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의 브리 라슨, 믿고 보는 배우

2016.03.17
브리 라슨의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선 조나 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화 [21 점프 스트리트]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나는 브리 라슨을 잊고 살았을 것이고 [숏텀 12]를 찾아볼 확률도 낮아졌을 테니까. 아무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인데 그렇게까지 볼 영화가 없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없었다. 찾아 보는 관객이 이렇게 힘든데 배우는 오죽했을까. 여섯 살에 데뷔한 이래 브리 라슨에게는 단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어린 소녀의 면전에 대고 예쁜 역을 맡기에는 너무 평범하고, 소심한 못난이를 시키자니 너무 예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곳이 할리우드다. 끝없이 닫히기만 하는 문 앞에서 좌절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몇 번이고 모든 걸 버리고 학교로 돌아가려던 브리 라슨에게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21 점프 스트리트]의 성공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찾아온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다시 말하지만 조나 힐의 눈먼 자신감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의 공은 모두 브리 라슨의 것이다. 그는 격려해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해냈다. 여배우들에게 강요되는 좁은 기준에 맞추는 대신 건강한 회의를 품은 것도, 세상에 내놓을 가치가 없는 이야기는 배우로서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모두 브리 라슨 자신의 선택이었다. 내면에 깊은 아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숏텀 12]의 그레이스를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브리 라슨의 강단이 내내 옳았음을 깨달았다. 늘 그의 앞을 막았던 ‘이도 저도 아닌 배우’라는 말은 어느덧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배우’라는 칭찬으로 바뀌어 있었다. 각종 독립 영화제들에서 주연상을 휩쓰는 모습에 오스카 후보의 탄생을 점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았다.

[룸]은 브리 라슨의 재능을 미리 알아본 사람들을 충분히 으쓱하게 할 만한 작품이었다. [숏텀 12]를 준비할 때처럼 그는 다시 한 번 역할 속으로 몰입했다. 감독이 주연 배우와의 합작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헌신이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신체를 표현하기 위해 체중을 줄이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등장한 것은 물론, 조이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납치 전후로 나누어 꾸준히 일기를 썼다. 한 달간 침묵하면서 스스로를 집에 감금하다시피 한 것도 브리 라슨이 직접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아들 역을 맡은 배우 제이콥 트렘블레이와의 관계 역시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제이콥이 처음 친구처럼 대해준 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는 브리 라슨의 진심은 어린 동료 배우에게도 통했던 모양이다. 영화의 심장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끈끈한 애착 관계는 단기간에 지어내기는 힘든 모습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탄생한 [룸]은 브리 라슨에게 많은 이들이 예상한 대로 오스카를 안겨주었지만, 어쩐지 그에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인디 영화의 총아에게는 화려한 드레스와 힐보다는 민얼굴에 운동화가 더 잘 어울린다느니 하는 말이 아니다. 가진 재능에 비해 지금껏 주어진 기회가 너무 적었기에 앞으로의 날들이 더 기대된다는 뜻이다. 흔히 오스카 수상이 배우로서의 정점이라고들 하지만 브리 라슨에게는 지금이 출발점처럼 보인다. 다시 인디 영화로 되돌아가건 아니면 톰 히들스턴과 함께 하와이의 정글을 누비며 킹콩 프리퀄을 찍건,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다. 그동안 관객으로서 배운 점이 있다면, 브리 라슨은 믿고 봐도 된다는 것이니까.


Warning
노래 실력에 놀라지 말 것!

브리 라슨은 이미 동명의 만화와 게임을 바탕으로 한 귀여운 인디 영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서 빼어난 노래 실력을 선보인 적이 있다. 주인공 스콧 필그림의 무시무시한 전 여자친구 엔비 아담스로 등장했던 브리 라슨의 공연 장면을 영화의 가장 좋아하는 부분으로 꼽는 팬들이 적지 않을 정도. 배우들이 노래도 잘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인디 영화로 잔뼈가 굵은 브리 라슨이 16살에 팝 가수로 데뷔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역시 상당히 신기하다. 직접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던 첫 앨범 [Finally out of P.E.]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그는 당시에도 어리고 예쁜 소녀 이미지에만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음반사에 대한 야무진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강단 있는 성격은 그때도 여전했던 모양. 그 후에도 로건 레먼과 함께 했던 영화 [훗]의 사운드 트랙 등에도 참여했으니 브리 라슨의 노래를 더 듣고 싶은 사람은 유튜브를 뒤져보자. 생각보다 꽤 많은 곡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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