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음악계는 왜 여성을 존중하지 않나

2016.04.11
우선 밴드 중식이 이야기부터. 지난 4월 1일, 중식이의 리더 정중식은 가사 속 여성 혐오 논란에 해명하는 블로그 포스팅을 올렸다. 논란에 대해 “피해의식 있는 여자들이겠거니” 생각했다는 무신경함과 본인은 “여자친구를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여성 혐오는 아닌 것 같다는 빈약한 논리는 오히려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3월엔 쏜애플의 윤성현이 친구와의 사담에서 여성 뮤지션 음악에 대해 “자궁 냄새”라고 말했던 것이 뒤늦게 밝혀져 문제가 되었다. 그보다 조금 전엔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포토그래퍼 조립이 데이트 폭력을 휘두른 것이 밝혀져 레이블 측이 결별을 선언했다. 이 모든 게 한 달 사이 인디 음악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것을 최근에 생긴 잘못된 경향으로 보는 건 오히려 문제를 축소한다. 시계를 조금만 더 뒤로 돌려보자. 2013년 밤섬해적단의 권용만은 밴드 쾅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최태현이 다리 구르는 것만 바라보는 20, 30대 여성 호구들”이라는 표현을 썼으며, 검정치마는 2011년 발표한 ‘음악하는 여자’에서 “나는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러. 시집이나 보면서 뒹굴어 아가씨”라고 했다. 인디 신에서의 젠더 감수성 결여는 결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이미 존재했지만 문제 삼지 않았던 것뿐이다.

물론 “남자로 태어났으면 밥상 한 번 엎어봐야” 한다는 말이 지상파에 버젓이 나오는 한국에서 유독 인디 신만 젠더 의식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디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여기서도 비슷한 수준으로 존재하는 게 드러난 것 아닌가 싶다”는 밴드 못의 보컬 이이언의 말처럼, 앞의 사례는 한국 사회의 평균치에 가까운 편이다. 여기에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가 지적하듯 “남성 뮤지션이 다수인 남초 사회”로서 음악에 대한 담론까지 남성 중심적으로 만들어지며 여성은 더욱 타자화 된다. 가령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2011년 야광토끼 1집에 대해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하면 어떤 정형이 형성됐다. (중략) 음악의 여러 축 중 서정과 달콤함의 좌표에 방점을 찍는다. 야광토끼는 이런 흐름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모범적으로 들려준다”고 평한 바 있다. 비슷하게, 윤성현의 발언 중 그나마 여성 뮤지션 중 괜찮다고 언급된 가수 오지은은 말한다. “타루, 요조 등이 홍대에 등장해 달달한 음악으로 주목받았을 때 그들의 음악에 많은 이가 공감하고 이 신의 팬이 되었음에도, 마치 그들이 음악을 망친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이 여성 혐오다. 나에게는 마치 명예 남성을 수여하듯 ‘너는 그들(다른 여성 뮤지션) 같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칭찬이랍시고 했다. 소위 여성적인 음악을 폄하하는 시선이야말로 여성 혐오 아닌가.” 앞서 말한 검정치마의 ‘음악하는 여자’에서 조휴일은 노래한다. “너의 신음 섞인 목소리가 난 너무 거슬려.”

이처럼 인디 신의 기저에 깔린 남성 중심적 태도는 인디의 솔직함이라는 애티튜드와 함께 창작물의 형태로 대중을 향해 발화된다. 중식이의 ‘야동을 보다가’에는 옛 애인이 나오는 ‘야동’을 보고 자기연민에 빠진 남자 화자가 등장한다. 이것은 화자의 어리석음이나 ‘찌질함’을 투명하게 재현하는 가사가 아니다. 옛 애인이 ‘야동’의 주인공이 되어 유통되는 상황에서 끔찍함을 느낄 수 없다면 못난 놈이 아니라 못된 놈이다. ‘야동을 보다가’의 가사는 화자의 ‘찌질함’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 아니라, 윤리적 장애를 ‘찌질함’으로 인식하거나 포장하는 창작자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에 가깝다. 정도는 훨씬 덜하지만 십센치의 경우, ‘Fine thank you and you?’의 화자는 헤어진 애인을 그리워하며 “너의 얘길 들었어. 넌 벌써 30평에 사는구나. 난 매일 라면만 먹어. (중략) 좋은 차를 샀더라. 네가 버릇처럼 말한 비싼 차”라고 말한다. 역시 ‘찌질한’ 남자의 자기연민을 드러내기 위해 허영심 많은 여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고민 없이 사용된다. 불쌍한 자기 자신에 취해 자신이 누군가를 타자화 하고 편견을 고착화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자기연민도 폭력이다.

이처럼 솔직한 여성 멸시의 전시를 제어하기엔, 소속 레이블 역시 젠더 이슈에 둔감하고 리스크 관리도 능숙하지 못하다. 윤성현은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자궁 냄새”라는 표현을 썼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비하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리 불안”이라는 용어까지 써가며 항변했다. 그것이 진심이라 해도, 창작자로서의 본인이 일상 차원의 소통이 가능한 사회적 주체는 아니라는 것을 밝힌 셈이다. “20, 30대 여성 호구들”이란 표현을 쓴 것에 대해 해명하며 음악으로 먹고사는 것에 대한 본인의 고민을 토로하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호구”라며 퉁친 권용만도 마찬가지다. 대중과 의사소통하기에 예술가의 자의식은 너무 비대하며 언어 사용도 자의적이다. 메인 스트림에서는 그것을 회사가 보완 혹은 해결해준다. 하지만 윤성현의 소속사인 해피로봇은 그의 언어가 사회적 맥락에서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통렬히 반성하기보단, 창작자 윤성현의 편에서 그의 의도를 설명하느라 애썼다. 소속 가수와의 의리는 챙겼을지 모르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는 엉망이다.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조립의 데이트 폭력에 대한 붕가붕가레코드의 신속한 대응이 고무적인 건 그래서다. 붕가붕가 측은 해당 문제가 불거지자 새벽에 내부 의견을 모은 뒤 “분명한 폭력이라 판단했으며 이 판단만으로도 앞으로 붕가붕가레코드의 일원으로서 함께할 수 없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여론의 압박 이전에 젠더 이슈는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고건혁 대표의 말은 여성 소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인디 신에서 윤리적으로도, 또한 비즈니스적으로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못 단독 공연을 하면서 다른 멤버들에게 멘트할 때 여성·장애인·성소수자 비하는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이이언의 사례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과연 최근 불거진 젠더 이슈는 인디 신의 남성 중심적 담론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야 배움을 얻는 건 슬픈 일이지만,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화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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