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음악감독 “음악 자체가 목적인 적은 살면서 한 번도 없었어요”

2016.06.15
뮤지컬을 보러 가면 무대 바로 앞에 삐쭉하고 솟은 머리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와 배우의 에너지를 좋은 음악으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사람. 바로 음악감독이다. 김성수 음악감독은 격정적인 지휘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악보를 촘촘하게 채운 편곡과 극의 정서를 디테일하게 살려주는 다양한 소리의 질감 등으로 뮤지컬 음악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들려준다. 이것이 2015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저스])로 돌아온 그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마 돈 크라이], [지구를 지켜라], [에드거 앨런 포](이하 [포]), [페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찾는 이유다. 특히 현재 공연 중인 [포]는 작곡가 사망으로 미완성된 작품에 11곡을 작곡해 반창작의 개념으로 참여했다. 지금 가장 뜨거운 그를 만나 뮤지컬의 음악에 대해 물었다.

어릴 때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
김성수
: 초등학생 때 셜록, 루팡 찾다 보니 뒤팽까지 가게 됐어요. 그때는 그냥 추리소설로 읽었고, 포라는 작가를 알고 읽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포의 작품이 매력적인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기괴한 세계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이었어요. 사실 이런 뮤지컬이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그런데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음악에 포라니까 대본도 안 읽고 덥석 한다고 했어요.

[포] 음악에 대한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김성수
: 남들하고 똑같아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같군, ‘Immortal’ 좋군, 남자배우들이 굉장히 욕심내겠군. (웃음)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는 제 세대 중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이라면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주변에서도 뮤지컬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약간 낮게 보는 뮤지션들도 알란 파슨스가 곡을 썼다고 하면 다들 “오~” 이래요. 에릭 울프슨이 뮤지컬 곡을 그렇게 많이 쓴 건 몰라도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는 다 아니까. 그래서 이 정도 곡이라면 제가 지휘를 하면서도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00번씩 봐야 되는데.

지휘 얘기 하셔서 그런데 굉장히 격정적인 지휘로 유명하시잖아요. (웃음)
김성수
: 일단 그렇게 하질 않으면 제가 신이 안 나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배우 사이에서 에너지를 전달하는 역할이라 무대에 같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몰입도 굉장히 많이 해요. [포]나 [지저스]는 정서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지만 힘든 게 맞는 거거든요. [지저스] 마이클 리 마지막 공연 때는 ‘겟세마네’ 지휘하다가 눈물이 나서 제대로 큐를 못 들어간 적도 있어요. 공연을 여러 번 보시는 분들도 있고 한 번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가능하면 같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배우들은 저보고 접신한다고 해요.

[포]의 음악은 어떤 흐름을 가진 뮤지컬 넘버라기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싱글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김성수
: 맞아요. 원작 자체가 아주 완벽하게 통일성을 갖춘 편곡은 아니에요. 약간 다채롭다고 해야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석 그 어딘가’ 같은 곡은 70년대 록 르네상스 시절에 있었던 모티브 같은 게 있어요. 기타 치는 애한테 “에릭 클랩튼 ‘Layla’ 엔딩에 나오는 거 비슷하지 않아?”라고 하면 “어 맞네!” 그래요. (웃음) ‘매의 날개’에도 그렇고 그동안 우리가 연주하고 듣고 자라면서 느꼈던 것들이 뭔가 백화점처럼 나열되어 있는 느낌이 있어요.

에릭 울프슨의 미완성 유작이라 추가로 작곡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가장 고려하셨던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김성수
: 각각의 곡이 팝넘버 같다는 걸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아야 하니까. 1·2막 ‘Overture’, ‘갈가마귀’, ‘첫 대면’, ‘다른 꿈’ 포함해서 언더스코어까지 하면 한 11곡 정도를 썼는데, 멜로디컬한 ‘갈가마귀’나 ‘다른 꿈’은 음악문법적으로 잘난 척하는 건 피했어요. 에릭 울프슨 곡 자체가 그래서 작곡은 단순하게 하고 편곡을 복잡하게 하는 방식으로.

‘갈가마귀’는 공연 개막 6일 전에 완성됐다면서요.
김성수
: 사실은 버전이 4개였어요. ‘갈가마귀’라는 시에는 끊을 수 없는 막연한 불길함이 있는데 거기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어릴 적부터 제게는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작업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죠.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나왔지만, 곡이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고 내가 이런 걸 한국에서 내놨다가는 큰 문제가 생기겠다 싶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단순한 코드 진행, 반복 악절이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는 것, 다이내믹으로 곡 안에 드라마를 만들었어요. 보통의 곡들은 벌스-코러스-브릿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한 덩어리로 가서 그게 나중에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처럼 되길 바랐던 것 같아요. 배우들한테도, 편곡할 때도 중요하게 얘기한 게 다이내믹이었어요. “다른 분이 30부터 80이라면 저는 1부터 100까지 해야 합니다.” (웃음) 음향감독님께도 “가사 전달 때문에 페이드아웃 하지 마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일단 놔둬보세요. 제가 책임질게요. 제일 중요한 게 그겁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다행히도 노래 잘하는 배우를 많이 만나서 제가 사치를 부리는 거죠. 배우들 사이에서는 “다른 배우들은 부르지 못하게 만들어놓을 테야!” 이런 얘기도 나오고. (웃음)

많은 뮤지컬들이 ‘Overture’로 작품의 성격을 음악으로 설명하지만, [포]의 경우엔 작품 전체에 흐르는 어떤 불길함을 잘 포착한다는 느낌이었어요. 좀 오싹하기도 했고요.
김성수
: ‘Overture’는 일종의 예지몽처럼 썼어요. ‘Overture’에서 느낀 불길함을 확인할 수 있도록 여기 쓰인 테마가 포가 죽을 때 나와요. 굉장히 무섭게 하고 싶었어요. 포의 일대기를 다루는 작품인데, 극에 등장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사람이 아닌 느낌이 있거든요. 만약에 대극장 상업용 작품이 아니었다면 포가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 있다는 것과 중첩된 패러독스로도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포 인생 자체도 모호하니까.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데이빗 린치 영화들처럼.

음악 자체보다는 극 안에서 음악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편이신가 봐요.
김성수
: 포괄적인 무대 공연에 관심이 많아요. 오버하자면 뮤지컬 음악감독도 ‘무대 메커니즘을 옆에서 보고 배워서 뭔가를 만들어보자’가 출발이었거든요. 그래서 연출님들하고도 음악 외적인 얘기를 더 많이 하고 음악을 만들 때도 음악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형식만 갖고 얘기할 때 부딪히는 한계들이 있는데, 내가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음악적으로 되게 힘든 장치들을 요구하게 되잖아요. 그게 결국은 음악적 챌린지로 이어지고. 저 스스로가 음악지상주의자가 아니라서 그래요. 이건 그냥 도구라서.

무엇을 위한 도구인가요?
김성수
: 다들 그렇지만, 저도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걸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많았어요. 문제는 제가 음악 공부를 할 만한 환경이 못 됐거든요. 집에 피아노도 없었고, 피아노 배우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남자 새끼가!” 이랬고, 집도 굉장히 가난했었고. 그러다 보니 ‘표현하고 싶다’가 먼저였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걸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는 음악보다는 영화에서 영감을 더 많이 받는 편인데, 피터 그리너웨이 영화들이 완전히 좌우대칭이거든요. 마이클 니만이라고 클래식에서 미니멀리즘을 처음 시작한 분이 피터 그리너웨이 영화에 음악을 했었어요. 화면도 좌우대칭인데 따져보면 음악도 좌우대칭인. 그걸 오케스트라로 표현하는 걸 보니까 저도 그게 하고 싶은 거죠. 어떻게 해야 되지? 현편곡을 배워야겠다. 계속 독학을 하고 독학을 하고 그러다 필요한 게 있으면 선생님 찾아서 유학 가고.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배워온 과정들이라서 제 화법도 그래요. [지저스] 음악 수퍼바이저였던 (정)재일이하고도 만나면 서래마을에서 생면파스타 먹으면서 피나 바우쉬, 빔 반데케이버스, 비비안 웨스트우드 얘기하고 음악 얘기 안 해요. (웃음) 음악 자체가 목적인 적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엔 저 혼자 다 하기가 벅차서 가르쳐가면서 조금씩 시키려고 하는데 그때 제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있어요. 음악적으로는 30분 얘기하면 끝나요. 근데 해오는 걸 보면 결국 자기 생각대로 만들거든요. 이해시킬 수 있는 건 결국 같은 영화, 같은 책,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이더라고요. 대신 그것에만 매몰돼서 기본기가 없으면 그건 사기꾼이니까 기본기가 굉장히 잘 되어 있는 애들을 데리고 이런 작업을 좀 하는 거죠.

어떤 정서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에 목적이 있어서 그런지 [지저스]나 [포]의 편곡된 곡들에서 소리의 질감이나 공간감 같은 게 중요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김성수
: 제가 기타리스트여서도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에 어떤 기타를 가져오느냐까지 따져요. ‘이걸 써야 세션을 한다’ 하는 존써나 타일러 같은 기타들이 있어요. 연주자가 그런 기타를 가져오면 뭐라고 해요. 저는 펜더 스트랩과 텔레, 깁슨이 좋아요. 일반적인 뮤지컬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기타는 기타답게 치는 게 맞거든요. 잔망스럽게 라인을 치는 게 아니라 전체가 묶여 어떤 사운드를 내는 게 중요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헤비한 소리를 낼 때도 잘 다듬어진 세련된 소리가 아니라 지미 핸드릭스가 시작했던 그 소리면 된다고 해요. 다른 데 가서 야단맞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거든요. 거칠거칠하고 진짜 기타 치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오! 뭘 아네’ 싶은 사운드. 전자음악이 많은 시대에 기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초기의 기타 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전자음악이 할 수 없는 거니까. 그런 걸 좋아하는 거죠. 테이스트고.

몇 년 전 뮤지컬 [헤드윅]의 이준 음악감독님과의 인터뷰에서 가사 전달에 저해된다는 이유로 음향적 욕심을 많이 내지 못해 아쉽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거든요.
김성수
: 저도 그 얘기에 동의해요. 사실골적으로 얘기하면 줏대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관객 모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컴플레인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 거기서 중요한 건 작품의 기준이거든요. 그게 없으니 일희일비하는 거죠. 그래서 연출님들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음향은 라이드를 꼭 필요할 때만 하고, 대사가 들려야 한다면 작가와 크리에이티브팀이 미리 준비해서 가사가 들리도록 소편성으로 편곡하고 지휘자는 디크레센도로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조정하는 방식으로 하자. 뮤지컬에서 라이브인데도 불구하고 음악이 MR처럼 들리는 이유가 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하기 때문이거든요. 간단해요. 인간이 연주하면 소리가 그렇게까지 작게 들릴 수 없어요. 논리적으로 되짚어가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합이 잘 맞는 음향감독을 찾는 것도 음악감독에게는 큰 부분이겠네요.
김성수
: 제가 음악감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제가 한 편곡을 보호하기 위해서거든요. (웃음) 다르게 표현되는 걸 막기 위해서. 지금 공연하고 있는 BBCH 홀도 음향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요. [지저스] 때부터 김필수 감독님과 작업하고 있는데 정말 모든 걸 의논하시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감독님이 제가 음향을 전공했다는 걸 알고 계셔서 본인 음향팀한테 “김성수 감독한테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나 그 얘기 듣고 되게 웃었어. 하하하하. 그러다 보니 정말로 유기적으로 일을 하게 되죠.

서태지 음악으로 만드는 [페스트]는 개막까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김성수
: 사실 오랫동안 작업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무진에게 대본이 넘어온 건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급하게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전반적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많이 쓸 거고, 사운드적 장치도 [포]보다 더 많을 것 같아요. LG아트센터가 하나의 큰 영화관처럼 보이게. 주크박스 뮤지컬은 이미 익숙한 곡이 극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질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서 그 부분이 걱정이었는데, 꼭 낯설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1막 같은 경우는 배치를 잘 해놓으셔서 비틀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원체 멜로디들이 좋기도 하고요. 그래서 드라마적 호흡을 잘 뒷받침할 수 있게 음악적으로 손을 보는 것, 그리고 관객들이 서태지스러움을 듣고 싶을 때 잘 듣게 해주는 것, 아쉽게 빠진 곡들을 어떤 식으로든 듣게 하는 것, 이런 부분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앞에서 ‘이걸 배워서 무언가를 만들자’로 시작하셨다 했는데, 그 무언가의 힌트가 있을까요?
김성수
: 총체극 같은 형식이겠죠. 제가 다 만든. 재일이나 저나 총체극에 관심이 많은데 재일이가 작년에 연극 [해변의 카프카]를 보고 오더니 연출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조그만 극장에서 부담 없이 한번 해보자, 싶은 생각이 있어요. 뭐가 될지는 하다 보면 나올 것 같은데, 저는 연극이나 무용극을 보면서 더 압도당하는 게 있어요. 뭔지 모르는 걸 하고 싶어요. 지적 허영심. 잘난 척. (웃음) 이런 게 동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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