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호건의 소송이 가져온 미디어의 오늘

2016.06.08
현대 사회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으로 인정되는 표현의 자유는 때론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실제로 지금 이 표현의 자유가 또 한 번 미국 언론들 사이에서 뜨겁게 다뤄지고 있다. [고커]·[밸리왝]·[코타쿠]·[기즈모도]·[라이프해커]·[제제벨] 등의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고커 미디어와,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현재 페이스북 이사회에 속해 있는 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 피터 틸 사이의 일 때문이다. 이들의 일은 표현의 자유가 어느 선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억만장자 개인이 금력으로 언론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 옳은지와 같은 질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야기는 유명 프로 레슬러인 헐크 호건의 소송에서 시작된다. 2012년, 헐크 호건은 [고커]가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고커 미디어를 고소한다. [고커]가 그의 섹스 테이프를 온라인에 기사로 발행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이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1심의 판결은 고커 미디어에게 1억 1,500만 달러, 한화로 약 1,350억 원을 배상금으로 부과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 판결이 (뉴스의 공익성보다는 트래픽을 쫓는) “온라인 퍼블리셔들에게 경고”
를 보내는 것일 수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 배상금의 상당 부분이 징벌적 의미를 띠고 있었고, 고커 미디어를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3월에 올라왔던 이 뉴스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5월 올라온 [포브스]의 기사 때문이었다. [포브스]는 이 소송의 배후에 피터 틸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헐크 호건의 소송 비용을 비밀스럽게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 고커 미디어 산하의 [밸리왝]은 피터 틸이 게이라는 사실을 아웃팅했고, 거기에 앙심을 품은 피터 틸이 고커 미디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기 위해 소송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 [포브스]의 추측이었다. 피터 틸은 [포브스]의 보도 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송 비용을 지원한 것이 자신이 한 “최고의 자선사업”이라고 말했지만, 이 발언은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퓨전]은 간접적으로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피터 틸의 전략을 이용해 억만장자들이 적은 돈만으로 미디어를 쉽게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피터 틸은 헐크 호건의 소송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다른 소송을 지원하면 그만이고, 피터 틸이 고커 미디어와 적대적이라는 것을 아는 다른 투자자들이 고커 미디어에 새로운 자금을 수혈하지 않으면, 손쉽게 언론사 하나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전략을 도널드 트럼프가 [뉴욕 타임스]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이미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여성 혐오에 관한 내용을 1면에 보도한 [뉴욕 타임스]에 앙심을 품고 있으니 상상하기 힘든 얘기도 아니다. 실제로 영미권의 유력 언론사들은 이 점이 표현의 자유에 위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조로 비판적인 글들을 쏟아냈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가디언], [뉴요커] 같은 언론사들이, 비록 고커를 좋아할 순 없으나, 피터 틸의 행위가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모두가 피터 틸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 피터 틸이 비밀스럽게 소송 비용을 지원했다는 [포브스]의 보도 이후, 트위터에서는 평소 고커의 보도 행태를 싫어하는 이들이 피터 틸을 칭찬하며, #ThankYouPeter라는 해시태그를 트렌드에 올리기도 했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인물들이 피터 틸을 옹호했다. [뉴욕 타임즈]는 기술 업계의 인물들이 “그에게 더 많은 힘을 주”라고 말하고 있다며, 다양한 트위터 반응을 모아서 소개했다. 한편, 모든 기술 업계 인사들이 피터 틸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 포스트]는 이베이의 창업자이자, 퍼스트 룩 미디어를 만든 피에르 오미디야르가 피터 틸을 상대하기 위해 헐크 호건의 소송에서 고커 측에 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워싱턴 포스트]를 소유하고 있는 제프 베조스 또한 “훌륭한 발언은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 보호가 필요한 건 불쾌한 발언”이라며 피터 틸을 비판했다.

이 사안에서 고커를 옹호하기란 어렵다. 고커는 헐크 호건의 섹스 테이프, 피터 틸의 아웃팅 이외에도, 일반 여성이 성폭행당하는 영상을 지워달라는 요구를 묵살하기도 했고, 저스틴 사코라는 트위터 유저를 전 세계적인 놀림감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어쩌면 미국 언론들의 방어적인 반응은 단순히 표현의 자유 때문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가 언론을 쥐고 흔들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안에선 어느 한 편을 들기가 쉽지 않다. 고커 미디어, 피터 틸 모두 흠결이 있고, 각자의 이해관계를 갖는 언론들과 기술 업계의 논평도 곧이곧대로 들을 순 없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이번 일이야말로 표현의 자유, 언론과 기술 업계의 긴장 관계, 억만장자들의 사회적 역할, 심지어는 징벌적 배상에 대한 미국의 사법 제도까지 다양한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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