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보]의 엘르 패닝, 적절한 성장의 속도

2016.04.14
연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도 없다면서 이렇게 잘해도 되는 걸까. 언니인 다코타 패닝을 제외하고는 가족 중 배우도 없다는데. 엘르 패닝은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본능적으로 균형 감각을 타고난 듯하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나 [말레피센트] 같은 영화에서 인위적이지 않은 순수함을 표현했듯이, [진저 앤 로사]처럼 좀 더 어두운 작품에서도 그는 과장되게 뒤틀려있지 않다. 상처와 고통에 집중하며 성숙해진 연기력을 뽐내보고 싶기도 할 법한데 매 순간 활짝 열려 있는 엘르 패닝의 얼굴은 십대 소녀의 상처받은 심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다가도 다음 순간 실없는 장난기와 활기로 가득 찬다. 덕분에 진저는 성장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의 유형이라기보다는 현실에 정말로 존재할 것만 같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한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감독의 의도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연기라니, [슈퍼 에이트] 촬영 당시 J.J. 에이브람스 감독이 했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엘르 패닝은 정말로 다른 별에서 온 걸지도.

[트럼보]의 니콜라 트럼보는 이미 여러 번 주연을 맡았던 배우에게는 비교적 작은 역이지만 처음으로 성인 여성을 연기할 기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트럼보]는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기에 엘르 패닝의 니콜라 역시 순진한 어린 소녀에도, 혼란스러운 십대에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는 그 단계들을 모두 거쳐 어른이 되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요구하며 맞서 싸운다. 이해와 용서는 그다음이다. 아버지인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가 뒤늦게 인정했듯이 어른들이 바라건 바라지 않건, 눈치를 채건 채지 못하건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된다. 늘 무리하지 않고 제 나이에 맞는 역들을 찾아냈던 배우다운 선택이다. 각종 잡지의 표지들이야 뭐라고 하건 간에, 18살 엘르 패닝의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러가고 있다.


[Warning] 숨지 않는 젊음
[어바웃 레이]는 10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쉽지 않은 주제인 만큼 어른들의 뒤에 숨어 있을 법도 한지만 엘르 패닝은 주연 배우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 상황의 불공정함을 인정하고 레이를 바르게 묘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자신의 청에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또래 트랜스젠더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 것.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틀에 박힌 말도, 자신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변명도 없었다.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는 무조건 피하고 보는 성인 배우들도 적지 않은 할리우드에서 17살의 엘르 패닝은 이미 모범으로 남을 사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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