담을 던졌던 연습생은 간신히 방출을 피한 뒤 “무리한 개그 욕심에 그 후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흐느꼈다. 5회에 등장한 몰래 카메라에서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몫이 아닌 업무나, 하지도 않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배려심’과 ‘의리’를 테스트했다. 특히 비싼 장비를 망가뜨린 스태프를 대신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말한 뒤 극도의 두려움에 시달리던 소녀들에게 몰래 카메라임을 밝히고 울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방식은, 최근 논란이 된 KBS [본분 금메달]과 마찬가지로 어리고 예쁜 여성들에게 과도한 감정노동을 요구하고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가학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제작진은 시청자에게 투표권을 준 뒤, 그것으로 출연자들을 마음대로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프로듀스 101]은 일종의 인질극과도 같다. 제작진과 프로그램을 비판할수록 저 끔찍한 아수라장에서 ‘나의 소녀’를 구해내 웃게 해 주고 싶다는 감정은 커질 수밖에 없다. 61위 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데뷔는커녕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 주라도 더 볼 수 있게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며 울먹이는 소녀에게 ‘국민 프로듀서’가 해 줄 수 있는 건 투표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약자를 향해 ‘국민’을 대리해 ‘갑질’을 하고, “자기가 완벽하게 중심을 잡고 있으면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며 ‘노오력’을 강조한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집약된 쇼가 꿈을 파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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