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 ‘꼰대’ 화법의 반면교사

2016.05.19
“여전하시네요.” 최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이하 ‘라스’)에 출연한 빅토리아는 자신을 끊임없이 강타와 엮으려 무리수를 던지는 김구라에게 말했다. 김구라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어디 가겠니?” 정말 그렇다. [아이즈]는 불과 6개월 전,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커리어를 유지해온 김구라의 생존 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많은 사과와 자숙을 거쳤음에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한 그의 태도다. 특히 신랄한 토크가 주를 이루는 ‘라스’에서 김구라는 여전히 선을 넘거나 전보다 자주 대화의 흐름을 깨뜨리곤 하는데, 이는 어떠한 집단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상사나 연장자가 흔히 취하는 권위적인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라스’의 김구라를 통해 ‘꼰대’적인 화법의 특징들을 분석했다. 잘 보고, 따라 하지 말자.
  

뜬금없이 지식을 자랑하는가?
맥락과 상관없이 ‘넓고 얕은 지식’을 과시하는 것은 김구라의 특기이자 많은 어르신들의 특성이다. 회식 자리에서 자신이 외국에서 마셔본 양주의 기원에 이어 그 나라 국민들의 민족성을 설명한다거나, 드라마 보는 가족에게 ‘왜 저게 말이 안 되냐면~’이라며 일일이 태클을 걸더라도 상대는 참고 들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리의 클럽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이성경에게 김구라가 “담배 안 피우고 크루아상 먹나요?”라는 무리수를 던짐으로써 프랑스와 크루아상의 상관관계에 대한 지식을 어필한 경우는 그나마 무난한 편이다. 중국 한족 출신인 빅토리아에게 묘족인 차오루를 언급하며 “한족은 다수고 메이저, 묘족은 마이너리티니까 약간 우월감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다른 MC들이 “이 얘기에 끼지 않겠다”며 황급히 선을 그은 것은 이것이 심각한 차별적 발언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스스로도 ‘아주 천박한 민족관’이라고 인정한 이 질문에 대해 할 수 있는 답변은 정해져 있으니, 굳이 이를 언급한 의도는 상대의 생각이 궁금하다기보다 ‘한족과 묘족의 차이를 알고 있는 나’를 드러내려는 데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김구라는 또다시 “빅토리아 생일엔 월병 같은 걸 주면 감동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중국 과자라는 건 알지만 이름 말고는 잘 모르는’ 월병에 대한 지식 자랑을 시도했고, 빅토리아는 “월병은 추석 때 먹는 것”이라며 황당해했다.

남의 말 끊고 아무 말이나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바로 내뱉음으로써 대화의 맥을 끊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권력이다. KBS [태양의 후예] 때문에 차태현의 아내가 송중기에게 푹 빠졌다는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김구라는 “곧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리로 갑니다”라며 뜬금없이 찬물을 끼얹었다. 주제를 꺼낸 윤종신이 “지금 그 얘기를 해야 하냐”며 타박하고 규현 역시 “그 누군가가 나타나고 하면 안 될까요?”라며 웃어넘긴 뒤 송중기의 인기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자, 김구라는 “개인적으로 봤을 때 송중기란 친구가 10년 뒤에도 주연 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다시 한 번 무의미한 일침을 가했다. 김구라의 어깃장은 ‘라스’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장치 중 하나지만, 잘 흘러가고 있던 토크를 별다른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중단시켜 거스르는 것은 MC로서도 좋은 신호가 아니다. 또한 곽시양이 출연 중이던 일일 드라마에 대해 약간 언급한 뒤 ‘그 드라마에 나온 여자(엄현경)가 예쁘더라. 85년생 여배우까지는 괜찮지만 86년생은 안 된다. 그런데 나이를 속인 걸 수도 있으니 실제 나이를 알아봐야겠다’로 멀리 넘어가는 의식의 흐름을 보면 점점 아슬아슬해지고 있다. 

모르는데 단정 짓고, 틀리면 우기는가?
사람은 누구나 모를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는 윗사람은 아랫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스태프들 이름을 다 외우는 연예인으로 소문났던 김구라는 막상 테스트에서 ‘라스’ 작가 이름을 듣고 “KBS 사람 같다”고 말했지만, 틀린 것을 알고는 “KBS 오래 있었지? 오래 있었을 거야”라며 우기면서 은근슬쩍 넘어갔다. 물론 이 정도는 애교다. [엽기적인 그녀 2] 출연을 거절했다가 마음을 바꿨다는 배성우에게 그는 특유의 ‘돈 모양 손동작’을 해 보이며 “처음에 안 한다고 했다가 하는 건 결국 이거(돈)거든요”라며 단언했다. 김구라는 금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속물’ 캐릭터로 효과를 거뒀지만, 상대가 그 속물 토크에 기꺼이 동참해주지 않는 이상 분위기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앞서 그에게 ‘무지하다’고 면박당했던 김국진이 그 말을 되돌려 공격 태세를 취해주자 “난 교양이 없다”고 자폭할 기회를 잡은 덕분이었다. 상대에 대해 잘 모르거나 별 관심이 없는데 ‘인생 선배’로서 굳이 뭔가를 가르쳐주려 할 경우에도 민망한 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GOT7의 잭슨을 소개하며 ‘헨리’라고 말실수를 했던 김구라는 잭슨이 한국에서 보낸 명절에 대해 얘기하자 갑자기 “차이나타운에 가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잭슨이 “저는 중국 사람인데 굳이 차이나타운 가라고요?”라고 반문하자 당황하며 얼버무렸다. 설날 조카들의 이름도 헷갈려하는 큰아버지의 인생 조언이 먹히지 않는 것처럼, 하나 마나 한 당부는 안 하는 게 답이다. 

가까울수록 후려치는가?
상대에 따라 구박의 강도를 달리하는 김구라가 가장 호되게 다루는 것은 개그맨 후배들이다. 황제성에게는 “우리가 이걸 계속 들어야 하나요?”, 허경환에게는 “들었던 얘긴데 잠깐 나갔다 와도 될까?”라며 무안을 주고 “안 들은 얘긴데 스토리는 뻔하다”고 기를 꺾는 등 후배들을 불안·초조하게 만든다. 팔짱 낀 채 미간을 찡그리고 토크를 평가하고, 진위를 의심하면서 꼬치꼬치 캐묻고 틈틈이 후려치는 그의 태도는 한국형 압박 면접과 흡사한 면이 있다. 다만 이 냉혹한 기준에서 “탤런트는 예외”이며, 그가 까다로운 토크 감별사를 자처하는 동안 긴장 서린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은 당연히 다른 MC들이다. 그중에서도 규현은 김구라가 위험한 멘트를 친다 싶을 때 빛의 속도로 받아쳐 톤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옆에 앉아 있다 난데없이 벼락 맞는 것 또한 규현의 몫이다. 곽시양과의 눈싸움 상대로 규현을 지목하면서 김구라는 “얘 쌍꺼풀 (수술) 해서 눈싸움 잘해”라는, 뜬금없는 디스 겸 논리적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말을 네 번이나 반복했으며 규현이 대결에 나서자 “이런 거라도 좀 잘 해보라”는 격려성 구박 멘트를 던졌다. 그리고 규현이 눈싸움에 놀라운 실력을 보이자 김구라가 신이 나서 한 말은 “너 쌍꺼풀 어디서 했냐?”였다.

만만치 않으면 태세 전환하는가?
차오루는 자신의 한국어 개인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지적하는 김구라에게 “바보야!”라고 일갈했고, 제시 역시 MBC [세바퀴]에서 애교를 강요했던 김구라에 대한 불만을 빠짐없이 말해 그를 당황시켰다. 이처럼 잘못이 없는데 싫은 소리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김숙이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JTBC [님과 함께 2-최고의 사랑]에 함께 출연 중인 윤정수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김구라는 갑자기 “윤정수 살려줘! 걔가 뭔 죄가 있어?”라는 말로 김숙을 후려치려 했지만 “내가 걔 죽였어요?”라는 정색한 답변이 돌아오자 머쓱해했다. 게다가 5녀 중 막내인 김숙의 부모가 아들을 바라고 계속 딸을 낳았다는 얘기에 김구라는 “점점 바람대로 태어날 때마다 얼굴이 남상으로 변한 거”라며 흔한 외모비하 농담을 던졌는데, 김숙이 “상처 주네?”라고 정곡을 찌르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후반부 토크에서 김구라는 김숙에게 전에 없이 열띤 호응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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