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서점을 한다는 것, 천천히, 잘, 소멸하기

2016.06.15
책방 이야기라면 지긋지긋하다. 책방이 아니라 ‘책방을 둘러싼’ 이야기 말이다. 책방·서점을 검색 키워드로 설정해 놓은 메일링에서 거의 매일 기사가 도착한다. 마치 귀환한 꿈의 용사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다른 ‘가치’를 찾아 ‘꿈’의 성지에 돌아온 것처럼, 모두가 그리워했던 무엇이 귀환한 것처럼, 소규모 서점은 그렇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책방이 어디 멀리 갔다가 돌아온 것인가. 운영 주체들이 책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지면서, 각자의 필요와 연유에 의해 다른 형식의 책방이 새로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만일의 경우에는, 일을 엄청, 밤새 하는데 회사가 월급을 안 줘서. ‘인문학’ 책을 만든다고 하면서 ‘밥보다 책 만드는 게 좋은 사람’을 찾는다는 출판사의 문구가 어이없어서.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곳? 출판사에서 하는 카페? 대여점인가요?”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 “이곳은 일종의 실험실일 것이다. 분명히 배후가 있다. 연구 과제를 위해 1~2년간 실험을 하고 보고서를 발표하려는 목적일 거다. 여기에 책방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다.” 책방 초기, 손님의 언급이 재미있어 당시에 받아 써 놓았다. 2년여가 흘렀다. 실험실은 아직 문 닫지 않고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종류의 질문은 수그러들었고 새로운 종류의 질문이 나타났다. 그 사이 소규모 서점은 짐작가능한 공간이 된 듯도 하다. 전국의 책방 리스트는 이제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고작 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질문의 종류가 달라졌다. “요즘 어때요?” 요즘의 무엇을 묻는지 잘 모르겠지만 “장사는 어때요?”로 대강 짐작하고 답하는 것이 질문의 요구에 응답하는 일이더라, 대개는. 하여튼 선의의, 걱정과 우려 섞인 질문이다. 지난주 만일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질문의 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월요일, 개점 후 최대 수량의 단체 주문이 들어왔다. 3초간, 약간 흥분했다. 그런데 작은 서점에서는 대량 주문과 단체 배송을 하는 것이 도리어 무리가 되기도 한다.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책과 더불어 ‘귀여운 물건’도 도착하는 시대다. 정가제는 거의 무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에서의 소비를 택할 때는 손님들도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죄송스런 마음이 남기도 하고. 해서 몇 차례 고사했으나, 손님께서는 서점 하나를 소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출판사 만일의 책 출간을 앞두고 있는, 밤샘 교정 주간이라 해도, 얼마쯤의 제작비라도 충당할 수 있다면 수십 개의 포장을, 해야지. 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월세 3.5회를 낼 수 있는 액수, 감사하다. 하지만 곧 전체 금액의 30%를 계산해 본다. (서점이 취하는 이익은 책 판매가의 30%다.) 월세 1회도 채 되지 않는 액수, 출간하는 책의 표지 제작비도 되지 않는, (여전히 큰돈이지만) 다소 허무해지다 못해 웃음이 나고 마는 게 사실이다. 

이 와중에 만일의 첫 책을 출간한다. 어찌 됐건 책방 만일로는 먹고 살 수 없어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게 책으로 하는 일밖에 없으니 생겨난 것이 출판사 만일이다. 출간하는 책은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것. 국내에 번역된 전작으로는 [반딧불의 잔존]이 있는데, 여기서 ‘반딧불’이 표하는 바가 소규모 서점과 맞닿는 구석이 있다. 다른 반딧불이와 대화하고 구애하기 위해 약한 빛을 내며 춤을 추는 ‘시대착오적이고 무장소적인’ 존재, ‘불안정하게 날아다니는, 미세한 유령들.’ 굳이 위베르만을 빌리지 않더라도 반딧불이가 인공조명과 오염에 취약하며, 머지않아 ‘소멸’할 것이란 예측이 어렵지 않다. 약해진 반딧불이들은 때로 극단적으로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소멸의 가장 큰 요인은 반딧불이를 바라보는 이, 관찰자의 시선의 소멸이라고. 

그런데 왜 책방을 비춰주는 외부의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았는지, 이 책을 빌려 그 피로함의 요인을 들자면 이렇다. “반딧불이들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들을 조명등 아래 놓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다. 그들이 잔존하는 현재 속에서 그들을 보아야 한다. 밤의 한가운데서 그들이 살아 춤추는 것을 보아야 한다.” 

당분간은 작은 서점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소란스러운 유행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바깥의 이야기들이란 언제나 존재하고, 어쩌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다만 이 세계 안으로, 소규모 서점의 이용객으로서, 경험자로서 함께 겪는 이야기들이 덧대어지기를 바라본다. 죽음은 언제고 다가와도 괜찮다. 조금만 더 천천히, ‘잘’ 죽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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