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의 라이언 레이놀즈, 유쾌한 역습

2016.03.03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놀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20년이 넘는 긴 경력 동안 성공 못지않게 실패를 많이 경험했음에도 라이언 레이놀즈가 여전히 우스꽝스러운 사람이라기보다는 웃긴 사람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어릴 적에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고 20대 중반까지도 배우를 진지한 직업으로 여겨본 적이 없었던 그는 자신을 생계형 상업 배우라고 부르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일이 주어지는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긴다는 배우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오만해질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메리칸 파이]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섹스 코미디인 [엽기 캠퍼스]의 주인공 ‘밴 와일더’는 아직도 라이언 레이놀즈를 따라다닐 정도로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산드라 블록과 함께 한 로맨틱 코미디 [프로포즈]의 흥행 성적 역시 누구라도 으쓱해질 만한 성과였다. 호평을 받은 인디 스릴러 [베리드]는 코미디로 시작했던 라이언 레이놀즈가 제2의 매튜 매커너히가 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초연하게 자기 자신으로 남았다. 인디 영화들과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들은 여전히 뒤죽박죽 그의 IMDB 페이지에 나타났고 [그린랜턴]의 참담한 실패를 누구보다 먼저 비웃을 줄 아는 타고난 유머 감각도 그대로였다. 도무지 싫어할 구석이라고는 없으니 다들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신랄한 비평들도 라이언 레이놀즈의 차례에는 늘 안타까움 섞인 격려로 변했다. 영화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관객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언젠가 때가 오겠지. 좀처럼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는 이 호감 가는 캐나다인을 위해 사람들은 대신 말해주곤 했다. 맞는 작품만 만나면 훨씬 잘될 사람인데.

그리고 마침내 [데드풀]이 등장했다. 이번에야말로 라이언 레이놀즈가 아니면 안 된다고 모두가 인정했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원작으로부터 점지를 받았음에도 라이언 레이놀즈가 제대로 된 데드풀을 만나기까지는 무려 11년이 걸렸다. 한 번의 실패가 있었던 만큼 질릴 법도 하건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데드풀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었다. 시간 여행을 해서라도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팬들에게 드디어 완벽한 데드풀이 나타난 것이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특유의 기민하고 재치 있는 연기로 비딱하고 재기 발랄한 안티 히어로 데드풀의 매력을 완벽하게 스크린으로 옮겨왔을 뿐만 아니라 제작과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영화 외적으로도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쌓아온 친근한 이미지는 원작의 팬이 아니었던 일반 관객들도 극장으로 손쉽게 이끌었다. 그렇게 노력을 쏟아붓고도 공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돌리는 겸손한 성격도 그대로였다. 덕분에 아무리 뻔뻔하고 건방진 농담을 던져대도 [데드풀]은 한풀이 굿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동안 유달리 자신에게 관대했던 고객들을 위해 라이언 레이놀즈가 준비한 사은 대잔치이자 모두가 응원하는 유쾌한 역습이다. 우리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Warning] 폭스가 잘못했네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 홍보를 통해 웃으면서 욕하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팬들과의 손발도 척척 맞았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 촬영 당시 원작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그가 데드풀의 입을 꿰매고 눈에서 레이저를 나오게 하겠다는 제작사 폭스의 황당한 결정에 반대했다가 다른 배우로 교체하겠다는 위협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질문을 던지는 팬에게 폭스의 잘못을 조목조목 집어내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모습은 억울해 보인다기보다는 신이 나 보인다. 화를 내지 않으니 보는 사람도 즐겁다. 폭스야 민망하겠지만 테스트 영상 유출 암시부터 수트 훔치기까지 그가 데드풀처럼 굴면 굴수록 팬들은 더욱 열광하니 막을 수도 없는 노릇. 폭스 놀리기를 아예 팬들과 함께 하는 마케팅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라이언 레이놀즈의 대응 방식은 가히 천재적이다. 앞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를 다른 배우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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