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세상의 주인공이 된 여자들이 사는 곳

2016.06.22
리치필드 여자 교도소 재소자들의 다사다난 생존기,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하 [오뉴블)]의 네 번째 시즌이 돌아왔다. 여전히 훌륭하고, 한층 더 어두워진 모습으로.

작년 가을, 코미디 클럽에서 [오뉴블]을 함께 감상했을 때 어느 참석자는 “속이 시원하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드라마 속 샤워나 섹스 장면에서 카메라가 남성적 시선에 빙의하여 여자들의 알몸을 끈적하게 훑지 않고 그저 담백한 시선으로 “인간의 몸”을 보여주는 것이 반갑다는 의미였다. 나 역시 [오뉴블]을 감상할 때마다 해방감을 느낀다. 인간다운 자유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척박한 공간인 교도소에 대체 무슨 해방감이 있겠는가 싶겠지만.

[오뉴블]의 재미는 시즌1에서 그려낸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은유로서의 교도소 묘사에서 시작된다. 여자 재소자들의 인간적인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고 억압·착취하는 권력층의 핵심 인물들은 마초적인 남자 교도관들이고, 재소자들은 이들의 호감을 사면 팍팍한 환경 속에서 약간이나마 이득을 취해볼 수 있다. 하지만 교도관 힐리(마이클 하니)의 호의에 힘입은 안전한 교도소 생활을 도모하던 파이퍼(테일러 쉴링)의 계획은 힐리의 호모포빅함과 변덕스러움 때문에 무참히 깨지고, 독방에 갇힌 파이퍼는 자신이 더 이상 권력자의 호의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뉴블]은 교도소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경험하는 녹록지 않은 현실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다양한 여자 캐릭터들의 가능성을 꾸준히 시험한다. 가령 시즌1에서 교도소의 지저분한 환경과 열악한 처우에 비현실적일 정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파이퍼를 보자. 파이퍼가 시종일관 눈치 없고 맹한 말만 내뱉는 캐릭터인 것은, 부유하게 살아온 철없는 여피족이라는 배경 때문이지 여자라는 성별 때문은 아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대다수의 재소자는 이런 파이퍼를 “망할 여피”라 부르며 노골적으로 비웃고 배척한다. 남자와 여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공존하는 세계였다면 여자인 파이퍼의 특권만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리치필드의 남자들은 이야기의 배경에서 얼쩡댈 뿐이고, 진짜 중요한 역할은 모두 여자가 맡는다. 총명한 머리를 가졌지만 마약 조직 외에는 출세할 길이 없고 교도소에 들어온 뒤에도 재기의 기회를 꾸준히 박탈당하는 흑인 테이스티(다니엘 브룩스), 사법체계의 무관심 속에서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치려다 결국 감옥에 오게 된 라티나(Latina) 글로리아(셀레니스 레이바), 평생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해온 ‘티 나는 부치’ 빅 부(리아 델라리아), 공기 같은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트랜스여성 소피아(라번 콕스) 등 파이퍼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여자 캐릭터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여자 교도소”라는 세팅 덕분에, 우리는 여성이라는 거대한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외모, 인종, 성정체성, 계급적 특권들과 이해관계의 격차, 그리고 다양한 갈등들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오뉴블]에서 그려내는 다양한 “여자”들의 모습은 아름답지도, 평화롭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잔인하고 비열하고 공격적이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손쉽게 객체화하기 힘든 여성들은 종종 사회에 존재하지도 않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거나 비중 없는 조연의 위치로 밀려나곤 한다. 그러나 리치필드 교도소에서는 미성년자 학대범을 응징한 살인범 클로뎃(미셸 허스트), 야심이 강한 카리스마형 음모가 레드(케이트 멀그루), 피도 눈물도 없는 마약 조직 보스 비(로렌 투생), 돈 냄새와 스릴을 즐기는 은행 강도라는 과거를 가진 터프한 암 환자 미스 로사(바바라 로센블랫), 구제불능 마약쟁이지만 매력적인 니키(나타샤 리온), 시즌4에서 무겁고 진중한 메시지를 던지며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제공하는 주인공이 될 푸세(사미라 와일리) 등, 지금껏 남자들이 죄다 독차지해 왔던 복잡하고 다이내믹한 캐릭터를 하나씩 꿰어찬 여자들이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의 중심에 선 주인공으로서 그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자유를 가진 여자들은 손쉽게 통제되지 않는다. 시즌3에서 “여자 재소자들은 다루기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카푸토(닉 샌도우)의 기대가 좌절되는 과정은 그래서 즐겁다. 내면에 품은 욕구도, 살아온 삶도, 타고난 성격이나 성정체성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그것을 이루어내는 방식도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에 타인에 의해 간단히 통제되거나 편협한 서사의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는 여성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자유를 요구하고, 또 만끽하는 여성들. 리치필드 교도소에는 그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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