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농담’을 던지기 전에

2016.07.07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실 겁니다.” 뭐라고요? 자궁내막증 수술을 받고 해롱대고 있는 내게 의사가 말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 6개월 동안 여성호르몬 억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그 기간 동안 폐경을 비롯해 몇 가지 증세를 겪게 될 거라고. “어머님 고생하시는 거, 옆에서 보셨죠?” 그러고 보니 엄마가 몇 년 전 한겨울에도 덥다고 자꾸 짜증을 내셨던 것 같긴 한데, 그깟 조금 더운 것쯤이야 참으면 되겠지.

…라고 하찮게 여겼던 나를 몹시 쥐어박고 싶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스트로겐 감소와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해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두통, 우울, 불안감, 기억력 감퇴는 물론 시시때때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 안면홍조와 발한이다. 체내의 온도조절 장치가 망가진 것처럼 기분 나쁜 열기가 예고 없이 얼굴에서부터 전신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동시에 삶의 모든 의욕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3]의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가 체내에 엄청난 열을 지닌 인간병기 익스트리미스로 변했을 때의 고통이 이런 것일까. 바쁜 출근 시간에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기껏 해놓은 화장이 다 녹아내리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어 정신없이 겉옷을 벗어 던지고 나면 찬 공기가 땀을 식히면서 근육이 잔뜩 움츠러들 만큼 오한이 든다. 그럼 다시 옷을 입고 뜨거운 물을 마셔 급하게 체온을 올린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다시 더위가…. 불면증은 필연적이다. 덥거나, 춥거나, 더운 동시에 추워서 깨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더 피곤하다. 수잔 스왈츠는 갱년기 여성들의 삶에 대해 쓴 [나는 주름살 수술 대신 터키로 여행간다]에서 “이불 두 채를 덮고 그 위에 커다란 개 한 마리를 올려놓은 채 자고 일어난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한마디로, 그 전까지의 일상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일밤] ‘복면가왕’에 출연했던 하현우의 칭찬에 감동해 눈물 흘린 신봉선에 대해 “신봉선 씨가 약간 갱년기 비슷하게 좀…”이라는 농담을 던졌다.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사십 대 배우 주연(김혜수)에게 의사가 “폐경이에요”라는 선고를 내리는 순간, 극장 안의 관객들은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여성 개개인이 감내하는 고통과 불편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한 대신 여성의 감정기복 심화나 생산능력 상실, 성적매력 감소 등 부정적 이미지만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대중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은 ‘폐경’이나 ‘갱년기’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폐경은 단지 생리가 멈추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임신이나 출산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호르몬 변화와 육체적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가 따르는 결코 짧지 않은 시기의 시작이다. 갱년기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폐경 이행기와 폐경, 폐경 이후의 시기를 모두 아우른다. 한국 여성의 폐경은 평균적으로 50세를 전후해 일어나지만 40세 이전 조기폐경을 겪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고, 자궁내막증 치료 등으로 20-30대에 일시적 폐경을 경험하는 여성들도 드물지 않다. 나와 같은 호르몬 억제 치료를 받은 한 친구는 아침에 일어나면 관절이 저리고 뻣뻣해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로지 생물학적 여성만이, 그리고 대부분은 일정 연령을 지나서야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는 공적 영역에서 제대로 인지되지 않고, 당사자가 아닌 이들은 이를 쉽게 웃음거리로 삼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긋지긋한 시간을 겪는 동안 깨달은 것은 그동안 나야말로 갱년기를 맞은 여성들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가다. 학교에서 받았던 엉성한 성교육에서도 갱년기 여성의 건강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지만, 80대까지 늘어난 평균수명과 함께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인생의 3분의 1 가량은 폐경 이후의 시간이다. 이 시기에는 골다공증이나 심혈관계 질환이 늘어나고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함에도 대개의 가족구성원들은 ‘은퇴’ 없는 가사노동을 맡아 하는 여성들에게 무관심할 뿐 아니라,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유난이라며 도리어 힐난하기도 한다. 결국 ‘아프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겪어보지 않으면 짐작도 어려운 이 증상을 견디며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오롯이 개인들의 몫이 된다. 무심한 가족과 친지 대신 콩, 석류, 달맞이꽃 종자유 등에 의지하면서.

그러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폐경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한다면 어떨까. “폐경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뉴욕의 폐경 전문의 메리 젠킨스는 자신에게 폐경기가 오기 전 미리 대비해두기 위해 정보를 찾던 중 턱없이 부족한 자료와 남자들이 쓴 진부한 책들에 좌절하고 나서 [60초 폐경기 증후군 이겨내는 법]을 집필했다. 또한 당사자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버거운 문제이기에, 그는 폐경을 맞아 힘들어하는 여성의 배우자들에게 “아이가 신생아 때 밤잠을 설쳤던 날들과 똑같은 인내심을 발휘하도록 노력하고, 격려해줄 수 있도록 많이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절반에 달하는 이들이 겪거나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새벽마다 잠에서 깨어 힘들어하시면서도 매일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하시던 엄마도, 수업 중 갑자기 벌게진 얼굴로 손부채질을 하며 짜증 내던 선생님도, 영화 상영 동안 수차례 웃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던 옆자리 중년 관객도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왔을 것이다. 폐경을 가지고 농담하기 전에,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참고 도서
[폐경기 건강] 대한폐경학회 편찬위원회, 군자출판사
[마이 시크릿 닥터] 리사 랭킨, 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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