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모모의 착한 빵], 빵에는 잘못이 없다

2016.02.26
빵에는 중독성이 있다. 밥에도 물론 중독성이 있지만 양껏 먹고 그릇을 물리자마자 또 먹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빵은 먹어도 먹어도 또 먹는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고 손사래를 친 바로 그 손이 정신을 차려보면 슬금슬금 또 나간다. 

일러스트레이터 스즈키 모모는 10년 전 ‘빵이 좋아’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식빵이 좋아’, ‘빵 만드는 게 좋아’, ‘독일빵이 좋아’ 등 빵이라면 환장하는 사람들이 매번 다른 주제로 모여서 빵을 먹는다. 도대체 뭘 얼마나 먹기에 10년이나 그러고 있는 걸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이다. 

나는 맛있어서 먹는 건데 거기다 대고 제발 유래나 알고 먹으라며 거들먹대는 사람을 보면 울컥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면 궁금하다. 자꾸만 더 알고 싶어진다. 좋아한다고 꼭 좋은 글을 쓴다는 법은 없지만 나 역시 빵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안목은 무척 흥미롭다. 딱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것들만 쏙쏙 골라놓은 것이다. 빵과 어울리는 요리는 무엇인가, 곁들일 홍차나 커피를 맛있게 끓이는 비결은 무엇인가,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가, 결국 남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좋아하는 것을 파고 또 파다 보니 계속 깊어지고 점점 넓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빵 한 쪽 맛있게 먹겠다고 집을 청소하고 있는 것이다. 

‘외길 빵 인생’ 모모가 추천하는 아침용 빵은 담백한 통밀빵이다. 점심에는 햄이나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를 즐기고, 간식은 각종 페이스트리나 브리오슈처럼 달콤한 게 좋다. 곁들임으로는 꿀과 말린 과일, 생 햄이나 훈제연어처럼 보편적인 것 말고도 모둠 콩 마리네, 마늘과 허브로 푹 삶은 돼지고기에 소금, 후추를 넣고 찧은 저장식품 리에트, 닭 간 파테처럼 이국적이지만 의외로 쉬운 요리들도 소개된다. 봄에는 죽순이나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같은 제철 야채를 살짝 데쳐 곁들이고, 여름에는 차가운 토마토 수프와 함께 더위를 이긴다. 가을에는 뭐든 좋아하는 버섯을 올리브유에 볶아서 식초, 소금, 간장으로 간한 버섯 마리네가 있고 겨울에는 큰맘 먹고 닭 한 마리를 통째 오븐에 굽는다. 

빵은 일상의 동반자일 뿐 아니라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속을 판 사워도우 브레드에 클램차우더를 담아 먹고, 파리에서는 바게트를 길게 반으로 갈라 잼과 버터를 왕창 얹은 타르틴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갓 짠 올리브유에 굵은 소금을 뿌려 치아바타나 포카치아를 찍어 먹는다. 독일에는 호밀 백 퍼센트인 펌퍼니클이, 벨기에에는 강판에 간 레몬 껍질과 달걀을 듬뿍 넣은 크라퀼라가, 포르투갈에는 부드러운 빵에 푹 삶은 돼지고기를 넣은 미파나가 있다. 브라질의 퍼웅 지 케이주, 핀란드의 하판레이파, 러시아의 피로슈키, 덴마크의 트레콘 브로트 등 외우기는커녕 발음도 못 하겠는 빵, 빵, 빵, 마치 빵으로 세계 일주라도 할 기세인데 그 마음 나는 잘 안다.

전 세계를 돌며,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일 년 내내 빵을 먹는다. 살을 빼려면 빵부터 끊으라는 얘기가 있지만 애꿎은 빵을 잡기에 앞서 양심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호하게 말하건대 살찌는 것은 빵을 먹어서가 아니라 빵을 많이 먹어서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 [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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