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그룹 극한 직업│② I.O.I의 극한 예능

2016.06.28
언젠가부터 예능 프로그램에 유난히 걸 그룹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인기의 척도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걸 그룹이 예능에 출연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극심한 감정노동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걸 그룹에게 무엇을 얼마나 요구하고 있는지, 트와이스와 더불어 가장 활발하게 출연 중인 I.O.I의 예능 행보를 분석했다. I.O.I가 Mnet [스탠바이 I.O.I]로 방송을 시작한 4월 22일부터 두 달 동안 일어난 일들이며, 멤버 전원 혹은 일부가 출연한 프로그램 전부 해당된다.

눈요기용 춤
I.O.I가 출연한 예능에서 ‘Pick Me’ 춤은 필수요소였다. KBS [어서옵SHOW] 첫 번째 생방송에는 I.O.I 전원이 출연해 홈쇼핑과 전혀 관계도 없는 ‘Pick Me’ 무대를 보여주었고, [비타민] 역시 방송의 마무리를 뜬금없이 ‘Pick Me’ 무대와 함께 했다. “산이 씨가 너무 좋아하니까”(이휘재) 살짝 들어나 보자던 [배틀 트립], JTBC [님과 함께 시즌 2-최고의 사랑](이하 [님과 함께 2]) 등 I.O.I는 요청을 받기만 하면 방청석에서든 자신들의 숙소에서든 춤을 보여줘야 했다. Mnet [프로듀스 101] 때문에 이미 100번도 넘게 ‘Pick Me’를 연습했다는 I.O.I에게 춤이 불필요한 방송에서조차 이를 요구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달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어서옵SHOW]에서는 운동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출연한 씨스타와 김세정이 씨스타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 “아재” MC들이 넋을 놓고 바라보는 모습과 함께 꽃잎이 날리는 CG를 삽입했다. “이런 헬스클럽이 있다면 평생 오고 싶다, 평생!”이라는 노홍철의 발언도 같이.

애교
“걸 그룹 필수항목이죠. 이걸 잘하면 개인기 없어도 괜찮아요. 애교퍼레이드 시작합니다”, “삼촌 팬들의 아침을 깨워줄 만한 애교나 개인기나 뭐 없을까요?” ‘I.O.I 애교 스킬 전격 전수’. 앞에서부터 KBS FM [박지윤의 가요광장]과 KBS [생방송 아침이 좋다]에서 진행자들이 I.O.I에게 던진 멘트, 그리고 [해피투게더]에 등장한 자막이다. 애교가 왜 걸 그룹의 필수항목이어야 하는지, 왜 애교나 개인기로 굳이 ‘삼촌 팬’들의 기력을 북돋워줘야 하는지 조금의 고민도 거치지 않은 것 같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I.O.I는 혀 짧은 아기 목소리로 밥을 사달라고 이야기하거나, ‘기싱 꿍꼬또’ 애교를 선보였다. 또한 JTBC [아는 형님]은 본방송과 별개로 대기 중인 I.O.I의 모습을 라이브로 방송하기도 했는데, “애교를 보여달라”는 시청자 의견이 올라오자 I.O.I 멤버 11명 전원의 애교를 끈질기게 끌어내려 했다. 주저하는 멤버에게 김희철은 “너네 이러면 안 돼. (박)진영이 형도 [주간 아이돌] 나와서 애교 막 했어”라고 지적했지만, 신인 걸 그룹과 한 회사의 대표, 그것도 중년 남성이 느끼는 애교에 대한 압박감은 같을 수 없다.

먹방
언제나 혹독한 다이어트와 빡빡한 스케줄에 쫓기는 소녀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먹는 모습을 굳이 집요하게 카메라로 훑을 필요는 없다. [아는 형님]은 I.O.I에게 짜장면과 탕수육 등을 시켜주며 ‘본격 아이오아이 먹방 시작!’이라거나 ‘먹는 모습마저도 꽃같이 예쁜 소녀들’이라는 자막을 달았고, KBS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서는 “너무 잘 먹는 게 보기 좋다”는 이유로 알렉스가 건넨 빵을 크게 베어 먹는 강미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남성 출연자들의 미소를 함께 보여주었다. 비록 선의에서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이런 시선이 걸 그룹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JTBC [잘 먹는 소녀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I.O.I의 대표격으로 출연한 강미나는 방청객과 다른 출연자들이 자신의 먹는 모습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해맑게 웃으며 치킨을 먹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심지어 이긴 출연자는 또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잘 먹는 소녀들]은 방송 분량과 ‘먹방’을 맞바꾸는, 나쁜 기획이라 할 수밖에 없다.

외모 지적
방송은 강미나의 먹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하는 동시에 강미나의 체형을 은근슬쩍 놀리기까지 한다. I.O.I가 호스트로 출연한 tvN [SNL 코리아]의 ‘써니’ 코너에서는 강미나가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먹는 장면 뒤로 “넌 아까 먹고 또 먹냐?”라는 이세영의 대사, 과장되게 자신의 몸을 쓸어내리며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쪄”라는 강미나의 대사를 넣고 방청객들의 폭소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강미나를 웃음거리 삼았다. 외모 지적에 가담하는 것은 방송뿐만이 아니다. MBC FM4U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에는 “광고하는 동안 미나는 쉴 새 없이 먹네?”라는 청취자의 문자가 올라왔으며, 강미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웃으며 칼로리 없는 차를 마셨을 뿐이라고 해명해야 했다. 이 외에도 [님과 함께 2]에서 윤정수는 강미나에게 “오늘 눈이 많이 부은 것 같다”, “짜장면면발 같이 됐다”, “눈 밑이 너무 얇다. 너 뭐 좀 맞아야겠어”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을 연달아 했으며,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프로그램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세대 차이’라는 자막으로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은 언제든 불쾌한 일이며, 문제는 세대 차이가 아니라 자신보다 어린 여성이기에 거리낌 없이 무례한 지적을 내뱉은 윤정수의 태도다.

쌩얼 공개
곧 방송 예정인 Mnet [랜선친구 I.O.I]의 프로모션용 V앱 방송에서는 시작부터 얼굴을 가린 누군가가 I.O.I의 숙소에서 ‘여러분의 엔젤 I.O.I의 대박스트 생얼 곧 공개!’라는 글이 쓰인 보드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약 25분간 이어진 방송에 등장한 것은 아직 잠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I.O.I 멤버들의 모습과 막 잠에서 깬 멤버들의 맨 얼굴뿐이었다. 리얼리티쇼를 위해 사생활이 지켜져야 할 아이돌의 숙소 구석구석에 카메라를 설치해놓는 것 자체가 다소 폭력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한 것은 잠에서 깨지도 못한 소녀들의 맨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노렸다는 부분이다. 여성의 외모는 늘 평가 대상이 되고, 그중에서도 메이크업을 지운 여성 연예인의 얼굴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쌩얼’ 공개는 보이 그룹보다 걸 그룹에게 더욱 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 걸 그룹을 하려면,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을 도대체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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