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버가 경계를 넘어 말해온 것

2016.04.04
Borders. ‘경계들’이라는 제목의 신곡 발표를 앞둔 지난 3월 24일, f(x)의 엠버, 아니 그 순간 ‘그냥 엠버, 인간 엠버’로서 말하고 있다고 밝힌 그는 SNS를 통해 “여러분에게 몇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2년 동안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음악과 영상으로 만들어 마침내 세상에 내놓는 설렘과 함께, 엠버가 고백한 것은 불안함이었다. “이 노래를 쓸 때 많은 용기를 냈어요. 왜냐하면 이 주제가 사람들한테 말하고 오픈하는 자체가 많은 겁을 갖고 있었어요.”

‘이 주제’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엠버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Borders’의 안팎으로 비교적 선명한 은유를 뿌려놓았다. “엄마는 말했지. 한계(borders)를 넘어갈 때 궁지에 몰려도 절대 무서워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똑바로 서 너의 길을 위해 싸워”로 시작되어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 모든 사람들”에 의한 억압으로 고통받고 “내가 속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갈등하지만 “절대 흉내 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는 가사는 인종이나 성별정체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음에도 레이디가가의 ‘Born This Way’처럼 소수자를 향한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뮤직비디오에서 엠버가 들어 있는 투명한 상자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지향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클로짓(벽장)’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엠버는 지난해 자신이 ‘톰보이(사내아이처럼 보이거나 활달하게 행동하는 여성)’로 살아오며 겪은 사회적 압력에 대해 “남자와 여자가 한 가지 겉모습에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을 남겼고, “모든 동성애혐오,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멍청이들에 반대한다”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 차림으로 찍은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 사진 속 엠버는 두 개 차선 사이의 경계 위를 가로질러 서 있다.


어떤 면에선 완곡한, 어떤 면에선 대단히 직접적인 상징들. 유튜브의 ‘Borders’ 뮤직비디오에는 1주일 사이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미국‧대만‧인도‧팔레스타인 등 전 세계 K-POP 팬들은 “고맙다”와 “사랑한다”는 물론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 노래는 미묘하게 커밍아웃처럼 보인다”는 해석, “엠버는 톰보이인가?”라는 질문, “톰보이가 레즈비언이냐는 의미라면 엠버는 아니다. 방송에서 가끔 남자에게 반했던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반박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엠버의 정체성을 캐내거나 규정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돌이 TV에서 한 말로 그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의미 없다. 한국에선 이성애자가 아닌 존재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건 자기 커리어뿐 아니라 회사와 멤버들도 무너뜨리는 일이다. 누구나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 있지만 그 믿음이 사실인지는 다른 문제”라는 한 해외 팬의 지적은, 한국을 거점으로 하지만 소비자는 점점 더 다양한 문화권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K-POP 시장이 마주한 새로운 과제다.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태도는 지난 2011년 폐기된 미군의 동성애자 군복무 제한 조치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아이돌만이 아니라 타인의 성별정체성이나 성적지향성에 대해 캐묻거나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고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성애자가 아닌’ 인간은 존재하지조차 않는 것처럼 여기고, 누군가 이성애자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거나 그 자체를 모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타자화시키는 것은 또 다른 방향에서의 억압으로 작용한다. 뮤지컬 [프리실라]에서 드랙 차림으로 공연을 펼친 조권을 향했던 호들갑처럼, “굳이 말하지 않으면 모든 이가 이성애자로 가정되는 사회에서 거의 ‘짜고 치는’ 저 문답은 동성애자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MECO, “게이 아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법) 즉 “A는 당연히 이성애자인데 겉모습만 보고 왜곡하지 말라”는 주장에서 “겉모습만 보고 타인을 재단하지 말라”는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문제는 ‘당연히 이성애자’라는 틀린 전제에 있다. 동성애 코드를 차용한 BL과 GL 콘텐츠가 K-POP 팬덤에서 적극적으로 생산 및 소비되고 있다는 면에서 볼 때 이는 상당히 모순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철저한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판타지로만 취급되며 묻혀 있던 쟁점들은 한국 바깥의 세계와 부딪히며 점점 더 뚜렷한 현실적 갈등을 드러낸다. 지난해 슈퍼주니어의 최시원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법제화에 반대하는 존 파이어 목사의 글을 리트윗 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당시 일부 해외 팬들은 콘서트에서 멤버들과 상의를 탈의하고 끌어안는 등 스킨십 하는 최시원의 사진을 보내며 “이에 대해 말해보라”고 항의했고, 비판이 이어지자 최시원은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드려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올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A가 어떤 사람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있는 그 자체의 A를 사랑한다”는 선언보다도 A가 ‘어떤 사람’인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이성애자일 수 없는 세계에서 누군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 그를 위한 길은 ‘다르게 보이지만 남들과 똑같(은 이성애자)다’라며 보이지 않는 장벽을 대신 쌓아 올려 가시화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향한 폭력에 함께 맞서 싸움으로써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윤리적으로는 당연하고, 심지어 시장을 위해서도 그렇다. 이것은 비단 엠버에 대한, 그리고 K-POP을 둘러싼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K-POP 시장의 제작자와 아티스트, 소비자 모두가 외면하지 않고 답을 찾아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언젠가 다음의 누군가가 ‘많은 겁’을 갖지 않은 채로도 경계를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또렷하게 할 수 있도록.



목록

SPECIAL

image 신과 함께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