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맛있는 인생], 이토록 열렬한 가짜 욕망

2016.07.22
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무슨 책이에요?” 처음 보는 두 사람은 루시 나이즐리에 대해서, 그 생판 모르는 사람이 뭘 먹는지 뜨겁게 이야기했다.

루시는 음식의 별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곱 살짜리의 학교 생일 파티에 다른 엄마들처럼 컵케이크를 사 가는 대신 요리용 토치를 챙겨가서 초대형 크렘 브륄레를 만들었고, 아버지는 딸을 데리고 전 세계의 맛있는 요리를 먹으러 다니는 게 낙이다. 삼촌은 맨해튼에서 미식가들을 상대로 고급 식품점을 운영했고, 유명한 레스토랑 평론가인 대부는 대녀의 세례식 날 크림을 얹은 데친 연어를 먹여주었다. 루시는 서너 살부터 엄마와 함께 맨해튼의 농민 시장에서 야채를 팔았다. 시골로 이사 간 후에는 엄마의 직장인 케이터링 업체에서 잡일을 했고, 열여섯부터는 인근 농장들을 트럭으로 돌며 물건을 떼다 팔았다. 대학 시절에는 항상 굶주린 인간으로서 저널리스트인 이모가 연재하는 식당 리뷰의 시식 파트너 노릇을 했고, 졸업 후에는 미식 식품점에서 치즈를 팔았다.

식탐은 법보다 강하다. 이혼 후에도 아버지는 전처의 요리를 못 잊어서 생일, 입학식 등 기회만 나면 딸 핑계로 들락거린다. 어머니는 채식주의자와 재혼하지만 모녀는 둘만 있으면 스테이크를 굽는다. 잠시 놔두면 풍미가 좋아지지만 그새를 못 기다려 핏물이 흥건한 고깃덩어리를 입으로 가져가는 한편, 도마에 흐른 육즙까지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다. “나의 식탐은 유전된 걸까, 학습된 걸까? 엄마가 묻지도 않고 해주는 특이한 요리들이 어떻게 내가 먹고 싶던 음식과 딱 맞아떨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사춘기 소녀의 입맛이 늘 부모를 따라가지는 않는다. 루시는 이탈리아에서 아빠가 자는 사이 호텔을 빠져나온다. 카페에서 신선한 크림을 넣은 에스프레소, 토스카나 산 마르멜로 잼, 비스코티 등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아침식사를 팔지만, 맥도날드로 가서 프렌치프라이를 쪽쪽 핥고, 피클을 아작아작 씹고, 겨자를 턱에 흘려가며 햄버거를 먹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 아니 전 세계의 아이들과 때로는 어른들과도 달리, 낯선 음식을 덮어놓고 싫어하기보다는 궁금해한다. 멕시코에서는 동전을 움켜쥐고 시장으로 달려가서 핫 소스와 라임을 바른 사탕옥수수를 옷과 얼굴에 죄다 묻혀가며 먹었고, 일본에서는 시오카라(젓갈)나 모찌처럼 서양인이라면 질색하고 도망갈 음식까지 걸신들린 듯 먹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먹는 걸 배우기 시작한 사람처럼 희한한 것을 먹고 생소한 것을 마셨다.”

경이로움은 어른이 되어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래서다. 낯선 곳에서 일상은 경이가 되고, 음식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몸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산다는 것은 곧 먹는 것이다. 생존의 최우선 조건이자 가장 일상적인 일상이 경이의 대상이 되는 것도 신기한데 책 속의 음식이, 이번에는 생존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음식이란 뭘까, 또 먹는 얘기란 뭘까.

“제가 먹는 얘길 좋아하거든요.” “저도요.”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릴 역이 되었다. 우리는 가벼운 목례를 나눈 후 각자의 길을 갔다.

정은지
책과 음식과 쇼핑에 관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책과 음식을 쇼핑한다. 책 속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 [내 식탁 위의 책들]을 썼고, [아폴로의 천사들]·[피의 책]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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