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설리의 인생

2016.04.18
성인 여성이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사진 속에서 두 사람은 마스크를 쓴 채 산책하고, 껴안고 얼굴을 맞댄 채 행복하다는 듯 웃는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입을 맞추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라면 누구나 평범하게 하는 행동들. 그러나 주인공이 아이돌, 심지어 걸 그룹의 멤버였던 젊은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설리가 자신의 입에 휘핑크림을 짜 넣는 사진과 영상을 올린 지난 3월 27일 이후, 다시 며칠 만에 남자친구 최자와 스킨십 하는 사진들을 게재하자 대중과 언론 모두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몇몇 연예 매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설리는 단숨에 국민 “사랑꾼”이자 “관종(관심종자. 관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됐다.

[조선일보]는 ‘설리 연인 최자… “설리, 밤에 전화해서 ○ 해달라고 조른다”’, [세계일보]는 ‘설리, 최자를 만나는 이유? 그의 물건을 바라볼 때 ‘만족’’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전자의 내용은 ‘랩을 해달라고 조른다’는 것이었고, 후자에 담긴 것은 최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웃는 설리의 모습이었다. 한편 [TV 리포트]는 ‘순수함, 그리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복숭아’라고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설리. 그 복숭아의 색이 점점 바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고 썼다. 이런 입장들은 모두 여성이 욕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태도에는 불쾌해하고, 더 나아가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연인과의 다정한 사진을 올린 사람도, 생크림을 먹는 영상을 공개한 사람도 설리지만, 일부 대중이나 언론은 설리를 과거 아무것도 몰랐던 순수한 소녀로 상정하고, 지금의 행동을 나이 많은 남자친구에 의해 음탕해진 것으로 규정한다.

올해로 스물셋, f(x)를 탈퇴한 지는 약 8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설리를 순수하고 조신하게 굴어야 할 여자아이로, 또는 f(x) 나머지 멤버들과 팬들에게 평생 용서를 구해야 할 배신자처럼 바라본다. 물론 그룹을 응원해온 팬들에게는 그의 탈퇴가 쉽게 잊기 어려운 상처일 수 있다. 다만, 설리는 팀에서 떠나는 것으로 자신의 일에 관해 스스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 이후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설리 당사자뿐이지만, 타인들은 그의 인생에 무리하게 개입하려 한다. 과거 설리의 연애 사실은 파파라치에 의해 강제로 알려졌으며, 그는 사진에 찍힌 이틀 전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밝힌 바 없는 사생활까지 추측당해야 했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심각한 인격모독과 성희롱 수준의 말들이 줄줄이 달리고, 여전히 ‘복숭아’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라고 요구받기도 한다.

설리는 이 모든 논란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도리어 바깥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른다는 듯, 혹은 알지만 상관없다는 듯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일상의 순간순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한다. 그가 정말 섹슈얼한 뉘앙스를 전달하려 했는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날리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것은 알 필요도 없을뿐더러 실제로 그렇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아이돌의 연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에 비해 관대해졌지만 대놓고 표현하는 것만큼은 금기로 여겨지고, 여성의 섹시함을 마음껏 소비하면서도 그들의 주체적인 욕망은 인정하지 않는 사회. 게다가 보통의 연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가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편이 점잖다고 여겨지는 와중에 설리는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살고 있다. 강제로 사생활을 발각당하고 몸가짐을 평가당하기까지 해야 했던 한 여성이, 원하는 방법으로 본인의 삶을 드러낸다. 이것은 그 어떤 텍스트보다 뚜렷한 설리의 입장표명이며, 여기에 다른 사람의 평가나 불편함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질 일도 아니었다. 의도치 않았다 해도, 이 걸 그룹 출신의 여성 연예인은 지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세상과 맞서고 있다. 2016년에 벌어진 꽤 근사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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