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엄현경, 태연한 여자

2016.05.02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등장이었다. 데뷔 10년이 넘었지만 그중 4년을 쉬었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연기자 엄현경이 지난 2월 KBS [해피투게더 3]에서 ‘대세’로 소개되던 순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그러나 호감 가는 남자 연예인에게 연락하려다 거절당한 얘기를 술술 털어놓고, 개인기치고는 뻣뻣한 춤 실력을 보여주더니 MBC [일밤] ‘복면가왕’ 섭외가 들어왔다는 얘기로 분위기를 한껏 올려놓은 뒤 “노래를 못해서 못 나갔다”며 허탈하게 만들고는 음정과 가사가 엉망인 ‘애창곡’을 부르기까지, 매 순간 예상을 벗어나는 그의 태도는 점점 더 페이스를 자기 쪽으로 가져왔다. 춤으로는 이수민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고 김정민이나 서유리처럼 토크에 능숙하지 못하면서도 “해보니까 예능이 맞는 것 같다”는 당당한 자평에 유재석마저 “웬만하면 이런 얘기 안 하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놀렸지만, 엄현경은 곧 한 달간의 ‘인턴’을 거쳐 [해피투게더 3]의 정규 멤버로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예능에서 젊고 예쁜 여성 연예인에게 주어지는 소위 ‘홍일점’의 자리는, 바꾸어 말하면 ‘꽃병풍’에 가깝다. 분위기를 띄우는 애교와 리액션, 의외의 ‘털털함’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망가짐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그러나 엄현경은 춤이든 랩이든 성대모사든 필요한 건 망설임 없이 해치우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과 취향 또한 또렷하게 드러낸다. 함께 출연한 남성 연예인과 일단 엮고 보는 예능의 관성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호응하는 대신 꿋꿋하게 “얼굴 잘생긴 사람이 좋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미안해할 이유가 없으니 누가 뭐라 하든 괜히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잘생긴 남자가 좋다고 말하는 여자’가 신기한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성 연예인에게 허용되는 운신의 폭이 좁은 현실과 닿아 있지만, 엄현경은 굳이 ‘독설’을 가장하지 않더라도 찬찬히 상대를 바라보고 미소 지으며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것만으로 침체되어 있던 [해피투게더 3]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과도한 겸양이나 자학 개그, ‘오빠들’에게 놀림당하거나 귀여움받기만 하는 역할에 갇히지 않고 “누누이 말하지만 저는 춤을 잘 춘다”며 태연하게 자찬하며, 몸 던져 열심히 하면서도 아무 말이나 다 받아주지는 않는다. “쟤 왜 저래?”라는 말을 들을 만큼 엉뚱한 걸 시도하되 반응에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그러거나 말거나’의 태도와 함께 엄현경은 뜻밖의 예능 유망주로 떠올랐다. 최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그는 굳이 설거지와 청소를 깔끔하게 해놓지 않은 채 집을 공개했고, 가족들이 방문하자 요리를 하는 대신 간장게장을 배달시켰다. 여성 연예인의 살림 실력은 언제나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 그가 생각해본 적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엄현경은 지금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는 이런 여자도 있고, 이 여자는 즐겁게 살고 있으며, 방송에서도 꽤 재미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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