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사실 제게는 약간 츤데레적인 성향이 있어요”

2016.07.06
무대 위의 박정원은 언제나 유니폼을 입는다. 대부분은 교복이고, 군복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말간 얼굴로 모두를 안심시키면서도 마음속에 깊은 아픔 하나씩은 감추고 있는 캐릭터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첫 연극이나 다름없는 [아들]에서도 그의 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살인자의 아들. 또 교복을 꺼내 입었고 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러나 잔잔한 작품 안에서 관객이 발견한 것은 비슷한 듯 다른 박정원의 진중한 얼굴이다.

또 교복 입었네요.
박정원
: 그동안 해왔던 역할들이 순수한 면이 많은 캐릭터들이었거든요. [아들]의 준석이도 그런 느낌이 많이 들어서인지 저를 염두에 두셨었나 봐요. 작년에 했던 [무한동력]이 유일하게 20대였고 나머지는 다 10대였는데 기분이 되게 좋아요. 이제 슬슬 20대 초반 애들이 나오면서 더 이상 10대 캐릭터 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무한동력] 때도 수동이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진짜 어린애들 쓸 거라고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직 10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에헤헤.

왜 수동이를 하고 싶었어요?
박정원
: 물론 선재가 주인공이고 관객들도 선재의 정서를 따라가는 게 맞아요. 그런데 극 안에 수동이만의 매력이 확실히 있거든요. 엄마가 안 계시고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것에 매달리는 아버지를 둔 고등학생인데,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엄마 제사 때 자두맛 사탕을 사 오는 그런 순수함이 좋았어요. 약간 츤데레적이라고 해야 되나?

[아들]은 같은 10대를 연기하면서도 부자를 조명한다는 면이 다르잖아요. 박정원이라는 아들로서 이 작품을 대하는 마음이 좀 다를 것 같아요.
박정원
: 대부분이 그렇듯 저도 아버지랑 그렇게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 와 닿는 부분이 많았어요. 공연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항상 있었고. 아버지가 아들이 어렸을 때 미친 듯이 때렸다며 고백하는 장면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저도 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아본 적이 있어요. 어디 가서 놀고 운동하고 그런 것들도 다 좋지만 제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아버지에게 맞았을 때거든요. 그래서 그 장면 대사들을 들을 때 가슴이 미어지죠. 우리 아버지도 저런 걱정을 했을까, 아버지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만약에 아버지가 그때 얘기를 하신다면, 저 역시 그걸 아직도 기억하시냐고 물어볼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어머니나 아버지께 이 작품을 보여드리기가 되게 싫었어요. 극에서 제 모습이 너무 보일까 봐. [아들]은 캐릭터의 아픔보다는 박정원의 아픔이 좀 더 큰 작품이라고 해야 되나. 이런 작품 보고 할 때마다 효도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효도를 한다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
박정원
: 빠른 귀가? 하하하. 집에서 정~말 무뚝뚝해요. 그래서 불효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사실 부모님에게 표현 잘 하는 친구들도 많잖아요.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고 엄마랑 뽀뽀하는 애들도 있고. 아직 잘 못 하는데 조금씩 표현하려고 하고 있어요. 손편지 쓰는 걸 좋아해서 생신 때나 뜬금없이 생각나면 아침에 짧게나마 쓰고 나가고, 괜히 엄마 한 번 안아보고.

약간 츤데레적인 면이 있으시네요. (웃음)
박정원
: 뭔가 무뚝뚝한 게 멋있는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인성이 형성될 사춘기 시절에 그런 생각을 갖다 보니 그게 이때까지 온 건가 싶기도 하고. (웃음)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저를 되게 단정하고 예쁘고 깔끔하게 키우셨어요. 그래서 반대로 진짜 남자답고 싶다!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옷도 이렇게 입고 다니는 것 같아요. 남자면 무뚝뚝해야지, 해서 말도 없고. 한동안은 “남자는 중요한 말만 해야 돼!” 이러면서 말도 잘 안 한 적도 있어요. 멋있는 척이란 척은 다 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죠. 안 그래도 되는 걸 그랬으니. 어휴.

작년에는 [영웅], [여신님이 보고 계셔], [무한동력], [바람직한 청소년]까지 거의 쉬지 않고 활동했었는데, [아들]은 그전보다는 공연까지의 시간이 제법 걸렸죠?
박정원
: 작년에는 거의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겹치기도 많아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막상 한달 쉬고 나니까 그때부터 불안에 갈증에. (웃음) 너무 확 하고 쉬니까 오히려 진짜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봤는데 욕심이 과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 주어진 대사는 A 것이었는데, B가 하고 싶어서 B처럼 했어요. 혹시나 그 역 줄까봐. (웃음) 당연히 떨어지죠. 그쪽에서는 A를 원하는 데 제가 B처럼 연기를 해버리니까. 그래서 욕심내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 연습이 덜 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서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레슨도 받기 시작했어요.

어떤 캐릭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박정원
: 2014년에 [완득이]를 했었는데, 완득이는 제가 지금까지 했던 캐릭터들이랑 정반대에요. 그동안의 역할들이 순수하고 여리여리한 것이었다면, 완득이는 거칠고 약간 츤데레적인 성향이 있거든요. 리더십도 있고. 그게 제 성향이랑 더 맞는 것 같아요.

요구받는 이미지와 스스로 바라보는 이미지의 갭을 크게 느끼나 봐요.
박정원
: 그것 때문에 작년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왜 이런 역할에만 나를 쓸까. 근데 요즘은 내가 약간 그런 이미지가 있구나 싶어서 할 수 있을 때 하자 싶기도 해요. 나라는 배우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그래도 한 번씩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은 또 있고. (웃음)

일상적인 캐릭터와 극적인 요소가 있는 캐릭터 중에서는 어떤 걸 좋아해요?
박정원
: 사실 좀 극적인 걸 좋아해요. 일상에서 오는 장점과 감동과 매력이 분명 있지만, 좀 더 자극적인 것에서 스스로 얻는 게 더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극적인 게 좋아요. 이 역할의 아픔을 같이 공유하고 같이 느낄 때 배우로서의 희열이라고 해야 되나런 게 있어요. 2014년에 뮤지컬 [사춘기]를 했는데 연습을 2달 가까이 했는데도 경찬이의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성노동자 누나가 나를 먹여 살리고, 부모님 안 계시고, 거기에 성정체성 혼란까지 겪고 있고. 오히려 너무 극적이라 공유가 안 되는 거예요. 근데 공연 1주일 전인가 5일 전에 온 거죠. 접신은 아니지만 아! 이런 거구나! 그 순간 배역이랑 훨씬 가까워진 느낌이 들면서 연기도 많이 바뀌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무한동력]의 선재를 보면서 박정원이라는 배우를 주목한 거였거든요. 너무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생활인 냄새가 나서요.
박정원
: 선재는 너무 평범해서 너무 어려운 캐릭터죠. 그 사람이 잘한다 못한다라는 걸 말하기도 애매한. 그런데 취업이 안 돼서 괴로워하는 선재나 아버지와의 관계가 땐땐한 [아들]의 준석이 같은 경우는 그 아픔을 공유하는 게 아무래도 편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무한동력]은 일상적인 연기를 해야 하기도 했으니까. 대신 그러다 보니까 다른 역할들보다 신경을 덜 쓰는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 공연을 하면서는 너무 대충했나 싶기도 하고.

스스로 잘 만족 못하는 스타일인가 봐요.
박정원
: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것만큼 부끄러운 게 없다는 생각을 해요. 내 연기에 만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너무 겸손하다 혹은 겸손한 척한다 말할 수 있겠지만, 유일하게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게 있다면 이 부분이거든요. 내 연기에 만족하지 않 것.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고 하더라고요. 일을 안 하면 불안해하고. 저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 줄 알았는데!

그래도 도달하고 싶은 지점은 있을 것 아니에요.
박정원
: 여기서 만족해버리면 더 갈 수 있음에도 여기서 머무르는 것이니까. 그래서 계속 만족을 하지 않으려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 넌 못하고 있어, 더 나아가야 돼’라는 건 긍정보다는 부정이니까. ‘좀 부족했지만 잘했어’라는 생각을 하면 좀 나을까 해서 해봤는데 안 돼요. 제 성향에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연기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세운 잘하는 연기라는 기준이 있어요?
박정원
: 캐릭터의 기쁨과 행복과 슬픔을 배우가 아닌, 배역으로서 관객에게 전달을 하는 것. 그게 훌륭한 거라고 생각해요. 가수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안양예고를 들어갔는데 연기를 하는 순간 노래보다 이게 더 재밌었거든요. 지금도 뭣도 모르고 하지만 그때는 더 했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배역과 내가 공유한 아픔을 관객과 내가 또 공유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고 행복했어요. 이래서 연기를 하는구나. 그래서 제가 매번 똑같은 고등학생을 연기해도 공유하는 아픔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들]도 처음 시작할 때 보는 사람 모두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심어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잔잔한 연극이라 졸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 아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저처럼 불효를 하고 있다면 ‘효도해야 되는데’라는 마음이라도 갖게 한다면 좋지 않을까. 오늘은 빠른 귀가를 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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