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왜 LGBT를 지지할까?

2016.03.04
운동화를 신은 두 여성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전신이 아니라 다리만 보이는 사진이지만, 키스하는 포즈라는 걸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 2월 14일, 아디다스가 인스타그램 공식계정에 이 같은 이미지를 게재하자 12만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그중에는 밸런타인데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라거나 아디다스에 실망했다는 등의 호모포빅한 글들도 많았지만, 아디다스는 “오늘은 사랑을 위한 날”이라는 말로 논란을 일축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이키는 “동성애자는 동물보다 못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매니 파퀴아오와 8년 동안 이어온 스폰서십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밝혔다. “파퀴아오의 발언이 혐오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공개적인 성소수자 지지는 처음이 아니다. 나이키는 2011년부터 LGBT 스포츠 연합을 위한 기금을 조성했고, 2012년부터는 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깔에서 모티브를 딴 ‘Be True’ 컬렉션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밸런타인데이 일주일 전, 스폰서십 계약에 관한 내용을 개정했다. “아디다스의 주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의 원칙을 인정하고 따르기 때문에” 스폰서십을 맺은 선수가 성소수자임을 밝히더라도 계약을 변경하거나 취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기업은 두 브랜드 이외에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는 2013년 동성 커플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으며, 버드와이저는 게이프라이드페스티벌의 주요 스폰서로 여러 번 나섰다. 2015년 광고에 실제 게이 커플을 등장시킨 티파니앤컴퍼니는 물론, 2008년 캘리포니아에서 ‘prop8(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조항)’이 통과된 이후 ‘Legalize Gay’ 티셔츠를 판매해온 아메리칸어패럴, 마이크로소프트와 갭 등 분야에 상관없이 수많은 기업이 성소수자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장 뚜렷한 이유는 물론, 시장성이다. LGBT 시장의 규모는 매해 8천억 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성소수자들의 가계소득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23% 높다거나 자가 소유 주택 비율 역시 높고, 여행이나 스마트폰 등 소비에 좀 더 적극적이라는 통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LGBT 그룹의 경우, LGBT를 지지하는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무려 74%에 달한다. 그렇지 않은 소비자들의 충성도가 42%인 것과 비교(ABC 뉴스)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성소수자들의 높은 구매력과 충성도는 기업에 차츰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휴먼라이츠캠페인(HRC, Human Rights Campaign)은 2001년부터 ‘기업 평등 지수(CEI, Corporate Equality Index)’를 조사해 공개하고 있는데, LGBT 직원들이 일하기에 얼마나 적절한 정책을 갖추고 있는지부터 이들을 위한 보험과 각종 혜택, LGBT 직원들을 고용하고 유지하는 능력 등 촘촘한 평가 기준을 둔다. 그 결과 2001년에는 13개 기업만이 모든 기준을 만족시킨 반면 2012년에는 252개, 올해는 407개 기업이 만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가 LGBT 사회뿐 아니라, 성소수자 지지 비율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사이에 태어난 세대), 그리고 그다음 세대에 대한 고려 때문이기도 하다고 분석한다. 소비자들의 인권 의식이 높아지면서 이익을 좇는 기업들 역시 자연스레 LGBT 커뮤니티를 의식하게 된 것이다. 연령이 낮아질수록 성소수자에 대한 포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성소수자를 지지한다고 밝힌 비율은 20대 이하 57.5%, 30대 50.9%, 60대는 29.5%로 나타났다. 하지만 LGBT 커뮤니티를 향한 기업들의 지지는 여전히 미미하다. 퀴어문화축제 인디 사무처장은 “(글로벌이 아니라) 국내기업으로 칭할 수 있는 대형사의 공식적 참여나 후원은 아직 없었다”며 “보편적 인권을 지지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경우도 한국 내에서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지지나 후원을 진행하지 않는 곳이 많다. 아직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회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나마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은 구글 코리아와 러쉬 코리아, 아메리칸어패럴 코리아 정도다. 2014년과 2015년 모두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구글 코리아는 팔찌·배지·에코백 등을 판매했으며, 거기서 얻은 200만 원가량의 수익과 본사 차원의 후원액 3만 불(한화 약 3천만 원)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 보내기도 했다. 러쉬는 지난해 영국에서 시작된 ‘GAY IS OKAY’ 캠페인을 진행하며 해당 문구가 쓰인 ‘사랑비누’를 매장에서 판매했다. “이전에 진행했던 인권 캠페인들과 달리 ‘GAY IS OKAY’는 문구도, 매장 윈도우 프로모션도 매우 직접적이었다. 한국의 분위기상 우려했던 부분들이 있지만 매장에서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고객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사회적인 이슈를 걸고 캠페인을 하는 것에 대해 용감하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러쉬 코리아 홍보팀 이지선) 영국으로부터 수입한 사랑비누 5천 개는 전량 판매되었다.

누군가는 기업들의 이러한 활동을 LGBT 소비자를 노린 단순한 마케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 아니라, 기업들의 공식적인 성소수자 지지 활동 자체가 사회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구성원의 존재가 부각된다는 것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관점의 접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제적 의미에서 성소수자가 기업의 주목 대상이 된다는 것은 기업의 태도 변화를 일으키고, 성소수자 지지와 후원을 둘러싼 결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등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인지도 있는 기업이나 사회적 인사의 성소수자 지지발언 혹은 행동은 성소수자의 자긍심 고취에도 긍정적 작용을 하게 된다.”(인디 사무처장)

아메리칸어패럴 코리아는 올해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한쪽에서는 게이 잡지 [뒤로]가 창간됐고,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인권에 적대적 발언을 한 이력이 있는 예비후보를 찾아 낙선운동을 벌이기 위한 RAINBOW VOTE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아주 느리지만 인식은 변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들도 존재감을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LGBT 이슈 컨설팅업체인 ‘위텍커뮤니케이션’의 CEO 밥 위텍은 예언했다. “나이키는 브랜드 선구자다. 그들의 액션은 운동선수들이 평가받는 데 새로운 기준을 세울 것이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미래의 승리자는, 이 매력적인 시장에 먼저 손을 내미는 기업일지 모른다. 단, 모두가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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