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지켜주지 못하는 것은 누구인가

2016.06.03
지난 5월 6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러블리즈 팬 사인회에서는 한 팬이 손가락으로 류수정의 볼을 찔렀다. 정황상 팬이 류수정에게 물어본 뒤 하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이 영상이 인터넷에 돌자 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혹시라도 나쁜 의도를 가졌다면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지난 3월 29일에 러블리즈가 출연한 한 대학교 행사에서 이벤트에 당첨돼 무대에 올라온 사람이 멤버를 강제로 포옹하는 일도 있었기에 팬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또한 지난 4월 27일 인터넷에는 KBS [뮤직뱅크] 출연을해 방송국에 가던 트와이스 채영의 어깨 위에 한 남성 팬이 팔을 걸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걸 그룹 I.O.I 역시 지난 27일 [뮤직뱅크] 출연을 하러 가는 도중 출근길에 카메라를 든 팬들이 몰리면서 몇 명이 넘어지고, 정채연이 이들을 도와주는 영상이 떴다. 다행히 모두 큰 사고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팬들과의 접촉이 많은 아이돌은 늘 돌발적인 사고를 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단지 팬과의 신체적 접촉이나 넘어지는 것 정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아이돌에게 접근하는 이들 중에는 반드시 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21일 일본에서는 20세의 싱어송라이터 토미타 마유가 지하 1층의 라이브 하우스 입구 근처 계단에서 남성 팬이라고 자처하던 괴한에게 목과 가슴 등의 급소를 20여 차례 찔렸다. 또한 2014년에는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의 멤버 두 명이 악수회 도중 괴한에게 흉기로 상해를 입기도 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를 지키기 위한 보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토미타 마유는 범인에게 SNS 등을 통해 협박을 받아 지역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AKB48의 악수회 역시 제대로 된 보안 요원이 없고, 몸수색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천만다행으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소녀시대 태연은 2011년 4월, 롯데월드에서 열린 ‘엔젤프라이스 뮤직 페스티벌’에서 무대에 난입한 남성에 의해 납치당할 뻔하기도 했다. 태연은 당시 행사를 진행하던 개그맨 오정태와 매니저, 써니 등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이 남성은 무대 위에 올라갈 때까지 전혀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돌 관련 행사의 경호 및 보안은 대부분 허술하다.

최근 아이돌은 과거보다 더욱 팬들과 많이 접촉한다. 팬 사인회에서는 팬과 코앞에서 만나고, [뮤직뱅크]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러 가는 것은 ‘출근길’로 불리며 많은 팬이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특히 걸 그룹 멤버들의 경우 남성 아이돌에 비해 물리적 폭력에 더욱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돌의 소속사 측은 보안에 대한 기준을 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러블리즈의 소속사 울림 엔터테인먼트는 “팬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크게 제재하려 하진 않고 부드럽게 대하려고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안을 철저히 할 경우 일부 팬들은 보안 및 안전상의 문제로 행동을 제지받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어 소속사 입장에서는 무조건 접근을 차단하는 것에 곤란을 느낀다. 채영의 사진이 논란이 된 이유 중 하나도 매니저가 이 상황을 제지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함께 찍혔기 때문이다. 직접 팬을 상대하는 아이돌은 팬의 접근을 거부하기 어렵고, 회사 측 역시 보안 체계가 허술하거나 팀과 회사의 이미지를 생각해 명확한 보안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 사이 걸 그룹 멤버들은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물론 모든 위험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돌에 대한 접근의 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기준은 필요하다. 최근 컴백한 AOA의 사인회를 다녀왔다는 한 팬은 “신경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꼼꼼하게 막았다. 화장실도 확인하고 보냈다. 선물을 건네려고 하면 매니저가 와서 먼저 받았고, 악수가 길어지거나 손을 당기면 안 된다고 바로 제지했다”고 말했다. AOA의 경우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접근은 허용하되 위험 소지를 최대한 줄이고 팬들의 행동에 대한 기준을 두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걸 그룹 레드벨벳의 경우 팬 사인회에서 ‘손 터치 허용’ 정도로 기준을 두고 있다. 한 걸 그룹 소속사의 관계자는 “멤버들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불쾌한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소리를 지르기라도 하라고 말한다. 분위기가 깨질 수도 있겠지만 멤버들이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충격을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다수의 팬들에게는 회사 측의 이런 대처가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장소에서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과 장치는 필요하다. 또한 아이돌이 팬에게 다가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것 역시 당연하다. 아이돌은 팬에게 잘해야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안전부터 보장받아야 할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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